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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SVP종료, 변화와 다짐의 시작

트루비옹 2017. 7. 13. 17:57

 

 

3막의 시작, SVP(Samsung shared Value Program)

20일의 연수,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었던

 


1706 천안연(열어줘) SVP동기들과 함께

"끝났다"

 

SVP를 시작하기 전의 나라면 분명히 이러한 말로 끝내고 싶었을 것이다. 5월 26일 기쁜 소식을 접한 이후로 신체검사가 언제인지 궁금했고, SVP가 제발 늦은 일정으로 잡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8월 일정이 잡힌 졸업예정자들이 한없이 부러웠고, 나의 촉박한, 인생의 마지막 휴가일 것만같은 일정을 부족한 여행시간으로 채우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아버지와 일본 온천여행을 가고,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자산계획을 구체화시키고, 급히 친구들과 만나 이전에 못다했던 대접을 하고 등등. 붕 떠버린 나의 3주를 가득 채우기엔 몸도, 마음도 정신이 없었고, 6월 20일로 잡힌 SVP일정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3막이 시작하는 것에 대한 기대감 보다는 2막이 끝나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나도 컸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어 무섭기도 했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은 전혀 무섭지 않다는 것이 '나'인 줄 알았는데, 막상 닥치니 생각만큼 안 무섭지 않았다. 3막이 조금 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인지 막상 취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준비되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졌고, 그것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스스로를 의심했던 탓이다.

 

 

우리 유닛 정말 미안해...

6월 20일 오전, 아버지의 배려로 천안 아산역에 편하게 도착했다. 나는 가장먼저 도착해서 2번 출구 바로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기다렸다. '저 사람인가?', '아니면 저 사람인가?'를 수십 번도 되뇌였을 거다. 익숙하지 않은 비즈니스 캐쥬얼과 구두가 너무 불편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전날 밤까지는 위에서 말했던 두려움과 걱정들 때문에 잠들지 못했을 정도였는데, 막상 아침이 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뛰고 설레었다. 사람이 지나갈 적마다 밖을 조심스럽게 쳐다보는 스스로를 관망하면서 헛웃음도 나왔다.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무식할 정도의 기대감을 가지는 내 모습이 웃겼던 거다.

 

 

뉴페이스 ~

아마 기억하기론, 천안아산역의 선탑을 나온 선배는 오병민 선배와 안태형 선배였을 것이다. 두 선배 다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자켓을 갖춘 비즈니스 캐쥬얼을 입고 있었고, 조금은 농익은 선배의 향기가 났다(왜였을까?). 2번 출구 근처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예비 신입사원들은 일제히 한 곳으로 모여들었고,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렸다. 저 사람들의 마음도 나와 같을까, 다들 실력이 짱짱하겠지 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자신감으로 가득 찬 동기들의 모습에 주눅이 들었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다.

 

 

메이크 인 인디아!

버스로 50분을 달려서 연수원에 도착했다. 대강당에 동기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20일 간의 연수를 진행할 주진행 선배님께서 들어오셨다. 모두의 표정을 한 번 쭉 살폈는데, 모두가 희망과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취업 때문에 고심하던 그간의 길고 짧았던 시간들을 뒤로한 동기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입과를 환영했다. 일정에 대한 소개를 받고, 이것저것 설명을 들으면서 조금은 지쳤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들이 들어오는 것 같아 머리가 아팠고,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알게 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처음엔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야 하나, 아니면 나잇값 하는 척, 고고한 척, 그리고 회사원이 되었으니 좀 더 의젓한 척 해야 하나 고민했다. 이렇게 나 자신을 숨기기 바빴고, 사람들의 눈도 마주치기 힘들었다. 근데 오래 안 갔다. 3일 만에 내 안의 벽을 무너뜨리고 온전히 나 자신이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과거의 나를 바꾸기 위한 시작을 이곳에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연수 커리큘럼이나 사진 등은 보안 사항이기 때문에 마음속에 묻어두려 한다. 다만 이러한 과정에서 스스로의 변화에 좀 더 집중해보려 한다.

 

 

꺄르르꺅 꺄르르르

여성훈

 

나는 이런사람이었다.

첫째, 나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변화할 수 있는 기회와 충분한 능력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가지고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평범'이라는 가치에 투자했다. 때문에 나는 발전이 없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 줄 무언가가 딱히 없었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아들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나의 구체적인 의견은 없었으며, 사춘기는 먼 나라 이웃나라 이야기 일만큼 '평범 그 자체'의 모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 평범한을 깨부수기 위해 '한 번' 도약했다.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배낭여행을 하며 세계의 여러 사람들, 그리고 문화를 접하려 노력했고, 일부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혼자만의 생활에 익숙해진 나머지 스스로를 과신하고 이기적이며 오만함으로 가득 차 버렸다. 이전과는 다르게 쉽게 남을 믿지 않는 성격이 되어버렸고, 지독한 냉혈한에 오죽하면 파충류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버티고 인내하고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집중하고 노력하는 의지를 가지게 되었지만, 칼을 너무 날카롭게 갈다보니 스스로를 베어버리고 만 것이다.

