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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부자(父子)여행

신칸센은 그렇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를 가야하나...

이르지 않은 아침이었다. 전날 술에 절었던 나와 아버지는 일찍 일어나지 못했다. 원래는 하카타에 가서 신나게 쇼핑을 하고 근교에 들러서 메밀소바를 먹고 일본 느낌이 물씬 나는 신사에 들러 구경을 하려고 했지만(머릿속으로 구상중이었지만), 오늘은 유난히 아버지께서 힘에 부쳐하셨다. 느즈막히 준비를 하다가 10시즈음에 슬그머니 호텔을 나섰다.

 

 

고쿠라 성에서

아버지와 내가 선택한 첫번째 장소 고쿠라 성. 고쿠라 성을 올려다보니 문득 오사카에서 봤었던 오사카 성이 생각났다. 짙푸른(깊어서 그런가?) 해자를 조심스럽게 두르고 있던 오사카 성 주변을 자전거로 씽씽 달렸던 기억이 난다. 땡볕아래에서 단 수 낮은 자전거를 있는 힘을 다 짜내면서 굴렀고, 땀을 흘린 만큼 짧고 굵게, 그리고 알차게 구경을 했었지. 고쿠라 성은 오사카 성보다는 스펙(?)이 조금 달리지만,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일본스러움'을 잘 보여주는 성이었다. 아버지께서 이 성을 좋아하신 것 같았다. 진짜로 일본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말씀을 하셨을 정도.

 

 

해자를 두른 고쿠라 성

'나도 일본식 성이야!'라고 말을 하는 것인지 고쿠라 성도 나름대로의 멋이 있었다. 해자 위로 아무렇게나 솟아 있는 피라미드 모양의 돌담 주변으로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인지 짙은 이끼와 풀들이 우거져 있었고, 크지는 않았지만 팔뚝만한 잉어들이 즐비하게 있었던 해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걷는 게 그냥 좋을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아버지와 딱히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있는 고쿠라 성 그대로의 멋에 즐거웠던 곳이다.

 

 

일본스러운 것들을 찾아라

그늘에 이슬이 마르지 않아 약간은 축축해 보였던 입구. 처음엔 비가 온 줄 알았었다.

 

 

아름다운 꽃은 놓칠 수 없다, 수국

어딜가나 빠지지 않는 나의 꽃사랑. 네팔에서 봤었던 수국이 생각났다. 도반(Dovan)의 숙소였었지 아마.

 

 

낮잠을 즐기던 냥이들

따뜻한 차의 아랫목이 좋았는지 고양이들이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사람들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던 고냥이들 :D

 

 

흔한 일본의 역

고쿠라 성 이후에는 어디를 갈 것이냐고 자꾸만 물어보시는 아버지를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내가 계획했던 일정이 빡빡한 것이 아니었는지를 한 번 점검하고는 나의 체력이 곧 아버지의 체력일 것이라는 등식을 버려야만 했다. 멀기만 한 후쿠오카 근교 여행을 대신해서 일본에 왔으니 신칸센을 체험해 보고 싶으시다는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고자, 발걸음을 조금 느리게 했다. 첫날 끊었던 북큐슈 레일패스가 신칸센도 탈 수 있다는 말에 즐거워 하시던 아버지가 기억난다.

 

 

요염한 신칸센의 모양새

신칸센 앞에서 그나마 좀 웃으셨던 아버지. 내가봐도 신칸센이 좀 신기하긴 했다. 앞은 어찌나 날렵하게 생겼던지.

 

 

출발을 기다리며 맥주와 함께

정확한 시간에 맞추기 위해 벤치에 앉아서 마셨던 맥주와 포카리 스웨트. 일본은 역시 아무때나 마시는 맥주가 일품이다.

 

 

대충 이런 속도인데 생각보다 가속도가 빠르다. 규슈신칸센은 상대적으로 속도가 좀 떨어진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빠르긴 무지 빨랐던 것 같다.

 

 

구마모토의 얼굴, 쿠마몬

'곰'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도시답게 구마모토의 얼굴을 담당하고 있는 쿠마몬. 사진찍기 싫었는데,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가 없었다. 마치 어린이가 된 기분이야.

 

 

몇 겹이야?

이왕 구마모토까지 온 거,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가기엔 너무나 아까웠다. 역 안에 자리하고 있는 그럴듯한 식당에 들어가서 나는 돈가스, 아버지는 우동을 시키셨다. 푸짐한 양에 한 번 놀라고 엄청난 고기의 두께에 두 번 놀랐다. 뭐든 본고장에서 먹어야 된다는 말이 참인가 싶다. 배터지게 먹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많이드셨는지, 저녁까지 배불러 하셨다.

