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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정원 가는 길, 동 루이스 다리에서

신혼여행의 어원에 대해서는 말이 참 많다. 신혼여행(新婚旅行), 허니문(Honeymoon) 그리고 밀월(蜜月)여행. 신혼부부가 한 달 동안 꿀 술 등의 음료를 마시는 데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신혼의 한 달이 가장 달콤한 때라는 뜻에서 유했다는 설이 있다. 혹자는 달도 차면 기운다는 속담을 신혼 생활에 비유하곤 하는데, 신혼의 한 달은 꿈처럼 달지만, 그만큼 금방 식어간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결혼식 직후에 출발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는 코로나 등의 여러가지 이유로 1년이나 늦게 출발을 하게 되었다. 1년 동안 많은 것들을 서로의 일상에 양보하고, 때로는 열심히 일하며 이번 신혼여행을 준비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번 여행이 무언가 다시 시작한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고, 행복하고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신혼여행은 '더 행복해지기 위한 여행'임이 틀림없었다.

 

 

Nata Sweet Nata의 아침식사

정신없는 첫날과 꽉 찬 일정 때문에 너무나 바빴던 둘째날이 지나고 나니, 우리가 비로소 신혼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셋째날은 알람소리에 깨지 않고, 창문틈새로 들어오는 성당의 종소리에 잠을 깼던 것 같다. 

 

열심히 아침먹을 장소를 검색하다가, 결국은 어제 갔던 카페로 가서 나타를 주문했다. 포르투갈에 와서 나타를 많이 먹는 것만큼의 호사는 없다 생각했고, 우리의 이런 고집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노릇하게 구워져서 서빙되는 나타의 맛은 정말로 만족스러웠다. 단 맛의 디저트에 아메리카노는 말해 뭐하겠나. 

 

 

도우 강을 따라 걸으며

아침에 도우 강을 따라 산책을 하거나 조깅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근데 신기한 건 현지인같지 않은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다는 거. 우리는 오늘도 3만보를 걸을 예정이라 해당사항이 전혀 없었다. 아침식사를 하고 오는 것만으로도 5천 보 정도를 걸었다.

 

 

페로우리뇨(Pelourinho)

곧장 상 벤투 역으로 출발하기 위해 짐을 모두 정리하고 숙소에 맡긴 채 밖으로 나섰다. 바로 앞에 있는 포르투 대성당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던 탓에, 기차 시간 전까지 둘러보기로 했다.

 

광장이 꽤 넓다. 어제 스냅촬영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 눈에 담지 못한 것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광장 중간에는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는 기둥이 하나 서 있는데, 페로우리뇨(Pelourinho)라고 한다. 뭔가 이정표 혹은 성당을 나타내는 상징물이겠거니 싶었는데, 죄인을 묶어 놓고 매질을 하는 곳이라고 한다... 굳이 성당 앞에 이런걸 왜...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 이정표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에 이르기까지 약 800km에 달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이정표를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순례길의 가리비와 노란색 화살표는 가시성이 좋아 이정표 역할을 확실히 하고 있다. 집에 와서야 알게된 내용인데, 바로 이 곳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가장 처음 시작점이라고 한다. 이렇게 의미 있는 장소였다니. 시작이 반이라고, 산티아고 순례길의 절반을 경험하고 왔다!

 

 

바로크 양식의 아쥴레쥬

성당은 대체로 심플하고 간결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성당 내부에 있었던 파란색의 아쥴레주 벽화가 이여사의 파란 무늬 치마와 아주 잘 어울렸다. 과연 의도했던 것일까. 

 

 

한눈에 내려다 보였던 포르투 전경

꼭대기로 올라가서 한 눈에 보이는 포르투 전경도 감상한다. 도우 강 너머의 신시가지가 보였다. 

 

 

신난 이여사

신난 이여사님. 파란색 하늘이 그림같다.

 

 

무려 임페리얼 맥도날드 (IMPERIAL McDonald's)

점심을 고민하다가 눈에 띄여 마주하게 된 맥도날드. 세상에서 가장 멋있다는 맥도날드로 알려져 있고, 그 명성에 걸맞는 'Imperial(장엄한, 제국의)'의 칭호를 부여 받았나보다. 새 중에서도 왕이라는 독수리가 그 위엄을 대신하고 있었다.

