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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들의 놀이터에 들어서다

 

시누와(Sinuwa)의 아침은 좀 쌀쌀했다. 와이파이와 전기 사용료가 별도인 것을 밤새도록 투덜대다가 새벽 5시 쯤에 눈을 떴다. 늘 그랬듯이 아침에는 팬 케이크 두 장과 레몬생강차로 하루를 시작했다. 트래킹을 하는 내내 꿀을 발라 먹는 팬 케이크와 레몬생강차에 유난히 집착했는데 입맛에 문제가 생겼나 싶었지만 생각해보면 신선하고 맛이 좋았다. 아침형 인간이 아닌 나는 한국에 있을 때에는 늘 늦게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했는데 아침에 마시는 차(茶)의 따뜻함을 잘 몰랐다. 뉴질랜드에서 홈스테이를 할 적에 브루스가 아침마다 홍차를 데워주곤 했는데 그 때부터 아침 차를 마시기 시작한 것 같다. 특히 오늘같이 쌀쌀한 날씨, 그리고 겨울에 마시는 아침 차 한 잔이 제일인 것 같다.

다이닝 룸에는 한국인 트래커 두 명이 먼저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사촌동생과 사촌 형이 함께 여행을 온 것. 동생의 나이는 19살이었고, 사촌 형을 따라서 네팔 트래킹 이후에는 인도를 여행한다고 했다. 한국에만 있다가 난생 처음으로 여행을 하게 된 것이 네팔이라고 말했는데, 아직은 여행이 달갑지 않다는 말을 했다. 대화의 공감대가 없어 대화를 길게 이어나가지는 못했지만(셋 다 말수가 적었기에) 19살의 나이에 여행을 시작해서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 말을 해주었다.

 

 

얌마 비켜!

짧은 인사를 뒤로하고 나의 첫 목적지인 뱀부(Bamboo)로 향했다. 영어의 뜻 그대로 대나무만 굉장히 많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아침부터 반갑게 인사해 주는 새까만 야크들과,

 

 

길목을 점령하고 있던 산양들

길목을 점령해버린 수많은 산양 떼들이 있었다. 이놈들이 길을 막고 있어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다행히 내가 다가가니 슬금슬금 비켜준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통로는 온통 똥밭으로 변해버려 있었고 바로 옆은 가파른 절벽길이었다. 인도 여행 같았으면 신발 더러워지고를 상관하지 않고 밟고 다녔겠지만, 오늘 내가 묵게 될 롯지 바닥에 똥물을 묻히는건 민폐라 생각해서 그만두었다. 촘롱(Chhomrong)처럼 무거운(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 같은 내 가방) 짐을 들고 까치발을 들어야 했다. 자유롭게 히말라야의 한가운데를 누비고 먹고, 자는 산양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나는 생각하는 인간이거늘...

 

 

너도 내 뺨을 때릴거냐

뱀부로 가는 길에는 종종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수많은 나무가 우거져 있는데 그곳을 지나다 보면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놈들도 있다. 내가 반가운건지 달갑지 않은건지 나무 사이를 방방거리며 뛰어다니는 회색털을 가진 원숭이들도 보인다. '파바박!'하는 소리가 들려 소나기가 내리나 싶었는데, 이놈들이 쉬야를 하고 똥을 싸는 소리였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 했다.

 

 

손에 잡힐 듯, 말 듯

뱀부(Bamboo)에서 도반(Dobhan, Dovan)히말라야(Himalaya)를 아우르는 구간은 축축한 습지다. 약간은 뉴질랜드의 숲속을 거니는 느낌도 나고, 어두컴컴하고 으스스해서 뭔가가 튀어나올것 같기도 하다. 첫날은 고원, 둘째날은 그냥 계곡과 언덕길, 셋째날은 축축한 습지, 그리고 저 멀리 새하얀 설산. 어제도 손에 잡힐것처럼 있더니 아직도 멀었다. 그래도 힘든 다리를 부축해 주는 건 멀리서 빛나고 있는 저놈 뿐이다.

