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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래킹 1일 차

 

 어젯밤 해리가 소개시켜 준 렌탈샵에서 침낭을 빌렸다. 없는 거 빼고 다 빌릴 수 있었는데, 애초에 트래킹을 위한 여행을 계획했기에 옷이나 신발 등등은 챙겨왔다. 침낭을 빌리는 건 처음이었다. 뉴질랜드에서 여행을 할 적에도 침낭을 대신 했던 건 내 옷가지들이었는데 산 위에서의 추위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빌리기로 했다. 보온의 정도에 따라 침낭의 가격이 달랐다. 강원도에서 군 생활을 했던 나이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추위는 두려웠는지 제법 두껍고 튼튼한 침낭을 빌렸다.

 

 

TIMS 퍼밋(위)과 입산허가증(아래)

아침 일찍부터 레몬생강차를 대접받았다. 차 한잔에 감동받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나는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는데, 해리와 해리의 아내는 먼저 일어나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제 해리에게 부탁한 입산허가서와 TIMS 퍼밋을 받았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해리는 가이드도 없고 포터도 없는나의 산행이 위험할까 걱정을 해주었고 나는 애써 태연한 척을 했다. 실은 매우 떨리고 두려웠지만 말이다.

 

 

페디(Phedi)로 향하는 로컬버스 / 바그룽 버스 터미널

어제 부탁한대로 택시는 와 있었고, 페디(Phedi)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바그룽 버스 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에는 일곱시 반 즈음이었다. 아침공기가 아직 히말라야는 덜 깨운 탓인지 산 중턱에 구름이 서려 있었다. 뉴질랜드의 마운트 쿡, 그리고 스위스의 융프라우 이후로 세 번째 보는 설산이었지만 보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너무나 압도적이었고, 영화에서만 보던 그 파라마운트의 파노라마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늘을 뚫고 있는 설산은 '내가 이곳의 대장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 굉장한 위압감마저 들었다.

 이미 카트만두에서 로컬버스를 타 본 경험이 있던 나였지만 좀 긴장되었다. 나는 한참을 일찍온 탓인지 버스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이 로컬버스를 나 혼자 탈 수 있다는 기쁨이 잠깐동안 깃들었다. 10분만에 사라져 버렸지만 말이다. 그 동안 트래킹 하는 사람들이 물 밀듯이 들어왔고 버스를 가득 채웠다. 그 많던 공간에 사람들이 다 들어 차더니 나중에는 가방을 껴안고, 4명이 앉는 자리에 6명이 앉아야 했다.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로...

 

 

페디(Phedi)에서 담푸스(Damphus)로 가는 길

다른 트래커들의 출발지는 대부분 나야풀(Nayapool)이 었기에, 나는 페디(Phedi)에서 혼자 내려야 했다. 무언가 쓸쓸하게 떨어져 나간 살덩어리 같은 기분이었다. 아주 자그마한 팻말에 영어로 Phedi라고만 쓰여져 있었고 이곳이 입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초라했다.

 나의 첫 구간은 페디(Phedi)에서 담푸스(Damphus)고원으로 올라가는 구간이었다. 나는 트래킹을 하기 전 여자들도 쉬이 성공하는 이 안나푸르나 트래킹 코스를 아주 만만하게 보았던 것이 사실인데(심지어 그 높은 산맥을 보고도), 촘롱과 코프라 구간을 제외하면 이 구간이 가장 힘들었었다. 트래킹 코스라고 해서 아주 평탄하고 완만하기만을 바랐는데 시작부터 허벅지의 근육들이 난리가 났다. 거의 한 시간 정도를 오르고 나서야 황금빛 고원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강의 물줄기들이 얇~은 혈관줄처럼 보인다. 밀포드 사운드에서 봤던 산들의 3D 쇼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담푸스(Damphus)의 황금빛 고원에서

몇 m쯤 올라왔는지(확인해보니 해발 2,000m정도였다) 모르겠는데 어느새 드넓은 황금빛 평원이 보이기 시작했고, 계단을 이루고 있는 경작지들과 새하얀 염소들, 그리고 닭들과 병아리들도 짹짹이며 뛰어나디는 것이 보였다. 마치 우리네 것들을 보는 것 같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소를 몰고 빨래를 널고 벼 타작을 했다. 우리 나라의 시골에 가면 흔하디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 내가 너무 어렵게 올라와서, 그리고 어색하기만 한 곳이라 그런지 모든 것들이 신기하게만 보였다.

