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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그곳에 닿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었던 순간을 지금 말하려 한다. 고등학교 시절 한라산 등반에 실패한 이후로 수 년 동안 계획했던 안나푸르나 트래킹의 가장 절정이었던 순간은 바로 오늘이었다. 아직 밟아보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땅을 머릿속에 그리며 가슴이 뛰고, 사진속의 장면들을 미래의 청사진으로 삼아 끊임없이 달려왔다. 내가 그 곳에 닿았을 때 이 순간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이 곳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를 생각하니 머리의 뒤끝에서부터 시작되는 전율이 멈추지를 않았다. 그 당시에는 '보인다'였던 것들이 '보았다'로 바뀌면서 기억의 뒤편으로 밀리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아직은 그 생생한 기억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가장 많이 잤던 데우랄리(Deurali)!

"너무 많이 잤나?"

 그래, 너무 많이 잤다. 어제 오후 한 시에 데우랄리(Deurali)에 도착한 이후로 곧바로 침낭을 펴고 대자로 뻗고 말았다. 그동안의 롯지와는 달리 한 방에서 많은 사람들과 쉐어를 했는데(값이 제일 저렴한 방을 원했으므로), 그 때문인지 누구 하나라도 부비적 거리거나 밖에 나가면 냉한 바람이 들어오는 탓에 모든 사람이 민감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어제의 피곤함은 모든 감각을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강했다. 나는 누가 깨워도 결코 일어나지 않았고, 중간에 롯지 주인이 식사를 하지 않느냐며 나를 깨우기도 했었다고 한다. 롯지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이곳에 숙박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식사도 팔고 음료도 팔며 수익을 챙겨야 남는 장사를 하는 것인데, 피곤하다는 이유로 영업을 방해한 셈이 되어버렸다.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먼저 트래킹 준비를 하고 있던 독일 친구 클라우디오는 코도 골지 않고 아무런 미동없이 자는 나를 보고 죽은줄 알았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어제 촘롱(Chhomrong)에서 데우랄리(Deurali)까지 주파한 독일친구 클라우디오는 오늘은 ABC를 경유해서 다시 촘롱(Chhomrong)까지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Are you sure? 

 

 

아침을 깨우던 물소리

바람이 꽤 불 줄 알았는데, 아침을 깨우는 것은 역시 쉬지않는 물소리가 먼저였다. 에메랄드 색의 강물은 이미 익숙한 것이 되어버렸는데 고요한 산을 깨우는 강물들의 우렁찬 물소리는 매번 미묘하게 다른 소리를 내곤했다(귀를 잘 기울이면). 이것도 산을 감상하는 하나의 묘미라고 해야 할까.

 

 

데우랄리(Deurali)에서 MBC가는 길

나는 무언가를 계속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자주 뒤를 돌아보곤 했는데, 그나마 생명의 기운이 있었던 곳이 3,500m즈음 까지였다. 내 앞으로는 '죽은 자들의 도시'라고 불러도 될 만큼 황량하고, 거친 모습만 있었다. 차라리 가장 높은 곳처럼 눈이라도 쌓여 있었으면 몰랐을까, 메마르고 건조한 모습 때문인지 쓸쓸함이 느껴졌다.

 

 

쓸쓸하기만 했던 나뭇가지들

이제는 내가 서 있는 곳의 아래는 잘 느껴지지 않고 위로 솟아 있는 산맥의 줄기만이 보인다. 3,000m의 고도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할만큼 높이가 느껴지지 않았는데, 가면 갈수록 숨이 턱턱 막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고산의 힘이 심장까지 전해져왔다. 밑에서는 너끈히 살아남아 있던 생명의 심장박동 소리도 점점 희미해지고, 바위를 만져보니 찬 기운이 대단했다.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MBC)에서

내가 MBC에 도착한 건 오전 7시 쯤이었는데, 협곡의 한가운데는 아직 햇빛이 들지 않아 어두운 반면 설산 봉우리는 햇빛이 눈부시게 들이치고 있었다. 나는 흥분과 기대를 억누를 수가 없어 내가 고산증세가 오는 것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후광을 머금고 있던 마차푸차레

안나푸르나 보다는 마차푸차레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상당히 많은데, 은연중에 마차푸차레에 대한 애정이 상당했나보다. 마차푸차레가 있던 쪽은 동쪽이었는데, 해가 뜨기 직전이라 빛과 어둠의 경계에 산이 있는 셈이었다. 마차푸차레는 태양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후광을 머금고 있었다는...

