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는 정말 가격대 비 성능을 뽑기 참 어려웠던 것 같다. 무엇이든 라 레지덴시아가 이여사와 나의 표준이 되어버려서 그런지 이정도 아침식사는 누구 코에 붙이지 생각을 여러번 했다 (마음속으로). 그래도 개인별로 선택가능한 디쉬가 있어 그나마 배는 채웠던 것 같다.
오늘은 가우디의 흔적을 따라가는 날. 혹자는 가우디를 세기의 천재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다른 이는 그냥 '스페인이기에 가능했던 예술이다'라고 평가 절하를 하기도 하는데, 나는 전자에 가까웠다. 어제 까사 바트요에서도 느꼈지만, 도시에 자연을 입혀내는 것은 천재가 아니고서 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숙소에서 멀지 않는 그라시아 거리 건너편에서 N6번 버스를 타고 구엘 공원으로 이동했다.
구엘은 바르셀로나의 사업가로, 가우디와 함께 본 공원을 기획한 사람이다. 영국에서 귀국한 구엘은 토지를 매입하고 가우디에게 고급 주거단지 설계를 부탁했다. 당시 해가 잘 들어오고 지중해와 시내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구릉녹지대에 공원을 조성했는데, 시내로부터 거리가 멀어 교통이 안좋다는 단점때문에 60개의 택지 중에서 3개만 분양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구엘 타계 이후 그 자손들이 바르셀로나 시에 공원을 매각하면서 시의 소유로 들어가게 되었다.
중앙계단이 아닌 오른편의 입구로 시작한 우리는 평범한 공원의 입구를 마주했다. 다만,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수많은 돌의 예술로 이루어진 중앙 테라스 안쪽은 환상적인 녹색들로 둘러져 있어, 건축이 아닌 자연의 품으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낯선 앵무새도 여행자들을 반긴다. 거리에서 비둘기만 봐오던 우리는, 도시의 낯선 새들이 반갑다. 아마도 새들이 주는 '자유'라는 이미지 덕분인지 여행할 때에 늘 눈여겨 보게 된다.
꽃만 보면 신기한 듯이 쳐다보는 나를 찍는 이여사. 오늘은 쁘띠안경을 써야 한다며 아침 내내 나한테 부탁했다. (덕분에 눈이 커짐)
중앙 테라스에서는 날씨만 좋다면 바르셀로나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오늘 갈 예정인 사그라다 파밀리에 대성당도 한눈에 보이고, 저 멀리는 지중해를 감싸고 있는 구름의 움직임들도 선명하게 보였다. 역시나 전망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눈치싸움이 계속되는 이 곳에서 우연히 한국사람을 만나 몇 없는 투샷을 건졌다. 역시, 한국사람의 사진 손맛은 좋다.
나는 도대체 뭘 보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국분들이 찍어주셨다. 한국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지만,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에서는 카메라를 들고 쭈뼛쭈뼛 서 있거나 하면 '사진 찍어 드릴까요?'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외국인이 그런 질문을 건네면, '임마가 나보다 달리기가 빠를까?'와 '사진은 제대로 찍으려나...'를 생각하게 되는데, 한국사람은 그런 걱정이 없다. 가로든, 세로든 알아서 수많은 사진을 뽑아준다... ㅋㅋㅋ
무릇 구엘공원에 왔다면 반드시 한 번은 봐야 한다는 도마뱀 조각상 ㅎㅎ 입에서는 끊임없이 물이 흘러나오고 그 아래 고여있는 물에는 만국공통 동전들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도마뱀의 이름은 엘 드락(El Drac)인데, 카탈로니아 어로 '용'이라는 뜻이다. 구엘 공원을 수호한다는 의미라고 하는데, 너무 귀여운거 아니니... ㅎㅎ
구엘 공원의 상징이기도 한 이놈과 사진을 찍기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고, 그 순서와 투샷만 집중된 사진을 건지기 위한 치열한 사투가 계속되었다. 왼쪽에 서면 다른 그룹은 오른쪽에서 투샷을 방해하고, 오른쪽에 서면 왼쪽에서 다른 그룹이 방해하는 곳... 역시나 이 사진도 한국인 여행객 분들이 찍어주신 소중한 사진이다.
