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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막 종료, 3막의 시작

트루비옹 2017. 5. 26. 18:56

 


 

 

2막 종료, 3막의 시작

4수만의 취업준비생, 드디어 끝

 

 


버스 가장 뒷칸에서 이 메세지를 보는 순간이 얼마나 긴장되고 떨렸는지 모른다. 면접을 본 이후로 나도모르게 흠칫해서 놀란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드디어 오늘 가슴속에 꽉꽉 가득차 있던 응어리들이 해소되는 순간인 것이다. 난 순간 놀라 버스 안에서 소리를 질렀고, 다들 무슨일인가 싶어 내가 앉아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보처럼 머쓱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신호를 보냈고, 굉장히 민망한 순간이었지만 벅차오르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버스에서 빨리 내리고 싶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알려야했다. 이 사실을 알리기 전까지 나는 가족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고, 가족들도 나의 눈치를 보고 있었던 상태였다. 면접을 보고난 이후에 잘 보았다, 혹은 못 보았다라는 말은 하지않고 '찝찝하다'라는 표현으로 대신했었는데, 이때문에 가족들이 많이 답답해 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바로 전화를 주셨고, 나의 합격을 매우 축하해주셨다.

친구들 역시 기뻐했다. 08친구들에게 제일 먼저 알렸고, 그 기쁨을 함께했다. 이것저것 준비한다, 면접 준비한다는 식으로 친구들에게 정말 많은 신세를 졌는데, 이것들을 조금이나마 보상한다는 기쁨 하나와, 늦깍이로 취준하는 동안의 외로운 투쟁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일종의 해방감도 느꼈다. 일단 그 당시에는 내가 사회인으로서 3막을 시작한다는 기대보다는 '취준'이라는 2막이 끝났음에 너무나 기뻤던거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의 2막은 참 길었다. 대학교 수업들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고,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고전적인 질문이 취업이 끝나는 시점까지 나를 괴롭혔다(사실 계속해서 자문할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스스로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자 했고, 20대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을 가슴속에 새겨두고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하지만 2015년 상반기 첫 취업의 문턱에서 발목을 잡히게 되면서 내가 믿고있었던 신념이 하나 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는 대단하다'라는 믿음이 점점 무너져갔다. 그 어느 기업도 나를 원하지 않는 것만 같았고, 기업들이 지원자에게 기대하는 스펙의 벽은 높기만했다.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토익점수 하나 없었고,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한국사나 한문 자격증도 없었다. 1분기가 지나고, 또 지나면서 마치 깡통처럼 느껴지는 나의 내면에 비참함과 자괴감을 동시에 느꼈다.

 

'내가 노력을 하지 않았구나, 그동안 뭘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었던 건, 내가 할 수 있을거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차마 버릴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부터 늘 들었던 말이 있었다. '너는 잘 할거야, 너는 잘 될거야'라는 한 마디는 나를 지탱하는 하나의 힘이었다. 시험에서 과락하고 대학교 수업에서 쌍권총을 맞아도 나는 늘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긍정적인 마음 하나만으로는 지금 봉착해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나는 이전보다 더 독하게 마음먹고 냉정하게 나를 바라보기로 했다.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고시원가서 해보려고요."

 

결과론적이지만 이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집에 있으면 공부를 안하고 퍼지는 나의 성격과 고시원 있으면서 했던 나의 다짐은 대조적이었다. 아침마다 고시원의 침대에서 눈을 뜰 적이면 더 이상 잠들면 죄를 짓는 기분이라는 생각까지 들었고 스스로를 채찍질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수단이었다. 고시원에서 도서관까지는 7분 거리에 있어 아침 일찍 갔다가 저녁 늦게 오기에 아주 좋은 위치였고, 직능원 다닐 때 모아둔 돈도 넉넉하게 있어 경제적인 부담도 없었다. 아침 여섯시에 도서관에 도착했고, 집에 오면 오후 열 시였다. 밥만 먹고 공부만했다. 이 짓을 세 달 동안 했다. 최후의 보루라는 생각으로 상반기 전형에 임했고, 내가 치루었던 전형이 합격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다음전형을 동시에 준비했다. 서류를 낸 이후에는 서류가 반드시 통과한다는 믿음으로 인적성 고사를 준비했고, 인적성 고사를 치룬 이후에는 반드시 합격한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면접을 미리 준비했다. 2학년 이후로 전자회로를 멀리하던 나였기에 소자의 기본 동작원리조차 몰랐던 내가 가장 밑바닥부터 공부하고 비싼 돈주고 강의도 수강했다. 남들이 인적성고사 책 한 두권만 풀 때, 나는 인적성고사 모의고사만 20회 이상을 풀고 오답을 정리하면서 모든것을 달달 외웠다. 전공을 공부하면 남들에게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입으로 말하고 종이로 기록하고 모르는 것은 아날로그 소자를 전공한 선배에게 도움을 청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임원면접이었다. 취업시즌을 네 번이나 흘려보내면서 늘 최종면접(임원면접)에서 고배를 마셨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가고자 하는 기업에 대한 분석과 나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했다. 수 십년 동안 거울을 보며 대면해왔던 나인데, 이번 면접만큼은 어렵게 느껴졌다. 생각만큼 말이 잘 나오지 않아 한동안 고생했고, 질문을 받으면 머릿속에서 정리를 하느라 버벅대기 일쑤였다. 역시나 가장 중요한 것은 반복과 노력. 나는 스스로에게 궁금한 것들을 300여 문장을 만들어 리스트로 만들었고, 완벽한 대답은 아니더라도 질문을 받았을 때 즉각적으로 떠올릴 수 있도록 스크립트로 정리했다. 덕분에 면접스터디원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던 나도 차츰 좋아진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로인해 긍정적인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뭐 어찌됐든, 면접의 결과는 이러하다. 기분은 째질듯이 좋고, 몸과 마음은 하늘로 날아가 버릴것 같다(살은 좀 쪘지만). 동화속에 나오는 호박이 마차가되고 이제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 나의 3막은 좀 더 구체적이고 계획적이고 멋진 그림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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