 

 

마차푸차레와 함께

너무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ABC에서 일출을 보고 하산하고 있었다. 나마스떼(Namaste)라 인사하며 한층 여유있게 웃어보이는 그들과는 달리 나는 고산증세가 심해져서(숨을 쉬는게 힘들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표정은 찌그러져 있고, 바람이 눈에 들어와 울상이 되었다. 나의 고통을 이해했는지 Good luck, Enjoy walk라는 말들을 해주더라. 어떤 여자 트래커는 울상인 나를 보며 You made it!(넌 해낸거야!)라고 격려했는데, 그 한마디는 물 한모금보다 더 달콤했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니?

마차푸차레 바로 옆에 있던 봉들 중 하나인데, 이게 안나푸르나 2봉인지, 6봉인지 잘 모르겠다. 눈이 쌓여있는 모양이 마치 빗으로 쓸어넘긴 것 같이 멋졌다. 날씨가 조금만 풀린다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보였는데, 위험할 것이라는 생각은 차치하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기 바빴다. 구름이 오고 나서야 비로서 멈추었다.

 

 

꽁꽁 얼어붙어있던 물줄기들

콸콸거리는 소리를 내며 에메랄드를 뽐내던 강물은 온데간데 없고 쪼르르 소리를 내며 소심하게 흐르고 있는 물줄기가 보였다. 생명의 기운이라기 보단, '태초'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듯 하다. 나는 트래킹의 끝에 거의 다 다랐지만 시작점에 온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이제 좀 높은 곳에 왔나?'라는 생각도 했지만 두 다리, 어깨, 양 팔, 그리고 입술도 같이 얼어버린 것 같았다. 입술이 마치 자석의 같은 극처럼 스르륵 ~ 밀려나 버렸다.

 

 

한참을 걸어도 변하지 않던 안나푸르나 1봉(8,021m)의 위엄

분명 다른 높이에서 사진을 촬영했는데 저 멀리 보이는 안나푸르나 1봉은 얼마나 높으면(무려 8,091m) 똑같은 높이, 똑같은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였을까. 지독하게 완만하다 싶을 정도의 경사였지만 3,000m의 고도에서 4,000m의 고도로 넘어가는 구간의 호흡은 큰 차이가 있었다. 속도를 내도 더이상 몸이 뜨거워지지 않았고, 숨이 가빠지고 고단하다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고도가 달라질수록 바람이 더 세게 불었고, 추위는 심해져 콧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는데 당시에는 추위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정신이 없었다. 뒤에 짊어진 배낭과 침낭의 무게(마음의 무게?)도 더 무겁게만 느껴졌다.

 

 

안나푸르나 남봉(7,219m). 가까이서 보면 잘 모르지만 멀리서 보면 대단하다

올라가면서 왼쪽을 바라보면서 있었던 안나푸르나 남(South)봉. 지나치게 급한 경사에 가려있는건지 7,219m의 높이가 실감나지 않았지만(상대높이가 775m라서 그런지 마치 동네 뒷산 같았다), 숫자만으로 두고 볼 때 높이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쯤은 알았다.

 

 

트래커들의 약속장소, ABC에서

드디어 도착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nnapurna Base Camp; ABC). 내 25년 반 오십 인생 최고의 높이이자(4,120m) 내가 수 년 전부터 꿈꾸었던 도전 과제를 성취하던 순간이었다. 목표를 달성했다는 성취감과 함께 허무함도 찾아왔지만, 오래전부터 준비해오던 과제를 수행해내니 후련한 기분도 들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아쉽더라. 하지만 아쉬움도 잠깐이었던 게, 나를 빙~ 둘러싸고 있는 이 설산들을 보니 더 높고, 더 멋진 곳에 가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EBC(Everest Base Camp), 랑탕, 무스탕, 쿰푸, 묵디나트, 토롱-라, 틸리초 호수, 그리고 히말라야를 넘어서 저 멀리 유럽의 몽블랑, 아메리카의 로키산맥, 세계의 끝 토레스 델 파이네 까지. '풍요의 여신'의 뜻을 가진 안나푸르나 덕분인지, 욕심과 꿈이 한도 끝도 없이 많아져 버렸다.

 

 

ABC의 가면 수많은 사람들의 사진들을 볼 수 있다. 내것도 챙겨올걸.

기념사진인지, 추모인지 모르는 사진들과 룽따들. 이 날 고(故) 박영석 대장의 추모비도 보고 왔었는데, 고등학교 시절부터 동경했던 분을 추모비만으로 만나뵐 수 없다는 게 슬프기도 했다. 안나푸르나를 뒷배경삼아 롯지의 야외벤치에 앉아 레몬생강차를 마셨는데, 차 한 잔에 두번째로 감동받았다. 여기서 마셨던 차는 내가 마셨던 차들 중 가장 따뜻했다. 이곳에서 그동안 쌓였던 피로를 녹이고 이곳을 감싸고 있던 안나푸르나의 절경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하산을 했다. 하룻밤 자고 갔으면 더 좋았겠지만(이곳에서 감상하는 밤하늘의 별과 주황빛의 일출을 위해서),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가슴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아마도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었나보다(조금 후회됨..ㅠㅠ).