중앙 메인 입구에서 동쪽으로 진행하면 구름다리 둘레길이 나온다. 산책로는 구불구불, 그리고 현대 건축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기이한 곡선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데, 점과 모서리로 이루어져 끝이 예상되는 오늘날의 건축물과는 달리, 그 끝을 예상할 수 없는 신비한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보통이라면 언덕의 비탈의 끝은 구석의 어둠을 담당하는 모서리여야 하는데, 어둠이 숨어 있을만한 공간이 없는 따뜻한 곳이었다. 거친 돌을 이용한 둘레길이지만, 그곳이 주는 편안함이 독특했다. (이 사진도 한국분들이 찍어주심 ㅋㅋ)
곧이어 도착한 가우디의 역사 그 자체. 사그라다 파밀리에 대성당. 거대하고 섬세한 입구의 조각은 사진으로 감히 담기지도 않고, 그 규모가 너무 커서 눈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외기때문에 생긴 바람을 이겨내고 들어간 성당의 안쪽은 잔잔한 조명과 스테인 글라스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햇빛이 찬란하게 비추고 있었다.
이여사는 성당에서 오르간 반주를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카톨릭의 정수인 스페인을 여행하며 파이프오르간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을 고대해 왔는데, 그게 바로 오늘이었네~ ㅎㅎ 세비야 대성당에서도 커다란 파이프 오르간을 마주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 가서 보니 너무 신기했다고 한다.
'나무'를 모티브로 한 이 성당의 기둥은 이 곳이 성당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숲이라는 느낌을 갖게한다. 나무 사이로 들이치는 햇빛과 성당의 거대함이 주는 인간의 나약함이 더해지니 가우디에 대한 존경심이 생길 지경이었다. 예전에 동생과 이곳에 왔을 때 그 쇼킹함 만큼은 아니었지만, 마음속의 어딘가 남아있었던 10년 전 그때의 여운이 다시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이여사는 어땠을까? 나와 함께여서가 좋은것 말고도 이 공간이 주는 감동을 그대로 간직했으면 좋겠다.
각종 색유리의 예술인 스테인드글라스의 조명을 받아 사진을 남겼다. 고딕 건축의 구조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유리창의 예술로서 나타난 것인데, 가우디의 건축에도 이러한 방식이 빗겨가지 않았다. 빛이 가지고 있는 수 많은 색깔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노력에 반응한 것인지, 우리가 알고있는 모든 색깔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성당 바로 앞에는 잘 꾸며진 소(小)공원이 있는데, 성당과 함께 괜찮은 사진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이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우리처럼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정말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찰나의 촬영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마저도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의 스킬에 8할을 의지해야 했다. 성당의 끝부분을 잘라먹거나 틸트가 맞지않아 사진을 망치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진을 10장을 넘게 찍었음에도 괜찮은 사진은 겨우 한 장 뿐... ㅎㅎ 한국인이 나타나기만을 수 분 기다렸는데,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ㅠㅠ
한국인의 사진.jpg ㅎㅎ 이여사도 어느덧 구도부터 틸트, 그리고 분위기에 이르기까지 사진스킬이 많이 늘기 시작했다. (기특해 ㅎㅎ)
이여사가 찾아낸 빠에야 맛집을 찾아가는 길. 나무 사이를 뚫고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대성당의 뒷배경이 한없이 아쉽기만 하다. 이런 배경은 너무 귀하니까.
사그라다 파밀리에 대성당과 사진을 찍기 위해 자리를 바꿔가며 사진을 찍어본다. 다른사람들은 쟤들 뭐하냐~ 하는 눈빛이지만 아무렴 어떠냐... 우리만 좋으면 되는걸... ㅎㅎ 이여사는 그와중에 귀가 머리에 살짝 가려서 그런지 엘프같이 나왔네.
사실 이 음식점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바르셀로나 음식들이 세비야와는 다르게 맛은 워낙 고만고만하고 가격만 비싸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기가 생각보다 힘든데, 이곳은 한국인들의 후기가 상당했다.(대충 한국인들 입맛에 잘 맞는다는 뜻) 우리는 그 후기의 의견을 적극 받들어 치킨이 들어간 빠에야를 시켰는데, 역시... 대만족. 스페인에서 먹었던 빠에야중에 제일 맛있었다. 심지어 양도 많아서 완전 내스타일이었다. 빠에야는 어디서 뭘먹어도 부족함이 없었는데, 여기는 특히 맛있어서 기억에 남는다. 이여사도 맛있어서 고깃집 볶음밥 먹듯이 와구와구 먹어치웠다는 후문 ㅎㅎ
배부르게 늦은 점심을 챙겨먹은 우리는 숙소에 가서 좀 쉬기로 했다.