 

 

천연냉장고로 미지근한 물 식히기

트래킹을 하면서 한 가지 생각했던 건 물소리가 제일 가까이 들리는 곳에서 쉬자는 것이었다. 물을 마실 수 있는 것도 아니고(석회가 포함된 물이기 때문에 정수된 물을 마셔야 함), 시원하게 세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증발하면서 체온을 뺏길 수 있기 때문) 마음 속에 묵은 것들을 깨끗이 씻겨 주는 것 같아 쉴 때도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다. 높은 곳에서부터 오는 물이라 상당히 차가웠는데, 바위 틈에 물통을 담그고 10분동안만 있어도 더위를 싹 가시게 할 만큼 시원하게 변했다. 그늘이라서 더!

 

 

촐촐거리며 산을 가르던 물줄기들

나무가 우거진 곳을 지나 잠시 위를 올려다 보면 어느덧 이만큼이나 가까워진 구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고 있는지 모르는 촐촐거리는 물줄기와 붉으락 푸르락 변하는 색의 변화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숲은 하늘에 가까워질수록 색이 바라고 부스러져 바위가 되어버렸는지 대머리가 많다.

 

 

생선꼬리다!!

도반(Dobhan, Dovan)에 가까워지면 마차푸차레(Machapuchare)가 조금 더 가까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래도 겨우(?) 2,500m 높이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1,000m에서 바라보는 것과 이곳에서 바라보는 것은 천지차이가 있었다. 마차푸차레가 유난히 돋보이고 내가 좋아하게 된 이유가 있는데, 마차푸차레의 정상은 미정복 봉우리이기 때문이다. 눈이 갓 내린 길을 밟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인가 몰라도. 나중에서야 알게된 이야기지만, 1957년 영국의 지미 로버츠가 이끄는 원정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도를 한 적이 있는데, 50m를 남겨두고 다시 내려왔다고 한다.

그러나, 정상에 다가가자 눈보라가 몇 시간이고 불어닥치고 먹구름과 같이 번개까지 내리쳐서 우린 정말로 여신이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겁이 났다. 결국 우리는 몇 시간 겨우 걸려 좀 더 올라갔으나 정상까지 가는 걸 포기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도 험하기에 눈보라를 무시했다간 우린 누구도 살아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출처 : 나무위키)

 마차푸차레 등정을 책으로 쓴 윌프리드 노이스(1917~1962)는 실패를 겸손하게 풀어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된 바 있다. 왜냐하면 시바신은 남자이기 때문...(-_-) 노이스는 살아생전 이 산처럼 아름다운 산은 없다고 칭송했고, 마터호른(알프스, 스위스)은 여기에 견주면 그저 바위 덩어리에 불과할 뿐이라며 무시했을 정도라고...실제로 트래킹을 하면서 마차푸차레가 가장 멋지고 눈에 띄었던 건 사실이다. 때문에 사진을 굉장히 많이 찍어두었다.

 

 

깨끗하다고 마시면 큰일!

고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유난히 깨끗해보이고 에메랄드 빛을 띠는데, 깨끗하다고 착각하여 벌컥벌컥 들이켰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석회수를 마시면 담석이 생길 수 있으므로 절대 마시는 일은 없는걸로... 물이 너무 깨끗해서 그런지 어린아이처럼 첨벙이고 싶은 충동은 들었다. 하지만 너무 차가워서 문제.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물줄기들

촘롱(Chhomrong)까지는 고원을 지나야 했기 때문에 물이 흐르는 소리는 항상 멀었다. 하지만 뱀부(Bamboo)도반(Dobhan, Dovan)을 지나 ABC로 향하는 길은 길이 조금은 평탄하고 내가 오르고 있는 협곡의 반대 방향으로 물이 흘러내리고 있는데, 바로 옆 짝꿍 자리처럼 가까워 콸콸거리는 소리가 그대로 가슴으로 전해져온다. 귀에 꼽고 있던 MP3의 소리를 이겨낼 정도로 그 힘이 굉장하다. 양 옆으로 나 있는 산의 중턱에는 촐촐거리는 물줄기가 아까보다 더 많아졌다. 아마 히말라야(Himalaya)에 가까워질 때 즈음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장면들이기 때문에 히말라야의 한 가운데를 걷고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여긴 가을인가?

