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후 1년 정도가 지났다. 퇴근 후 운동을 마치고 햇빛이 힘을 다해서 생각의 저편으로 넘어가는 시간, 항상 오가는 퇴근길에 익숙한 발걸음을 뗄 적이면 갑자기 부모님 생각이 나서 자연스럽게 전화를 한다. "응" 이라는 짧은 '전화 잘 받았다'라는 대답을 들을때면 나도 모르게 하루의 변덕스러운 감정과 일하며 받았던 스트레스가 녹아내리고 요즘은 일하는 거 어렵지 않으냐,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자연스럽게 하나도 안 힘들다는 거짓말을 해버린다. 초인종은 달려있으나 달려서 맞이해 줄 사람이 없는 집 현관문을 항상, 매일, 이맘때쯤 열어야 했다. 어두컴컴한 8평 남짓 되는 방을 밝히려고 항상, 매일, 이맘때쯤 불을 켜야 하는 건 나다. 침묵에 익숙해지는 것은 싫으나 그렇다고 시끄러운 공간이 싫어 항상, 매일, ..
약속 없는 주말이 너무 좋다. 기억하고 싶은 일요일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안해도 되고, 스스로에게 가기 싫은 약속장소에 대한 강요도 하지 않아서 좋다. 주말의 게으른 아침을 일찍 깨우는 수고로움도 없고, 느지막이 일어나 시계를 보고 놀랄 필요도 없다. 이토록 아름다운 한가한 주말의 아침에는 창문을 열고 지난 일주일 간 내가 살피지 못한 것들을 꼼꼼하게 바라본다. 침대 프레임에 앉은 먼지나, 조금 풀이 죽어있는 화분, 비우지 않은 쓰레기통, 가지런하지 못한 신발. 계획되거나 명령에 의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 더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그러는 중에 주전자에 물을 한가득 담아내고, 소리가 날 때까지 푹 끓인다. 마침내 그 물을 미리 풀어 놓은 인스턴트 커피 잔에 담아내면, 커피의 진..
여름을 보내버렸다. 2017년의 시간은 흘러흘러 어느덧 10월이 되었다. 더위로 한껏 달아올랐던 마음을 잠재우기 위함인지, 아니면 스스로가 몸과 마음이 지쳐 자연스럽게 가을을 원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 이유없이 좋은 음악을 듣고 싶고, 아무 이유없이 사람들과 만나 대화도 하고 싶고, 아무 이유없이 혼자있고 싶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내 마음을 이해했는지, 시간이라는 절대자는 마치 나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데려다 주었다. 요즘은 정말로, 가끔씩 생각없이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면 좋아져 버리는 날씨가 되어버린거다. 가을이 오고나서 여름에 비해 다소 생동감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조금은 물렁해져버린 나의 태도를 탓하기도 하지만,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겠거니 해서 생..
3막의 시작, SVP(Samsung shared Value Program) 20일의 연수,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었던 "끝났다" SVP를 시작하기 전의 나라면 분명히 이러한 말로 끝내고 싶었을 것이다. 5월 26일 기쁜 소식을 접한 이후로 신체검사가 언제인지 궁금했고, SVP가 제발 늦은 일정으로 잡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8월 일정이 잡힌 졸업예정자들이 한없이 부러웠고, 나의 촉박한, 인생의 마지막 휴가일 것만같은 일정을 부족한 여행시간으로 채우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아버지와 일본 온천여행을 가고,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자산계획을 구체화시키고, 급히 친구들과 만나 이전에 못다했던 대접을 하고 등등. 붕 떠버린 나의 3주를 가득 채우기엔 몸도, 마음도 정신이 없었고, 6월 20일로 잡힌 SVP일정을 원..
2막 종료, 3막의 시작 4수만의 취업준비생, 드디어 끝 버스 가장 뒷칸에서 이 메세지를 보는 순간이 얼마나 긴장되고 떨렸는지 모른다. 면접을 본 이후로 나도모르게 흠칫해서 놀란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드디어 오늘 가슴속에 꽉꽉 가득차 있던 응어리들이 해소되는 순간인 것이다. 난 순간 놀라 버스 안에서 소리를 질렀고, 다들 무슨일인가 싶어 내가 앉아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보처럼 머쓱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신호를 보냈고, 굉장히 민망한 순간이었지만 벅차오르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버스에서 빨리 내리고 싶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알려야했다. 이 사실을 알리기 전까지 나는 가족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고, 가족들도 나의 눈치를 보고 있었던 상태였다. 면접을 보고난 이후에 잘 보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