 

 

맥도날드에 샹들리에랑 스테인글라스가 웬말인가요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샹들리에와 스테인글라스, 그리고 한국의 웬만한 결혼식장 저리가라 하는 높은 층고까지. 뭔가 거대한 파티장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햄버거 단품만 사먹기에는 좀 미안해서 셋트에 샐러드까지 시켜서 야무지게 점심을 챙겨먹었다.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안에서

상 벤투역에서 미리 예약한 CP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길. 깜빠냐(Campanha)라는 곳에서 한 번 환승을 해서 산타 아폴로니아(Santa Apolonia)라는 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일찍 예약한 덕분에 1등석에서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기차만 한 다섯시간?을 탔던 것 같네. 

 

그나저나, 한참을 가다가 안내방송을 놓쳐서 또! 목적지보다 한 정거장 덜 가서 내리는 참사를...원래는 산타 아폴로니아 역에서 내려가서 조금만 걸어가면 우리 숙소인 것을, 오리엔트 역에서 내리는 바람에 한참을 고생했다. 첫째 날의 트라우마가 다시 생각났다... 

 

 

리스본의 숙소. 그리고 이름 모를 빨간 나무

우리의 두 번째 숙소도 에어비엔비 같은 숙소였다. 특히 숙소 앞에 자리 잡고 있었던, 무언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빨간 나무가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마치 주변의 색감에 반항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빨간색은 별로 좋아하는 색깔은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우리 집에 있는 초록 빛으로 우거진 어항에 빨간 물고기가 정말 잘 어울리고 예쁜데, 이 나무도 비슷했다. 이상하게 오랫동안 쳐다보게 되는 나무가 있었다. 우리가 나중에 10년 뒤에 리스본에 왔을 때에도 똑같이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알마다(Almada)라고 써 있는 예술품이 보인다. 알마다 지구는 타구스 강 건너편이다.
코메르시우 광장 앞 파도를 즐기던 사람들

우리는 짐 정리를 간단하게 하고 리스본의 분위기를 만끽하고자 코메르시우 광장의 인파 속으로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태양이 뜨거웠음에도 부서지는 파도를 즐기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고, 조깅과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냠냠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즐겼다.

 

 

카이스 두 소드레(Cais do Sodre)

우리는 타구스 강 건너편에 있는 알마다 지구 쪽으로 가기 위해 카이스 두 소드레(Cais do Sodre)라는 항구에서 출발하는 여객선을 탑승했다. 우리 같은 여행객들도 많이 보였지만, 퇴근/하교를 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다. 한 20여분 정도 햇빛을 가로질러가면 카실하스(Cacilhas)라는 항구에 도착한다.

 

 

타구스 강에서

카실하스에서 타구스 강을 오른편에 끼고 쭈욱 걷다보면, 강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거대한 바람이 느껴진다. 이곳의 바람은 거의 바닷바람이라고 할 만큼 차갑고 매서웠다. 갈매기도 종종 보였다. 

 

 

Ponto Final

 

종종걸음으로 20분 정도를 걸으니 드디어 마주하게 된 오늘의 하이라이트 Ponto Final. 인터넷에서 우연히 접하게 된 식당인데, 분위기 하나만 보고 과감하게 예약을 한 식당이다. 그리고 우리가 신혼여행 중 유일하게 예약한 식당이기도 했다. 여행 오기 한 달 전쯤인가?에 식당 매니저에게 메일을 써서 우리 신혼여행이니까 무조건 좋은 자리 줘야한다고 요청도 했었다. 예약을 안하면 사진처럼 무진장 긴 줄을 서서 내 차례가 언제오는지만을 기다려야 했을거다. 

 

 

Ponto Final의 하이라이트인 해변을 마주한 테이블

우리가 예약한 시간은 저녁 7시였다. 9월 말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낮처럼 밝았고, 날씨도 꽤 더워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기 딱 좋을 것 같았다. 수염 더부룩한 직원이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었다. 예약했다고 하니 우리의 정보를 확인하고 아주 기가막힌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안내받은 자리가 마음에 드는 이여사. 코르크 베이스로 만든 메뉴판으로 메뉴를 둘러본다

예약을 하도 일찍해서 그런가 우리는 바다와 태양이 가장 가깝고 4/25 다리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앞뒤양옆으로 바람을 막아줄 게 하나도 없고 바로 옆에 까딱하면 빠져버릴 것 같은 물구덩이가 있다는 것이 살짝 단점이었지만, 자리에서 보이는 탁 트인 뷰가 이 모든 것들을 덮어주었다. 