이곳에는 꽃도 피어있고 나무가 우거진 습지도 있고 머리가 벗겨진 민둥산도 있고 붉게 익어버린 나뭇잎들도 있어서 그런지 이곳이 몇 월인지, 그리고 무슨 계절인지도 모르게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11월부터 2월까지가 트래킹하기 최고의 조건이라 하는데, 아마도 제일 멋지고 아름다운 장면들만 볼 수 있어서 그런것 같다. 도반(Dobhan, Dovan)에서 히말라야(Himalaya)로 넘어가는 부분은 마치 가을 같았다.

 

 

이제 구름과 함께 걷기 시작한다

히말라야(Himalaya)에서 데우랄리(Deurali)로 넘어가는 구간은 내가 살짝 겁을 먹었던 구간이다. 동생과 유럽여행을 하며 스위스의 융프라우에 오른적이 있는데(물론 기차를 타고 올라갔지만) 그곳에서 고산증을 앓아서 얼마 있지도 못하고 내려온 적이 있기 때문이다. 융프라우의 높이가 3,254m이고, 내가 오늘 묵을 곳인 데우랄리(Deurali)3,231m의 비슷한 높이라서 어렵게 올라와서 고산증세가 나타나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이곳에서부터는 구름과 같은 높이로 걸을 수 있는데, 경치도 좋고 기분도 좋지만 조금만 속도를 늦추고 긴장을 풀어도 열을 순식간에 뺏겨 몸이 차가워졌다. 그래서 몸에 열을 내려고 조금만 빨리 움직이면 허벅지와 엉덩이가 터질것 같이 아프고, 속도를 늦추면 춥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때문에 울상이 되었다.

 

이제, 신선들의 놀이터로

3,000m를 넘어가기 시작하면 슬슬 '죽은 자들의 도시'가 시작된다. 산들은 하나 둘씩 헐벗기 시작하고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추위를 이기지 못해 죽어버린 나무들, 그리고 살기 위해서 털옷을 두른 식물들이 군데군데 보이기 시작한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물이 얼지 않아서 강물이 흐르는 소리 덕에 삭막함을 이길 수는 있지만, 점점 차가워지는 공기와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구름들이 무섭기도 하다. 조용하고, 아름답고, 굉장하다는 수식어도 어울리지만 '산은 무언가 풍성하고 가득하다'라는 통념이 깨지고 있어 한편으로는 쓸쓸했다.

 

 

그들은 한달, 아니 일년에 몇 번이고 이곳을 지난다

드디어 이 고개를 하나 넘기만 하면 숙소에 짐을 풀 수 있다. 하루에도 몇 번 씩 몸이 퍼져서 포기할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짐을 나르는 포터들, 그리고 물자를 나르는 사람들을 보면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바위와 구름이 맞닿은곳

오늘 내가 봤던 장면들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구름은 늘 하늘의 것'이라 알고 있었는데, 구름과 바위가 맞닿아 있는 장면은 나에게 너무나 신선했던 것. 구름이 내려온 것인지 바위가 올라간 것인지 몰라도 어제까지는 산길을 걷는다는 느낌이 신선들의 놀이터를 걷는것처럼 느껴졌다. 더불어 내가 안나푸르나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도 오늘에서야 실감했다.

 

 

무려 15시간이나 잠을 잤던 곳

데우랄리(Deurali)의 숙소에 도착한 건 오후 1시 즈음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시작해서 도착하기까지 7시간이 넘는 트래킹을 하느라 체력이 바닥나 버렸다. 설령 체력이 더 남아 있다고 했을지라도 구름이 앞을 가려 더이상 트래킹을 진행할 수 없었다. 트래킹하느라 고생한 두 다리를 위로할 틈도 없이 침낭을 풀고 그대로 뻗어버렸다. 아마도 내일 가게 될 ABC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탈진할 만큼의 피곤함 때문인지 몰라도 오후 한 시 반쯤부터 자서 다음날 새벽 다섯시에 일어났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같은 방을 사용했던 독일 친구가 '너 밥도 안먹고 자서 죽은 줄 알았다'고 말할 정도로 침낭속에서 꼼짝도 안하고 잤다고...(-_-) 나폴레옹이 전쟁 후 3일 동안 잠만 잤다는 이야기가 조금은 이해가 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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