 

 

학명 'Datura', 독말풀이라고...(독있음)

나는 유난히 이 사진을 좋아한다. 해바라기같이 크고 올곧은 꽃도 좋지만 이렇게 겸손해 보이는 꽃이 너무 예뻤다. 어제 포카라에 와서 Lalupate라는 꽃도 굉장했는데 이 꽃은 훨씬 예쁘다.

그나저나, 멀리 구름뒤에 숨어 있는 저놈은 그만 수줍어하고 좀 나왔으면... 하늘을 방황하고 있는 것들이 오직 구름뿐인줄만 알았는데, 설산은 그 뒤에 꼭꼭 숨어 여행자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었다. 달래면 나올 듯, 손꼽아 기다리면 나올 듯 하더니 아주 잠깐씩만 그 얼굴을 비췄다. 네놈을 보려고 4,000NRP나 내고 왔단 말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왕왕 보인다

나 뿐만 아니라 히말라야의 정기를 받으러 온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호주에서 온 60대 노부부, 일본에서 온 교수, 그리고 독일에서 온 젊은 커플, 프랑스에서 온 사람들 등등. 이곳이 유명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트래킹 코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했다. '산을 오른다'는 공통의 목표 때문인지 쉽게 인사하거나 쉽게 말동무를 찾을 수 있었고 덕분에 혼자하는 산행이 심심하지는 않았다(영어공부중?ㅋㅋ).

 

히말라야를 벗삼아 학교에 가는 꼬마 아이들

이 곳 역시 사람 사는 곳이기에 어린아이들은 아침 등굣길을 서두르고 있었다. 심지어 아직 이빨갈이도 안한 것 같은 아이가 보였는데 나이를 물어보니 3살...(-_-). 3살짜리 남자 아이가 누나들 손을 잡고 뒤쪽으로 히말라야가 보이는 학교로 등교하고 있다. 누나들은 9살 정도 되는, 나보다 훨씬 어린 꼬마아이들이었는데 네팔어는 물론이고 영어, 일본어도 할 줄 안다고 했다. Thank you가 한글로 무엇이냐 그래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더니 나보고 스마트(You are very smart)라고 대답해 주었다. 칭찬 받아 기분은 좋지만 좀 묘했다(-_-).부유하지는 않아도 울퉁불퉁한 길을 걸으며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 아이들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입산 등록하는 곳!

담푸스(Damphus)에서 포타나(Pothana)를 넘어가는 구간은 입산허가증과 TIMS를 체크하는 곳이 있다. 누군가 나를 불러 세우길래 호객인 줄 알고 무시했다가 잡혀갈 뻔 했다. 뭐 줘봐라 여권 보여줘봐라 귀찮게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간단한 명부 작성 이외에는 별 거 없다. 입(入)과 출(出)을 기록해서 실종자를 기록하기 위함이라고.

 

 

소박한 맛에 감동했던 달밧(Dal-Bat)

 

 뒤쪽으로 펼쳐진 전망이 너무 좋아 스스로를 호객하여 들어간 식당이다. 이 곳은 트래킹을 하며 처음으로 들렀던 식당인데 네팔에 온 이후로 먹어보고 싶었던 달밧(Dal-Bat)을 시켰다. 380NRP의 가격이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나의 궁굼증을 보상해 주기에는 괜찮은 가격이었다. 처음에는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가져다 준 달밧의 '양'에 실망했다. 내가 숟가락을 들면 30초면 다 없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을 제외하면 맛은 매우 좋았다. 카레의 향이 부담스럽지도 않았고, 야채도 싱싱했고, 초록나물의 향도 은은하니 좋았다. 은근 고급스러운 잔(그릇?)에 담긴 수프는 처음 경험하는 맛이었지만 매우 좋았다. 달(Dal)이라 불리는 콩으로 만든 수프, 그리고 밧(Bat)이라 불리는 밥은 내 허기를 채우기에 충분했다. 밥이랑 찬은 더 달라고 하면 더 주더라... ㅋㅋㅋㅋ괜히 걱정했다.