값진 휴식 이후에 다시 나선 그라시아 거리. 어제 까사 바트요로 대신했던 가우디의 까사 시리즈 중 하나인 까사 밀라를 지나쳤다. 바르셀로나 시의 극진한 관리를 받아서 그런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바르셀로나는 쇼핑의 천국이기도 한데, 면세 혜택은 물론이거니와 FTA 환급까지 받을 수 있는 브랜드가 있어 잘만 선택하면 유로 환율을 고려하더라도 매우 저렴한 가격에 좋은제품을 득할 수 있었다. 그래도 신혼여행 기념으로 왔는데, 양가 어머님들 가방 하나씩 선물해 드리고자 선택한 브랜드는 루이비통과 구찌 ㅎㅎ 우리 어머니는 분명한 기호가 있어서 검은색 알마BB 에삐를 구입했고, 장모님 가방은 어떤게 좋을지 한참을 고민하면서 이 가방 저 가방 들어보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옆에서 우리 모습을 지켜보던 캐나다 언니들이 개뜬금없이 Are you Canadian?이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난 전형적인 한국인 상인데...편견없는 언니들...) 이것도 예쁘고 저것도 예쁘다며 전부다 사라도 종용하기 시작했다. 리액션이 너무 격해서 영화에서나 보던 미국 언냐들 보는줄.. ㅎㅎ
그래서 우리가 결국 선택한 가방은 마틀라세 GG 스몰탑 ㅎㅎ 지금 생각해봐도 한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저 가방을 선택하길 매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쇼핑을 마치고 숙소에 들르기 전, 택스 환급을 받기 위해 근처에 있는 관세사무소 같은 곳에 들러 후딱 처리를 받았다. 아마도 이런 업무 하시는분들은 공무원일텐데, 공무원 답지 않게(?) 한국어 인사와 더불어(얼마나 한국인들이 많이 왔으면), 유창한 영어로 환대를 받았다. 여행한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이런 환대를 기억하는 걸 보면, 여행에서 경험하는 사소한 친절과 진심어린 대화들이 여행을 더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듯 하다.
하루종일 걸어서 이리저리 쏘다닌 탓에 심신이 지쳤던 우리는 숙소에서 시에스타(Siesta: 낮잠)를 청했는데, 좀 과했는지 어느덧 해는 지고 커다란 보름달이 도시를 비추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의 체력을 비축한 우리는 고딕지구와 포트벨 항구 쪽을 산책해 보기로 했다. 운이 좋았는지 고딕지구를 샅샅이 비추는 보름달 덕분에 골목길이 더 안전해 보였고, 뭐 이정도는 늦은시간도 아니라는건지 거리에는 사람이 넘쳐났다. 저 사진도 원샷으로 찍으려고 한참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사실 고딕지구에 온 건 근처에 있는 고딕양식의 대성당을 온전히 보고 싶어서 였는데, 정말 이게 뭐지 싶었던 순간이었다. 물론 저런 해괴한 광고를 수용한 바르셀로나 측도 문제지만, 관광도시인 이곳에서 가장 최악의 방법으로 광고를 하고 있다는 게 너무 창피해서 숨고 싶을 정도였다. 일부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다가도 저 광고를 향해서 손가락 욕을 날리기도 하고, 역겹다는 표현을 쓰며 보기 힘들다는 내색을 하기도 했다. 우리도 한국인이고, 심지어 저기 다니는 입장에서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너무 최악이라서 눈을 뜨기 힘들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뭐ㅠㅠ
고딕지구에서 남쪽으로 쭉 내려와 바로 마주했던 한밤의 지중해. 포트벨 항구에서 밤바람을 쏘였다. 이여사는 바닷바람이 좋았는지 이곳에서 자꾸 춤을 추길래 당황스러웠음 ^^;
숙소로 다시 돌아가는 길. 이쯤 걸으니 다리는 띵띵 붓고 텅 빈 배는 곯아서 끊임없이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도저히 걸어서 숙소까지 완주할 자신이 없었던 우리는 Liceu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귀가했다.
스페인에서 정말 좋았던 점 중에 하나는 사람들이 밤시간에 잘 노다니다보니 음식점도 정말 늦게까지 영업한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는 치안의 문제도 있고, 영업 자체를 애초에 10시 이후에 잘 안하다보니 밤에 숙소에만 있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 곳은 그럴 걱정이 전혀 없다. 숙소 근처를 배회하다가 사람들이 많아보여 들어간 맥주집에서 맥주만 벌컥벌컥 들이키는 올라 형누나들과는 달리, 우리는 안주의 민족답게 이것저것 메뉴를 시키고 생맥주를 시켜 거뜬한 한 끼 식사를 하고 왔다. 저렇게 먹고 6만원 돈 나왔다는게 함정... ㅎㅎ
돌아오는 길에도 끊임없이 거리를 메우던 비트와 사람들의 대화가 기억이 난다. 얼마 안 남은 신혼여행 일정을 마무리하는 게 한없이 아쉽지만, 또 내일 있을 일정을 위해 자정을 넘기지 않고 잠을 청했다. 내일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