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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기

 

어제 도반(Dobhan, Dovan)의 숙소에 도착한 이후로 비가 오다 말다를 반복했다. 숙소의 침대 한 켠에 누워 한참을 그대로 누워있다가 밖을 나와보니 구름이 잔뜩 껴 있었는데, 숙소의 주인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고산의 공기에 익숙해져 나름대로 빗소리가 주는 여유로운 리듬도 감상할 수 있었고 정상을 정복해 냈기에 혼자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많았다. 다만 이때부터 무릎이 좀쑤시긴 했지만 이 날은 버틸만 했다. 하룻밤 자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태어나서 처음 보았던 수국...!

숙소 앞에 있었던 수국은 아침부터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3,000m가 넘어가면서 메말라버린 산의 모습에 조금은 실망했었는데, 산중의 온도가 조금씩 미지근해지고 마침내 꽃을 볼 수 있는 숙소에 왔던 덕분이다. 자연이 보여주는 최고의 아름다움인 '꽃'을 아침부터 감상하고 나면 나도모르게 힘이 나곤했다.

 

 

마음이 더 따뜻했던 홍삼차!

어제 저녁 늦게 숙소에서 어떤 부부를 만났다. 안나푸르나를 오르는 동안 고산증을 앓았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왜 트래킹을 시작했는지에 대한 주제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그 부부는 결혼 후 13개월 동안 세계여행을 계획하고 현재 중국과 뉴질랜드, 호주를 거쳐 네팔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가보고 싶었던 세계 3대 트래킹 코스인 호도협, 내가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했었던 뉴질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미지의 땅으로 남겨두고 있는 호주 여행담은 내게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늘 결혼하면 세계여행을 신혼여행으로 하고싶다는 마음을 가슴속에 품고 있었는데(남들에게는 말못한...ㅋ), 이렇게 실제로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니 부럽기도 하고, 가슴속에 묻어두기만 했던 꿈들이 불타오르기도 했다. 네팔 여행이 끝나면 인도를 지나서 중동을 제외하고 곧장 아프리카 쪽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게다가 내가 평생의 꿈으로 간직하고 있던 남미까지! 이야기를 듣는 내내 여행의지가 불타오르곤 했다.

 늘 남보다 일찍 일어나서 출발해야 하는 일종의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던 나는 오늘 역시 그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옷을 입고 있었는데 어제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여자분께서 물을 데워서 끓여먹으라고 홍삼차를 나누어 주셨다. 한국사람의 인심이란 먼 곳에서 더 따뜻한 법이지.

 

 

멀어져가는 마차푸차레...ㅠㅠ

아마 수도 없이 그랬을거다. 촘롱(Chhomrong)쪽으로 내려가면서 아쉬운 마음에 뒤를 돌아보니 멀어져가는 마차푸차레(Machapuchare)의 모습이 보였다. 저 늠름하고 멋진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건 트래커의 본능이기에 도대체 사진을 몇장이나 찍었는지...

 

 

그들이 사는 세상 / 촘롱에서

촘롱(Chhomrong)은 워낙에 세대수(?)가 많다보니 이렇게 현지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일상도 마주할 수 있다. 타작을 하고 있었는데, 탁!탁! 거리는 소리가 우리네 일상과 다를 바 없었다. 가끔씩 지나가는 여행객(나를 포함해서)들을 바라볼 때면 씨익 웃어주기도 한다.

 이곳에서 유난히 많이 쉬었다. 내려가는 길이 더 쉬울거라 생각했지만 무릎이 유난스러울 정도로 시큰거렸고, 때로는 아프기도 했다. 이때부터 스틱을 사용해서 무릎을 관리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좀 후회스럽기도 하다. 관리만 했어도 도바토(Dobato) 근처에 있는 4,000m급 호수에 갈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이곳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구간이 많아서 혼자 유난을 떨면서 왔던 것 같다. 작은 것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고, 혼잣말을 하기도 하고(안타깝다...) 기념품샵에 들러서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말이다. 날씨가 유난히 쨍쨍해서 올라가는 길은 무척 힘들었는데, 곳곳에 널려있는 당나귀과 소들의 똥도 나의 기분을 상큼하게(?) 적셔주었다.