 

 

자 이렇게 해보자

둘째, 나는 발표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었다. 대학교 3학년 시절,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조원이 세 명, 게다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형들이 조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형들이 취업 준비하느라 바빴던 탓에 내가 프로젝트를 리드하고 발표까지 해야했다. 70여장의 보고서를 준비하고 30장이 넘는 PPT를 준비하면서 생전 접해보지도 않은 생체인식에 대한 이론적 지식이 빠삭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딱 한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발표였다. 이전의 나는 발표라는 걸 단순히 '보고 읽는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PPT에는 내가 딱 읽기 좋을 정도로 텍스트를 넣었고, 내가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의 그림 몇 개와 간단한 애니메이션 효과도 넣어서 스스로가 만족하는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초등학교 때 컴퓨터 학원에 다니면서 배운 알량한 지식을 활용하면서 스스로가 잘났다고 위로했다. 결과는 대 실패였다. 발표 자료와 내가 말하는 내용은 아구가 맞지 않았고, 발표시간은 오버되고, 내가 말해야 할 내용도 잊어버려 횡설수설하기 일쑤였다. 나의 발표를 듣는 교수님을 포함한 70명의 사람들은 내 발표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고, '저 새끼 왜 저래?' 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한마디로 쑥대밭이었다. 이후로 발표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커져만 갔고, 발표할 기회가 오면 숨어버리는 게 나의 일이었다. 발표는 나와 맞지 않는 일, 발표는 두려운 일, 발표는 나를 더 작게 만드는 일이 되어버렸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미친거 아님)

셋째, 나는 의견을 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창의성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철저하게 숫자에 의해서 판단하고 구체적인 근거로 분석하며 검증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거부감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무엇에 대해서 만들어 내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일이었으며 이 때문에 주로 서포트 역할을 맡아서 했다. 그것이 즐거웠고, 내가 잘하는 일이라 믿었다. 레고를 할 때에도 창의적인 주제로 접근하는 것보다는 설명서에 나와 있는 순서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더 즐거웠고, 부품하나, 블록의 위치하나라도 흐트러지면 신경이 쓰이곤 했다. 그만큼 정()에 어긋나는 것이 싫었기에 창의성은 더더욱 상상할 수 없었다. 이미 있는 것에 대한 온유함, 이미 검증된 현상이 주는 편안함,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사상이나 생각에 대한 안도감이 나는 더 좋았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수료증 짠~

부수고 싶었다. 살면서 끊임없이 가지고 있었던 트라우마와 나의 역치, 그리고 고정관념들을 깨부수고 내 안에 잠들어 있는 또 다른 데미안을 깨우고 싶었다. SVP를 통해서 내가 입사하게 될 회사의 가치와 역사를 배움과 동시에 스스로가 얼마나 가치 있는(Valuable)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나는 노력하고 싶었고, 역치를 깨부수고 싶었고,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역량이 얼마나 되는지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SVP가 나에게 더없이 좋은 하나의 기회가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손을 자주 들었고, 자주 지원했고, 내가 생각하는 바를 열심히 말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를 시도하기 위해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했다. 상대방의 말을 좀 더 열심히 듣고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해 두었다가 언제든지 피드백 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잠을 좀 더 못자더라도 하루를 피드백하기 위해 일기를 쓰고, 나의 이러한 다짐을 다잡을 수 있게 시간을 쪼개 운동을 했다.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욕심을 부렸고, 나의 이러한 다짐이 오래 가기만을 간절히 바랐던 것 같다.

또한 스스로를 낮추기 위한 집중을 했다. 나는 오만한 사람이고 스스로의 능력을 과신하며, 내가 집중하여 이루어낸 성과를 드러내고 싶어 안달 나 있는 사람이었다. 이 때문에 항상 진중하고 고루하며 대화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일 이야기뿐이라 지루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번 한 번 쯤은 진지하고 무거운 사람에서 벗어나 좀 더 스스로를 낮은 곳에 내려놓고, 대화의 소재를 좀 더 가볍게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일상에 녹아들기 위한 대화에 조금 더 집중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입사하기 전의 모습에 조금 더 관심을 보이고 가벼운 소재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사람들에게 특정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싶었다. 동기들과의 연수에서 만큼은 업무능력이나 과제 등을 차치하고 조금 더 교감하고 공감하는 대화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선배아영과 아이들

나는 과연 잘 했을까? 라는 말로 평가받고 싶지 않다. 나는 과연 얼마나 변화하기 위해 노력했을까? 라는 말로 평가받고 싶다. SVP에서 나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원래 여성훈은 저런 사람이라는 시각으로 나를 바라보고 평가해 줄지 모른다. 이것은 지극히 객관적이고 나를 평가해주는 가장 정확한 지표가 될지도 모르지만, 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따로 두고 싶지 않다. 과거를 지표삼아 오늘 변하고, 하루를 반성하고 내일을 계획하여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싶다. 그러한 점에서 이번 SVP3막의 시작에서 가장 가치 있는 역할을 해 준 것이 아닌가 싶다.

 

 

1706 천안연 SVP D팀 AT. PRIDE IN SAMSUNG

20일간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게 해 준 15명의 팀원들과 연수기간 내내 멘토 역할과 팀을 책임져 준 김아영 선배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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