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단추부터 굉장히 불편하고 짜증이 났다. 아침식사는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제공되었고, 아침은 1~2천원 정도 할 만한 덜 구워진 빵 두 조각, 아주 싼 값의 버터와 잼, 그리고 대충 만들어진 오트밀죽, 그리고 구운계란. 고작 이거 먹으려고 비싼 돈 줘가면서 먹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정글은 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다. 치트완의 정글은 반드시 라고 할만큼 아침에는 안개가 짙어 여행에 유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안개를 뚫고 들려오는 새들의 노랫소리에 부실했던 아침식사의 꿍한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 그래도 나름 자연속으로 들어왔으니 자연의 흐름에 나를 맡기고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여행이 되기를 기대했다. 가장 처음은 카누 일정으로 시작했다. 숙소에서 몇 분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지프를 타고..
오늘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새벽 5시에 밖을 나섰다. 내가 어제 예약한 버스는 6시 출발이었고, 정류장까지 가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한 시간 전에는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3일 동안 묵었던 대성석가사는 깊은 숲속에 위치해 있어 새벽에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제 다른 사람들 말로는 이곳에 야생 여우들이 주변을 배회하고 있어 새벽에는 반드시 불을 킨 상태로 돌아다녀야 한다고 했다. 랜턴은 당연히 없었고, 도바토에서 물데 전망대를 올라갈 때처럼 핸드폰의 플래시에 의지했다. 온전히 나의 길 감각만 믿고 호기롭게 출발했으나,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길에 스산한 안개가 짙에 드리우니 공포영화가 따로 없었다. 사방에서 울려퍼지는 벌레소리와 가끔씩 플래시 범위에 들어오는 주인 없는 들개들이 그 분위기를 더..
어제 포카라에서 출발하는 래프팅을 체험하고 왔다. 급류에 노젓기는 처음이라 등 뒤쪽으로 근육통이 강하게 왔다. 마치 곰이 우는 것처럼 '우어어어엉' 소리를 내며 일어났더니 스스로 민망해서 다시 누워버렸다. 하산으로 인한 피로와 래프팅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아침에 숟가락 들 힘조차 없었다. 오늘은 아주 기나긴 버스 여행을 해야 했기에 간단하게 비스킷과 밀크티 한 잔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고 곧장 버스에 올랐다. 룸비니로 향하는 버스는 만석, 그리고 내 자리는 맨 뒤에서 두번째 자리였다. 버스는 그 기나긴 시간동안 두어번 밖에 쉬지 않고 무려 여덟 시간을 쉴새없이 달렸다. 포카라에서 룸비니까지는 직선거리로 140km정도밖에 안되는데, 네팔은 지형적인 특성 상 고속도로가 발달하지 않아 온종일 구불구..
온 몸이 아프고 삭신이 쑤셨다. 걸을 수 있는게 기적이다 싶을 정도로 다리가 후들거렸고, 온천의 따뜻한 물로 푹 지졌다 싶었던 목과 어깨, 그리고 허리는 뻐근한 근육통이 자리 잡았다. 그래도 오늘은 히말라야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 새벽 일찍 바깥공기를 쐬었다. 근 10일을 동거동락해 준 나의 소중한 플라스틱 물통. 버리고 싶은데 버릴 수 없었던 이 계륵같은 존재를 이제는 보내줄 수 있다. 짐 무게 때문에 커다란 물통을 가지고 다닐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한참동안 이 플라스틱 물통을 지니고 다녀야 했는데, 오늘 보니 온통 스크래치 투성이에 짜부라진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이젠... 널 보내줄게. 아침 일곱 시 버스라고 해서 일찍부터 부랴부랴 서둘러 나왔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로..
3,640m내 인생 가장 높은 곳에서 잠들어 본 경험이 되겠다. 롯지에는 침대가 있고 개인이 구비해 온 침낭을 덮고 자는 형태이지만, 여행자들을 괴롭히는데 익숙한 이 차가운 공기는 이 두꺼운 방어벽을 뚫고 들어왔다. 살을 에는 듯이 파고드는 추위는 피곤함에 지쳐 잠이 든 나의 아침을 깨우고야 말았다. 10여년이 지난 이후에 작성하는 포스팅이지만, 아직도 생각이 나는걸보면 어지간히 대단했던 것 같다. 코프라(Khopra)에서의 아침은 8,167m의 다울라기리(Dhaulagiri) 2봉과 함께했다. 안나푸르나의 반대편에 자리하고 있어서 아침엔 햇빛을 가장 나중에 받아야 했던 안쓰러운(?) 봉인데, 오늘만큼은 우리가 외롭지 않게 인사를 해 주었다. 코프라는 내가 묵었던 곳들 중 가장 추웠던 곳이다. 이전..
트래킹 시작으로부터 7일, 내 생애 최고의 일출 꽤 높은 곳에서 숙박을 했던 오늘, 그 추위는 역시나 대단했다. 새벽의 추위는 기다렸다는 듯이 날 괴롭혔고, 방구석에 처박혀 있지 말고 어서 나가를 신호를 보냈다. 옆방의 수니르와 패트릭도 일출을 보기 위해 준비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피곤했던 탓에 조금만 더 잠을 청하고 싶었지만, 지난 밤에 지금이 아니라면 이곳의 일출을 볼 수 없다는 이야기를 용케 기억해내서 준비를 서둘렀다. 30분 거리에 있는 전망대에 가서 일출만 보고 내려오는 일정이기에, 간단하게 옷만 껴입고, 등산스틱 두 개를 챙겼다. 밤새 추위가 대단했어서 길이 얼어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별도의 랜턴을 챙겨오지 않아서 핸드폰을 들고 다니면서 플래시를 비추어야 했고, 덕분에 배터리가 소진해..
새로운 도전 어찌나 깊은 잠을 잤는지 아침공기에 머리맡이 차가워지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트래킹을 하며 며칠 내내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깨곤 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알람소리를 듣고서야 잠기운을 씻어낼 수 있었다. 어제 롯지에서 만난 대만에서 온 한국 교환학생과, 안나푸르나 라운딩 코스를 마치고 오신 한국 분들과 따뜻한 난로 앞에 모여앉아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마차푸차레가 보이는 벤치에 걸터앉아 아침 일출을 지켜보았다. 따다빠니(Tadapani)에서 내려다보는 일출은 무엇보다도 운해(雲海)가 인상적이었는데, 쌓인 피로가 싹 가실만큼 멋지더라. 길이 같았으면 좋으련만, 내가 워낙에 루트를 특이하게 잡은 탓에 동행을 기대하기란 힘들었고, 동행이 있다고 하더라도 워낙에 걸음걸이가 빨라서 차라리 혼자..
다시 시작하기 어제 도반(Dobhan, Dovan)의 숙소에 도착한 이후로 비가 오다 말다를 반복했다. 숙소의 침대 한 켠에 누워 한참을 그대로 누워있다가 밖을 나와보니 구름이 잔뜩 껴 있었는데, 숙소의 주인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고산의 공기에 익숙해져 나름대로 빗소리가 주는 여유로운 리듬도 감상할 수 있었고 내가 목표했던 것을 이루어냈기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주변의 환경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다만 이때부터 무릎이 좀쑤시긴 했지만 버틸만 했다. 하룻밤 푹 쉬고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숙소 앞에 있었던 수국은 아침부터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3,000m가 넘어가면서 메말라버린 산의 모습에 조금은 실망했었는데, 산중의 온도가 조금씩 미지근해지고 마침내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