 

 

촘롱의 한 베이커리 카페에서

설산이 멀어져 가는 아쉬움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지만, 공기가 따뜻해지는 것만큼은 무척 반가웠다. 따사로운 햇빛이 마치 10년만에 찾아온 친구 같았고, 서늘한 아침 향기가 피부에 스며드는 것이 좋았다. 마침, 올라올 적에 점찍어 두었던 빵집에서는 갓 구운 빵의 고소한 향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는데,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었다. 카페에 들어가기 위해 이 곳 저 곳에 널려있던 당나귀와 소 똥들을 조심했었는데, 그렇게 하길 잘했다.

 카페에 들러 마시는 차 한 잔과 빵의 고소함은 아주아주 편안했다. 나를 앞서서 전차부대처럼 질주하던 독일 친구 클라우디오도 이곳에서 바깥배경을 벗삼아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나보고 자기가 만나본 아시아 인들 중에서 체력이 가장 좋다고 칭찬했다. 대단한 사람에게 칭찬 받은 건 아니어도 그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그와 동행하여 트래킹을 마무리 할까 하다가 속도를 봐서 이 친구는 인간이 아니다 싶었다(아마 따라갔다간 다리가 아작났을 뻔...ㅠㅠ).

 

 

다시 만난 고원 / 구루중에서

고작 4일 전에 보았던 고원들인데 그 색깔들이 더욱 더 아름다워 보였고, 허리를 굽혀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활기찬 움직임이 지쳐서 힘겨워하는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촘롱(Chhomrong)을 지나면 구루중(Ghurujung)출리(Chuli)를 지나게 되는데, 이때도 고도가 갑자기 높아지는 구간이라서 오르막을 피할 수 없었다. 아까는 따뜻한 햇빛이 반갑기만 했는데, 이제는 너무 뜨거워서 피할 곳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구루중(Ghurujung)으로 가려면 촘롱(Chhomrong)에서 밑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했다. 원래 되돌아온 길(지누쪽으로)로 다시 갈까 하다가, 스스로 자신감이 붙었는지 새로운 경로를 택했다.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놈들!!

역시, 흐르는 물을 만나니까 생기가 도는 것 같다. 더워서 죽을뻔했는데, 어푸어푸 세수를 하고 다시 걷는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구루중(Ghurujung)을 지나는 구간은 산과 산 사이에 위치하는 협곡을 건너는 구간이다. 물소리가 꽤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아마 이 사진을 찍은 건 다리 위를 건널때 인 것 같은데, 아마도 올라가기 직전이었던 것 같다.

 

 

내가 지나온 길을 바라보며 / 출리

저 멀리 번개처럼 나 있는 길이 내가 내려온 구간인데, 어느새 이렇게 높은곳까지 올라 멀리서 바라보게 되었다. 이 구간을 지나다가 유럽에서 단체로 여행 온 사람들을 마주했었는데, 아주 좁은 길을 지나다가 나의 젊은 혈기와 에너지를 못이겼는지 먼저 가라고 길을 내주기도 했다. 어떤 노부부는 나의 두툼하고 까맣게 그을린 다리를 보며 엄지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무엇을 하는 걸까?

중간에 롯지에 들러 쉬면서 며칠 전 올라가는 길 시누와(Sinuwa)에서 만났던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미얀마 여자를 만났다. 그 때 이야기 해 주었던 스님 두 분과 여자분 한 분을 만났는데, 마침 따다빠니(Tadapani)로 가시는 길이라고 하더라.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점심식사도 거르고 있던 찰나에 그분들이 감자를 먹고 가라고 하셨다. 개량되어 자란 감자가 아니라 그 말로만 듣던 누우런 감자!! 였는데, 맛은 어찌나 일품이고 씹히는 맛도 예술이던지 손이 뜨거워지는 것도 잊은 채 정신없이 먹었던 것 같다. 잠깐 인연이 닿아서 마주친 것일 뿐인데, 이렇게 극진한 대접을 해 주셔서 어찌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먹느라 정신이 없었는지 사진도 없네...