 

 

이곳도 결국 사람 사는 곳

포타나(Pothana)에서 데우랄리(Deurali)로 넘어가는 구간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너무나 평범해서 내 숨소리가 산의 정적을 깰까봐 오히려 조심스러웠고, 건너건너 호빵같이 쌓여있던 소똥의 냄새는 정겨우리만큼 좋았다. 이런 것들이 더러워서 불편하고 피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해줘서 고맙기까지 했다(밟은 건 결코 아니다).

 유럽여행을 할 때에는 특별한 컨셉을 정하고 어떤 곳에가서 어떤 것을 볼 것인지, 그리고 어떤 박물관에 가서 어떤 작품을 볼 것인지 늘 생각하고 움직였었다. 때문에 네팔을 여행할 때에도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느껴야 할 것인지 고민했는데 사실 별 거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이곳에 다 있었기 때문이다. 평범함(Normal), 색다름(Antic), 자연스러움(Natural)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것들을 카메라에 다 담을 수 없어 무척 아쉬웠지만 잠깐만 걸음을 멈추고 있으면 나에게 다가와주어 굉장히 행복했다.

 

 

나를 보자 신나게 도망가던 닭

너무나 조용한 나머지 벌레소리나 닭이 꼬꼬득 하는 소리도 산이 연주하는 음악이 되어버린다. 이럴 땐 심장이 두근대는 소리가 귀찮아졌다.

 

 

나마스떼~ 바쁜 와중에도 인사해 준 아낙네

모든 트래킹 구간에서 이 곳 사람들의 생활을 볼 수 있다. 건너편에서 소를 몰며 다가오는 나이 지긋한 아낙네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는데, 행복하고 따뜻한 마음씨가 나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내가 이들의 삶을 가난하다고 말하는 것도 참으로 잘못된 것이지만) 이러한 생활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민들레인가?

나는 오늘 란드룩(Landruk)에 묵을 생각으로 무작정 걸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 버렸다. 더 걸을까, 조금만 더 볼까 하는 욕심에 사로잡혔지만 '산의 길은 일찍 열리고 더 일찍 닫힌다'라는 말이 생각나 이곳에 묵기로 했다.

 

 

더 일찍 닫혀버리는 산길

이른 아침부터 오후 세 시까지 걸어서 그런지 허벅지가 당기고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고, 배낭을 메고 있던 어깨도 쑤셔오기 시작했다. 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멀리서 멀뚱히 서 있던 젊은 여자가 나에게 다가왔고 방이 필요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마침 오늘 밤 묵을 곳을 찾던 찰나에 잘 된 일이었지만 장난기가 발동해 '나를 좀 더 설득해 봐'라고 말했다. 숙소 이름이 Super view라고 말하며 밤에는 산에서 별들이 꽃을 만개하고 아침에는 구름이 열려 황금빛으로 빛나는 산봉우리를 볼 수 있다나 뭐라나... ㅋㅋ 상당히 시적인 멘트에 감동해서 씨익 웃었다. 나는 호객을 당한 것이다!

 

 

 

단칸방 싱글침대 어둠만 겨우 쫓던 전등

단칸의 롯지에 있었던 건 겨우 몸을 누일 수 있는 차가운 침상과 전등이 전부였다. 뉴질랜드에서 묵었던 다쓰러져가는 오두막에 비하면 굉장히 호사스런 숙소였기 때문에 불만은 없었다. 게다가 전기도 들어오고 심지어 와이파이도 잡혔다(물론, 신호는 약하다 못해 다 늙은 할아버지의 소변줄기 같았지만). 몸이 후끈하여 찬물로 샤워를 하고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했다. 2,000m의 산 중턱에 전기도 들어오고 와이파이도 잡힌다는 시시한 잡담과 여기서 팔고 있는 신라면은 특이하게도 더 맛있고 배부르다는 어설픈 거짓말들 말이다. 내일도 별 거 아닐 것 같지만 오늘처럼 끝내주는 하루가 될 것 같은 기분좋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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