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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의 감정에 타협을 대입하지 말 것'

 


 

헤헤

2014년 가을 쯤이었나. 지금 보고 있는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레터스 투 줄리엣이라고 대답했다. 멜로영화 정도로만 생각했던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12월 31일, 2016년의 마지막 날. 영화의 장르도 모르고 어떤 영화인지도 몰랐기에 마치 블라인드 시사회에 초청받은 기분이었다. 제목으로 미루어봐도 멜로영화인 줄 지레짐작할 수 있었지만 솔직히 기대를 안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를 시작한 후에는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 것도 잊은 채 영화에 집중하느라 방 안의 모든 불을 끄고 주인공의 한 마디 한 마디를 귀담아 들었다. 게다가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를 처음 만나서 그랬는지(어떻게 생긴지도 몰랐다) 더 신선했던 것 같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이탈리아의 베로나(Verona)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이탈리아의 베로나(Verona).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 하나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기도 하다. 줄리엣의 도시답게 오직 아름다운 단어들만이 어울리는 도시인 것 같다. 붉은색 지붕들이 사랑의 감정을 더하고, 톤다운 된 주황색 조명이 저녁 어스름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희곡에서도 줄리엣의 고향이 되는 베로나는 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의 도시라 할 만큼의 충분한 자격이 있어보인다. 영화를 보고 난 뒤 한 가지 결심한 게 있다면 베로나를 꼭 가보고 싶은 도시로 꼽았다는 것.

 

 

일에 대한 열정만큼은 최고인 빅터(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분)

영화는 뉴욕(New York)에서 시작된다. 작가 지망생인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 분)와 빅터(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분)는 약혼한 사이다. 둘은 어느 날, 거래처와의 만남 겸, 미리가는 신혼여행(?) 겸 이탈리아의 베로나로 여행을 떠나게 되고, 그곳에서 만나게 될 새로운 풍경들, 낭만적인 시간들을 꿈꾼다. 하지만 두 사람이 생각하는 여행의 목적은 판이하게 달랐다. 가르다 호수를 배경삼아 빅터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소피와는 달리, 와인 농장에 가야 한다, 요리를 배워야 한다, 경매장에 가야 한다며 소피와 함께하는 시간을 뒤로 미루던 빅터는, 여행 내내 Win-Win이라는 합리화를 통해 이해를 강요한다.

 

 

Win-Win?

남자친구의 열정은 못이기겠는지 이런 순간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소피.

 

 

우는 여자를 보며 마음 아파하는 소피

우연히 발견한 줄리엣의 집 앞에는 세상의 모든 고민을 적어 담벼락에 붙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눈물에 젖은 편지, 사랑에 대한 고민을 진솔하게 담은 편지 등 내용도 다양하다. 이 편지는 어떻게 될까 궁금하여 기다리던 중, 베로나 시의 공무원이 가상의 줄리엣이 되어 담벼락의 편지에 일일이 답장을 해 준다는 것을 알게되고, 참여를 허락받아 편지 수거를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힌트: 벽돌

편지를 수거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한 통의 낡은 편지. 벽돌 뒤에서 50년이 지나도록 잠들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고, 편지를 쓴 사람은 '클레어(바네사 레드그레이브 분)'라는 영국 여자임을 알게된다. 편지 주인공의 생사도 몰랐지만, 편지를 썼을 사람의 진심어린 마음을 생각해서 답장을 하기로 결심한다.

 

 

영화를 볼 당시에는 내용이 참 궁금했다.

밤이 깊어지도록 답장을 쓰고 있는 소피. 나는 어떤 내용을 쓸까 정말 궁금했다. 개인적으로 편지 쓰기를 좋아하는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정도의 작문실력이 궁금했다. 이 편지 한 장이 모든 내용의 복선 역할을 했다. 그래서 더욱 더 궁금했다.

 

 

갑자기 나타난 영국남자, 찰리

편지를 받고 베로나를 찾았다는 클레어와 그녀의 손자 찰리(크리스토퍼 이건 분). 소피에게 다소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내며 왜 답장을 했느냐며 공격적인 말투를 이어가는 그는 자신의 할머니의 마음에 불지피지 말라고 당부한다. 처음에는 '이 싸~가지 없는 자식'이라고 육성을 내뱉으며 영화의 진행을 방해하는 역할일 것 같아 불편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영국남자의 섹시 터지는 발음은 여전하다. 엄청 매력적(호주 발음이 조금 있긴 하지만서도).

 

 

저 츤데레를 우에할꼬...

시에나 지역에만 74명이 넘는 로렌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지만 힘이 닿는데까지 찾아보기로 한 그들. 츤데레 기질이 다분한 찰리는 그만 두자고 조른다. 이 망할놈의 츤데레....

 

 

김치싸대기의 모티브는 여기서?

라며 짜증을 내는 순간 봉인해제. 남자의 넋이 나간 저 표정이 보이는가. 아이스크림 원투펀치 싸대기를 맞아도 기분이 좋아보이는 저 표정을 보아하니 둘이 나중에 무슨일을 낼 것이 분명했다. 아무튼 로렌조를 찾는 과정에서 둘은 알게모르게 서로를 알아가게 된다.

 

 

난 사랑에 빠졌어

단순히 클레어가 로렌조를 찾는 데에서 끝나면 조금은 아쉬웠을법 한 것이 찰리와 소피의 감정선에도 옮겨붙는다. 영화 내에서 황혼의 세월이 느껴지는 잔잔한 사랑과 불같은 20대의 사랑이 동시에 진행된다.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내용의 개연성이 '줄리엣'이라는 매개를 통해 이어지고 클레어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배운 '사랑을 대하는 방법'을 찰리와 소피에게 전달한다. 자신의 감정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젊은 이 두 사람에게 용기를 가질 것을 당부하고, 불처럼 피어오른 사랑을 은근하게 지속시켜 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How many Sopies do you think there are in this planet?

Don't wait 50 years like I did. Go! Go! Go!

Cause the truth is, Sophie, I'm madly, deeply, truely, passionately in love with you.

케케묵고 통속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라면 질렸을만 했지만 세대를 뛰어넘어도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이라는 본질적인 감정은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을 동화처럼 보여준 영화였다. 나도 한 번 다시 생각해볼까. '너무 늦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너무 늦은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지금도 진짜라면 말이다.

 

 

Cheers in the stars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아마도 클레어가 소피로부터 받은 편지를 낭독하는 장면이 아닐까 한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려고 하는 '사랑'이라는 본질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고, 주저하는 이에게 용기를 불어 넣는 장면이 나온다. 새해에는 이 용기가 발현이 될 수 있길 기도하면서.

 

사랑하는 모두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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