 

 

다시 모여드는 구름들 / 출리에서

고원에 위치해 있던 출리(Chuli)를 지났다. 구름이 태양을 가려 바람이 시원하게 불기 시작했고, 계속되던 경사로는 막을 내리고 다시 축축하고 어두운 습지가 앞에 나타났다.

 

 

숨쉬고 있는 바위이끼들

따다파니(Tadapani)로 가는 길은 꽤 좋았다. 조용한 것은 물론이고 뉴질랜드의 흔한 트랙코스 느낌이 나기도 했다. 숲 속을 혼자 걷는다는 것보다는 그냥 두둥실 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듣기론 우기에 이곳은 거머리 지옥이라고 하는데, 난 지금 트래킹 최적기에 와 있는것만은 확실하다. 거머리는 커녕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심지어 벌레소리조차) 나무와 이끼만 숨쉬고 있었다.

 

 

따다파니의 이름모를 꽃들

다시 거침없는 질주 후에 도착한 곳은 2,600m에 위치한 따다빠니(Tadapani). 이곳을 지나 고래빠니(Ghorepani) - 푼힐 전망대(Punhill veiwpoint)로 갈 생각이었다. 축 처진 몸을 의자하나에만 기대어 있었더니 몸에서 연기가 나더라. 그렇다. 이곳도 추운 곳 중에 하나였다. 돈까지 내가면서 오랜만에 와이파이를 쓰며 가족과 친구들에게 신나게 나의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곳에 묵게 된 샌프란시스코에서 오신 아주 동안이신 교수님 부부와 대만에서 공부중인 한국인 여학생을 만났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사소한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교수님도, 한국인 여학생도 한국외대 출신에 같은 과, 대만에서의 유학경력까지 모두 똑같아서 “이것이 인연이구나! 후배님!”하며 몇 시간 동안 입담을 뽐내셨는지 모른다. 교수님 부부는 정말 안다녀보신 곳이 없다싶을 정도로 여행을 많이 다니신 분들이었는데(지금도 여행중이시다), 이번에는 안나푸르나 라운딩 트래킹을 마치고 내려가시는 길이라고 하셨다. 덕분에 뢰스티(스위스에서 먹을 수 있는 감자전? 같은 감자전?)같은 감자전, 그리고 에베레스트 맥주도 같이 하면서 한참을 시간가는 줄 모르게 보냈다.

  여행을 하는 내내 궁금했었던 포터(짐을 대신 들어주는 짐꾼의 개념)들에 관한 이야기도 듣고(왜냐하면 나는 포터나 가이드를 고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행사의 횡포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아직도 그들에게는 인도사람들처럼 카스트 같은 계급제도의 개념이 있어서 불합리한 차별이 존재하고, 횡포 또한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인도에 갔을 때 카스트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분개했는데, 네팔에도 아직 이런 잔재가 남아 있다는 게 정말 안타깝게 느껴졌던 하루다. 포터들이 여행자들과 겸상을 하지 않는다던가, 일하는 만큼 정당한 보수를 받지 못하는 등등. 아직 세상엔 달라져야 할 것들이 많다. 꼭 그것들이 내 것이 아니어도 상식선에서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있으면 가끔은 내가 불편해지곤 한다.

 

  나는 여행하는 사람들이 좋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배낭 여행하는 사람들. 여행하는 사람들은 여유롭고 자유로우며 나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그들은 나의 멘토와도 같은 사람이고 나에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안내하는 이정표 역할도 한다. 나는 왜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라고 묻는다면 스스로에게 자문해서 온갖 생각을 해보아야 겠지만, 무엇이든 '왜'라는 것은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난 지금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꿈을 꾸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난 그들을 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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