 

 

스타터로 스프와 그린와인

메뉴를 고민하다가 스타터로 시킨 콩 베이스의 수프와 리스본에 오면 꼭 마셔봐야 한다는 그린와인. 알바리뇨(Alvarinho)라는 다소 생소한 품종을 경험했는데, 색깔은 곱게 걸러낸 것같은 은은한 초록빛에 맛은 소비뇽블랑과 거의 비슷했다. 

 

 

음 뇸뇸뇸 흡츱츱 습흡~

옅게 비친 초록색이 참 매력적인 와인이었다. 감귤과 같은 향이 있어서 그런지 입맛을 돋구기에 충분했다. 

 

 

한국인의 밥상: 밥과 생선과 고기와 술

우리가 주문한 요리는 총 네 개 였다. 스타터로 시킨 콩수프와 탄수화물을 충전해 줄 해물밥, 그리고 이곳의 명물이라는 전갱이 튀김과 소 꼬리찜. 해물밥은 말 할 것도 없이 괜찮았고, 감자와 함께 있는 고기 요리는 설명이 더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보통 잔뼈가 있는 생선을 선호하지는 않는데, 저 전갱이 튀김은 비린내도 없이 살이 온전히 씹히는게 맛이 괜찮았다. 메뉴들을 시키고 보니 한국인의 밥상에 올라가는 밥과 생선과 고기와 술이 다 있었다. 외국에 와서도 한국인 뿌리는 못속인다~~

 

 

조용히 파도소리도 즐긴다

바다와 인접한 타구스 강 하구 쪽에 위치한 폰토 파이널은 유난히 바람이 매서워서 파도소리가 진득하게 들려왔다. 거친 파도 소리 안에서 '쨍~'하고 섞이는 와인잔의 소리가 유난히 맑고 투명했다. 

 

 

음음. 츄릅흡습 춥흠

나도 와인 한 잔 즐기기.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다소 비싼 가격에 그린와인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가끔 그 분위기와 파도소리가 섞인 와인의 맛이 생각나곤 한다. 

 

 

저 너머로 보였던 4/25 다리

해가 수평선 아래로 넘어가고 도시의 조명들이 그 공간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타구스 강을 가로지르는 4/25 다리도 한눈에 보였다. 거센 바닷바람을 막아주던 태양이 저 너머로 넘어가고 나니 몸이 얼기 시작했다. 따뜻했던 음식들도 빠르게 식기 시작. 우리의 얼굴도 점점 죽상이 되기 시작... 

 

 

Ponto Final

더 머물다간 감기에 걸릴 것 같아 식사를 마치고 후딱 일어난 우리. '마침표'라는 의미의 Ponto Final에서 우리의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하차했던 카실하스 항구로 돌아가서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왔다.

 

 

이미 잠이 가득한 나

카이스 두 소드레 항구에 도착하니 어느덧 아홉 시. 내리자마자 보였던 마트에서 간식거리를 한가득 샀다. 여행을 갈 때마다 그 나라의 요거트를 맛보는 요상한 버릇이 있는데, 딸기맛 요플레를 사 봤다. 그리고 어딜가던 씹을 게 필요한 이여사님께서도 과자를 하나 집어드셨다.

 

 

숙소 앞의 빨간 나무 (이름 아시는분?)

숙소 앞에 저렇게 커다란 빨간 나무가 있어서 리스본에서는 숙소를 못찾을 리 없었다. 마치 여행의 이정표 역할이라도 하듯이 숙소 앞을 밝게 빛내고 있던 빨간 나무가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이 난다. 오늘도 3만보를 걸었던 우리는 숙소에서 한 잔 더 하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잠이 들고 말았다. 타구스 강에서 보았던 저녁 노을을 떠올리며.

 

- 내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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