 

 

하카타 역 앞에서

그렇게 구마모토 여행(?)을 마친 후 다시 돌아온 하카타. 후쿠오카의 중심지답게 사람도 엄청많고 커다란 빌딩도 많았다. 볕이 생각보다 뜨거워 더위를 잘타시는 아버지가 힘드실까봐 걱정했는데, 빌딩 덕분에 생긴 그늘이 도와주었다.

 

 

하카타의 쇼핑메카, 커널시티

더위를 이겨내고 도착한 캐널시티. 개인적으로 하카타에서 더위를 피해서 쇼핑하기 가장 좋은 곳이라 생각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브랜드인 유니클로와 더불어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브랜드도 많이 입점해 있고, 악세서리샵이며 캐릭터샵이며 볼거리가 넘친다. 지하에는 다이소 격 되는 잡화점이 있는데, 거기서 온갖 기념품을 많이 샀던 것 같다. 보통 발의 피로를 풀어준다는 휴족(休足)과 치약 등등 기호에 맞는 제품이 차고 넘친다.

 

 

안녕? 하리보

동생이랑 어머니가 좋아하는 하리보 구경도 하고,

 

 

사진을 찍을때면 터미네이터가 되어버리시는 아버지. 이제 좀 웃으실때도 되지 않았나요...?

홀 중앙에 있었던 인공운하에서 사진찍는것도 잊지 않는다. 아버지 좀 웃으시죠.

 

 

커널시티의 인공운하를 내려다보며

인공운하가 생각보다 멋있어서 찍었던 사진. 위에 올라가니 좀 낫네.

 

 

아직 지지 않은 기타큐슈의 밤

아버지와 이것저것 쇼핑하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도 한 잔씩 하고 등등. 특별히 뭔가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와 단 둘이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이것저것 보고 일본과 한국 비교하고 기차도 같이타고 같은 방향 바라보면서 잡담하는 모든 것들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어색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솔직히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단 둘이서 어딘가를 갔던 것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서로의 생활이 너무나 바빴고, 취업이라는 문턱이 내 자존감을 바닥까지 있는힘껏 내동댕이 쳐 놓아서 그런지, 오히려 옆에서 누군가가 말 없이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워 했기 때문일거다. 그래서 너무나 가벼운 마음으로 아버지와 같이 여행을 하니 이보다 더 좋을순 없었다.

 

 

아쉬운 것은 못참아

아버지께서는 점심을 많이 드신 탓인지 저녁은 건너뛰시겠다고 했다. 이왕 여기까지 오신김에 맛있는거 같이 먹으러 나가자고 했지만 너무 피곤하셨던 나머지 호텔에서 쉬시겠다고 말씀하셨다. 10년 전 체력이시면 나가서 술 한 잔 더 하셨을 체력인데, 온종일 돌아다닌 탓인지 피곤에 부치신 까닭일거다. 그래도! 나는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방을 나섰다.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다가 들어간 로컬 음식점. 한국어 메뉴판도 , 영어 메뉴판도 없었던 곳이기에 더더욱 맘에 들었다. 그래도 진짜 2년만에 일본에 왔는데, 우동이랑 덴뿌라(튀김요리) 정도는 먹어야 하지 않겠냐며 마음속으로 소리치고는 마음에도 없었던 세트메뉴를 과감하게 주문했다. 영양밥은 덤. 배가 터질때까지 먹었던 것 같다. 세상에, 이게 8천원 정도 밖에 안한다니.

 

 

마지막 날 역시, 맥주 한 캔(+소주 한 병)으로 마무리

저녁을 먹고나니 비로소 생각난 것. 아버지는 저녁을 안드셔서 배고프실 것 같았다. 편의점 음식을 맛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사갔던 벤또와 스시 6피스. 덤으로,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알코올 매장을 발견해서 득템했던 바로 그 것, 소주 한 병. 이게 괜찮은 안주가 될까 싶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아주 깨끗하게 비우셨다. 어제 남았던 사케며, 소주 한 병이며, 벤또와 스시 6피스까지 모조리 다. 대식(大喰)의 습성은 아버지를 닮은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는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 밤을 소주와 함께하셨다. 내가 취업한 것을 3일 내내 말씀하시면서 어찌나 기뻐하시던지.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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