 

 

갑자기 나타난 구름들...!

내가 내려가겠다고 다짐한 즈음부터 아래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던 구름들이 마차푸차레를 감싸기 시작했다. 히말라야는 아침에 감상해야 가장 깨끗하고 아름답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는데, 시간이 조금만 늦어졌어도 깨끗한 산들을 보지 못할뻔 했다. 구름이 끼지 않은 산과, 구름이 낀 산을 볼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구름모자를 쓰기 시작한 봉우리들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오는 구름이 저 멀리부터 보였는데, 그제서야 내가 꽤 높은 곳에 있다는 걸 알았다. 구름이 걸친 산들이 더 멋지다.

 

 

나를 위해 준비된 수많은 장면들

데우랄리(Deurali)근처로 왔을 때 즈음인데, 오늘 나의 한계를 시험해보기로 했다. 아침부터 꽤나 무거워져 있던 가방은 어디가 끝인지 모를만큼 무거워져 갔고, 가끔은 내가 트래킹을 하러 온 건지, 아니면 고행을 하러 온 건지 궁금했다. 그래도 아래로 내려오니 아늑하고 포근한(?)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구름이 내 눈앞에?

드디어 구름과 같은 높이에 섰다. 이정도로 가까웠던 적이 없었는데, 손에 잡힐 듯 말 듯 할 정도로 가까웠다.

 

 

히말라야(Himalaya)의 롯지에서

히말라야(Himalaya)에는 롯지가 유난히 많고 여기서 쉬어가는 사람도 굉장히 많다. 올라올 때 이곳에서 쉬면서 마운틴 듀랑 프링글스 작은거를 하나 사서 먹었는데 칩스 한 조각 한 조각이 얼마나 힘이 됐는지 모른다. 이곳에서 묵을까 하다가 아직 체력이 더 남아있어 도반(Dobhan, Dovan)까지 가기로 결심했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점심시간이 지난 이후였는데, 도반(Dobhan, Dovan)까지의 거리를 과소평가해서 점심을 안 먹고 그냥 지나쳤다. 결국 도착후에 식탐이 터져서 2그릇이나 먹고 말았지...

 

 

다시 마주한 습지. 도반(Dobhan, Dovan)으로 가는길

도반(Dobhan, Dovan)으로 가는 길.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해도 눈이 가득했던 곳이었는데, 벌써 습지로 와버렸다. 내 아래 혹은 같이 길을 걷던 구름들은 죄다 위로 올라가 버렸다. 이곳을 지나면서 미끄러지지 않으려는 노력을 무척 했는데, 그 때문에 허벅지와 무릎에 부담이 간 것 같다. 아프더라. 쉬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수많은 멋진 장면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빨리 숙소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좀 천천히 걸으면서 체력을 아껴둘 걸ㅜㅜ... 내가 숙소에 도착한 건 오후 4시 쯤. 새벽 6시부터 거의 10시간을 올라가고 내려가기만을 했다.  나는 숙소에 도착한 이후 피곤한 몸을 누이기 보다는 가장먼저 식사를 시켰다. 처음에는 한그릇만 먹을 생각으로 볶음밥을 시켰는데, 어찌나 맛있게 넘어가던지 올리브 파스타를 하나 더 시켜서 먹었다. 다 먹고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엄지척! 하며 맛있다고 맛있다고 너 요리 잘한다고 입이 닳도록 칭찬했던 기억이...ㅋㅋ

 침대에 누워 다리를 쭉~ 뻗고 누우니 한결 낫더라. 고단한 다리를 주무르고 칭찬하며 스스로에 대한 위로를 제대로 했다. 좀 노곤하긴 해도 그것들을 위로하기 위한 충분한 보상은 받았다. 안나푸르나의 수많은 봉들을 보고, 아주 잘생긴 마차푸차레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내가 그동안 꿈꾸던 히말라야 등반(물론 정상을 정복한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더 큰 꿈을 꾸게 된 것 등등. 이보다 더 좋은 페인킬러가 있을까. 인생이 한 여름 밤의 꿈이라고들 하는데, 내가 아주 좋은 꿈을 꾸고 있는 것 만은 확실하다. 너무너무 행복해서 쉽게 잠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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