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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서

매우 공개적으로 '남미 여행 갈사람!'이라는 구호를 시작으로 같이 여행갈 메이트들을 구했는데, 어쩌다보니 남자 하나에 여자 네 명이 되어버렸다. 애초에 처음부터 우리는 캐리어가 없는 여행을 할꺼야~ 라며 공고를 하고 다녔는데, 뜻하지 않게 이런 1:4의 성비로 멤버가 꾸려졌고, 출발하기까지 추가 되는 인원은 없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의 시선은 내가 셰르파가 될 것이라는 확신의 메세지를 보내왔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다들 자신의 여행과 다른 사람의 즐거운 여행을 책임지기 위해 노력해 준 덕분이었다.  

 

여행의 처음과 끝을 내가 진두지휘해서 계획했다. 배낭여행이 익숙하지 않은 친구들을 위해 배낭 패킹 시 반드시 가져가야 할 품목들을 정리하고 전체적인 여행 최종 플랜 공유를 시작으로 여행의 막을 열었다. 현지 도착 시간을 제대로 맞추기 위해 첫날의 면세점투어를 희생했기 때문에 인천공항에서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는 못했다. 

 

순조로운 출발. 여행은 항상 출발 전이 가장 좋은 것 같다. 기분이든, 몸상태든.

인천공항에서 저렇게 Check-in을 하는 시간은 언제나 설렌다.

 

 

미국임

쿠스코까지 한 번에 가는 항공편이 없어 반드시 한 번 이상 경유를 했어야 했는데, 미국 땅이라도 한 번 경유해보자는 심산에 댈러스 경유를 택했다. 사실 스타벅스의 나라인 미국에서 스타벅스에 가보려고 했는데, 댈러스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이 완전 한밤중이라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 스타벅스 간판 앞에서 구경만 했음 .. 

 

 

해발 3,000m의 쿠스코. 처음엔 좋은줄로만 알았다.
쿠스코의 흔한 오후

우린 마침내 길고 긴 비행여정을 거쳐 쿠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쿠스코는 해발 3,000m에 위치한 도시였는데, 마추픽추로 바로 향하는 비행기가 없다보니 마추픽추에 가기 위한 거점도시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이 곳에 도착하면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은 나의 심박수 조절과 셀프 상태점검인데, 아무래도 고산의 환경에 천천히 적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곳에 도착하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적게 들어오는 산소의 양과 내 몸의 상태에 당황하기 일쑤다. 하늘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맑은 하늘을 반가워하며 방방 뛰어다니다간, 아주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우리가 도착한 것은 점심이 무르익을 때 쯤이었는데, 얼른 숙소에 짐을 풀고 점심을 먹을 계획을 가지고 택시를 잡아 탔다. 어느 도시의 흔한 오후처럼 도로는 붐빈다.

 

 

고산병에 좋다는 코카잎
옛날에 Mate가 생각나는 맛

택시기사에게 우리가 예약한 숙소의 위치를 보여주니 곧잘 찾아가 주었다. 숙소에 이렇게 막 들어서면 여느 호텔들과 같이 Welcome이라는 메세지가 적힌 브로셔가 보인다. 그리고 이곳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코카잎이 잔뜩 담긴 바구니도 보인다. 고산병에 좋다는 코카잎인데, 뜨거운 물에 우려 찻물을 내어 마실 수 있도록 온수가 나오는 정수기와 함께 마련이 되어 있었다. 이때만 해도 뛰어다닐 일이 없고 많이 걷거나 한 것이 아니어서 내가 설마 저걸 마실 일이 있겠어? 싶었다. 그래도 맛이 궁금하여 한잔 푹 우려 마셔보았다. 뉴질랜드에서 마셔봤던 마테(Mate)와 비슷한 맛이 난다. 이때만 해도 이 코카잎을 생존이 아닌 '차'로써 즐길 수 있었다. 이때만해도 내가 고산병에 무적인 줄 알았다. 

 

 

신났쥬?
다들 기분이 좋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좀 쉬고싶었는데, 여독이 채 가시기 전에 그래도 밥부터 해결하자 해서 밖으로 나왔다. 사실 다들 이때부터 신이 나서 그런지 심박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쿠스코 광장
기분이 좋은 여사님들

언덕길에 위치해있던 숙소를 나와 10여분 정도 걸어 내려가니 쿠스코 광장이 보였다. 기분탓인지는 모르겠는데 이렇게 넓은 곳에 나오니 하늘이 좀 더 가까워보인다. 

 

 

문제의 와인

우린 쿠스코 광장에서 바로 보이는 어떤 식당에 들어가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고, 점심메뉴와 함께 무턱대고 와인을 한 잔 시켰다. 좀 가볍게 마실 생각으로 시킨 와인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샤도네이가 담겨져 나왔고, 꿀꺽꿀꺽 열심히도 마셨다. 여행 첫날의 기분좋은 느낌과 배고픈 상태에 앞에 놓여있는 피자와 파스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와인을 마시니 환상의 콤보가 이게 아니고 뭐람... 근데 결론부터 말하면 이 와인이 문제였다...

 

 

광장에서 쓰러짐

와인을 한 잔 마시고나서부터 점점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하더니 어질어질 두통에 온몸에 힘이 없어 걸어다니기 조차 힘들었고, 결국은 광장 벤치에 노숙자처럼 드러눕고 말았다. 

 

 

바로 복귀 -_-

벤치에 한참을 누워있다가 숙소로 복귀를 하는데, 숙소로 가는 그 10여분간의 언덕길이 어찌나 힘들던지 고개를 숙이고 가쁜 숨을 땅바닥에 뱉어내며 기어서 올라가다시피 했다. 리셉션 직원은 지친 기색이 역력해보이는 우리를 보며 익숙하다는 듯이 코카잎을 우려서 차를 마시라고 말해주었다. 차를 우려 조금 마신 후 침대에서 곧장 기절. 그대로 2~3시간은 잠들었던 것 같다. 

 

 

쿠스코 광장의 야경

결국 저녁도 거르고 이렇게 밤이 한참 어두워질때까지 숙소에서 쉬다가 이렇게 숙소에 처박혀서 쉴수만은 없다 생각하여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무작정 쿠스코 광장까지 나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쿠스코의 명물인 12각돌을 못보고 간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 

 

 

늦은시간 쿠스코의 골목길
이게 된다고?
배가 엄청나왔네 ...

쿠스코 광장에서 바로 보이는 대성당 오른편의 골목길로 1분 정도만 걸어들어가면 쉽게 볼 수 있는 12각 돌. 꼭 12각 돌이 아니어도 주변의 돌들이 너무나 정교한 모양새를 갖추고 벽과 길을 이루고 있음에 감탄하게 되는데, 슈퍼J인 나에게 있어서 정말 환상적인 공간이 아닐 수 없었다. 

 

 

안들어감

석공들이 어쩌면 저렇게 정교하게 카빙을 하고 쌓았는지 진짜 소문처럼 지폐한 장 들어갈 틈이 없다. 기가막힌다. 

 

 

개그욕심

어느정도 해발 3,000m의 고도에 적응을 했는지, 다시 모두와 조우하여 쿠스코 시내를 좀 돌아다녀 본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쇼핑은 참을 수 없지... 더군다나 여사님들 네 분들 모두 감당하려면... (난 이제 죽었다 ㅠㅠ) 

 

길고 고된 쿠스코에서의 하루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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