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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의 흔한 산책길

어제처럼 주변의 식당에서 제대로된 아침도 먹지 못하고 체크아웃을 했다. 실수로 숙소를 1박을 덜잡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있던 숙소에서 옮겨야 했고, 다행히 바로 앞에 위치한 다른 숙소로 옮겨갈 수 있었다. 옮긴 숙소에 부랴부랴 짐을 맡기고 론다를 가기 위해 밖을 나섰다. 

 

쌀쌀한 아침바람을 맞으며 과달키비르 강의 산책로를 걷는 길.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흔한 산책길이라지만 150살도 더먹은 다리를 보고 걷는 기분은 한국사람들에겐 좀 낯설기만 하다. 1852년에 완공된 이사벨 2세 다리는 낮보다는 조명이 잘 뒤섞인 밤에 와야 낭만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우리의 동동걸음과 함께 햇빛이 천천히 들이치기 시작하는 모습도 장관이었다. 마치 우리가 걸음을 옮기는 만큼 이곳의 아침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아르마스 정류장 (Plaza de Armas)

어제 산 세바스티안 정류장의 직원에게 안내받은 아르마스 정류장. 산 세바스티안과 마찬가지로 세비야에서 다른 도시로 잇는 허브 역할을 하는 곳이다. 숙소에서 20여 분 정도를 걸어서 이곳에 도착했다. 나는 유난히 걷는 여행을 선호하는데, 짜증 한 번 안 내는 이여사가 항상 고마웠다. 

 

 

오밀이 조밀이

외국에서 한국처럼 28인승의 우등버스를 만나긴 참 어렵지만, 나름 편안한 버스였다. 두 시간 정도를 급커브에 급경사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론다에 도착을 해버렸다. 둘 다 멀미가 좀 많이 심해서 가는 내내 좀 힘들었다. 

 

가는 동안에 잠깐 짬짬이로 사진을 찍어두었는데, 언덕길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작은 집들이 보였다. 집들끼리 작은 단차만을 두고 바위와 어울려 마치 자연을 형성하고 있는 것 같았다. 

 

 

론다의 흔한 골목길

론다에 입성하였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끌어안고 론다의 심장부로 향하는 길. 론다는 워낙 작은 소도시여서 버스정류장에서 시내 중심으로 가는데까지 얼마 걸리지 않는다. 날씨가 꽤나 뜨거웠지만 스페인은 그늘만 들어가면 서늘한 덕분에 걱정이 없다. 

 

 

론다의 중심부

파라도르 호텔이 있는 론다의 중심부 쪽으로 나왔다. 작은 마을이라서 그런지 한적함은 기본이고 사람들의 여유는 덤이었다. 중간중간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보이고 아이스크림이나 음료를 파는 구멍가게들도 많았다. 

 

 

누에보 다리를 건너 파라도르 호텔의 건너편으로

론다의 하이라이트와도 같은 누에보 다리를 건넜다. 론다에서도 고급 호텔로 여겨지는 파라도르 호텔이 절벽을 끼고 자리하고 있고, 그 곁을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음악소리가 들렸고, 홀린듯이 따라들어갔다. 

 

 

골목의 저편에서

들려오던 음악소리의 주인공은 골목의 끝자락에 자리하고있는 한 음악가의 기타소리였다. 황무지에 위치한 론다의 황량함을 음악이 대신 채워주는 듯 했다. 이전에 동생이랑 유럽여행을 왔을 적 론다에서 1박을 한 적이 있었는데, 누에보다리를 한눈에 보기위한 스팟으로 가는길이 생각났다. 무려 10년 전인데, 그 때 그곳을 찾아 길을 헤맸던 기억이 생생해서 자신있게 앞장서서 그 곳으로 향했다. 

 

 

론다의 하이라이트

론다의 성문 깊숙이 위치한 이 포토스팟. 이미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어서 그런지 다양한 인종,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모여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도 역시나 이곳에서 사진을 마구마구 찍었다.

 

 

신난 이여사

신난 이여사님도 한 컷. 검은색 원피스가 너무 잘 어울리는 이여사. 개인적으로 스페인에서 찍은 사진중에 제일 자연스럽고 잘 나온 사진 같다.

 

 

과감하게 사진을 부탁해본다

내가 10여년을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하나 배운 것은, 세계에서 가장 사진을 잘 찍는 민족은 한국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다른사람에게 사진을 부탁하지 않는데, 진짜 이번만큼은 꼭 이여사와 본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고 싶어서 주변을 둘러봤다. 한국사람이 없어서 그 흔한 중국사람들에게 부탁을 좀 하려고 했으나, 저 당시에는 중국인들이 해외 여행에 제한이 좀 있어서 찾아보기 힘들었고, 결국에는 이름모를 백인에게 부탁해봤다. 내 성에는 100%차지는 않으나, 그래도 백인답지 않게 사람처럼 찍어준 듯 하다. (사실 편집하면서 하체를 좀 자르긴 했다. 너무 난쟁이 똥자루 같아서...) 

 

아무튼 10년전에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결혼하면 꼭 와봐야지 했던 곳인데,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킨 것이 너무 뿌듯했다. 이여사님도 마음에 들었을까.

 

 

구운 오징어와 아보카도&연어 타르타르, 그리고 화이트와인

다시 도심으로 나가는 길에 들렀던 ' Albacara'라는 식당. 식당에서 누에보다리와 그 절벽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식당이었다. 해산물보다는 고기를 선호하는 우리는 화이트와인 때문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해산물이 땡겼나보다. 진득한 샤도네이와 함께 소금에 잘 절여진 해산물 요리가 일품이었다. 

 

 

Viajeros Romanticos = 로맨틱한 여행

론다는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도시라고 하는데, 그말이 참인 것 같다. 그는 론다를 연인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가장 좋은 곳이라고 예찬했다고 한다. 우리가 헤밍웨이의 흔적을 좇기 위해 여행을 온 것은 아니지만, 신혼여행이라는 테마에 잘 어울리는 도시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마요르카 여행을 위해서 1박을 과감하게 포기한 것이 조금 아쉬웠다. 

 

 

누에보다리 뒷편으로 보였던 기암협곡의 향연

누에보 다리를 건너본다. 누에보 다리 뒷편으로 보였던 기암협곡과 그 사이로 어울리지 않게 쪼르르 흐르는 물줄기가 인상적이었다. 햇빛에 한참 가려서 그런지 파란빛의 물줄기라기 보다는 그저 어두운 무언가의 흐름정도로 보였다. 그 위로 드넓게 펼쳐져 있던 평야가 깊은 협곡의 어두움과 대비되어 보이는 것이 참 신기했다. 

 

 

건너편 파라도르 호텔 앞에서

타호 전망대로 가기 위해 누에보다리를 건너온 우리. 누에보다리 양쪽으로 사진의 느낌이 달라서 많은 사진들을 찍었던 것 같다. 파라도르 호텔 배경이 좋았어서 그런지 건너편의 뒷배경은 좀 밋밋한 느낌이다. (모델이 다했음 ㅎㅎ)

 

 

어디서 많이 봤던 간판이 보인다. 

타호 전망대쪽으로 건너가는데 너무나 익숙한 간판이 보였다. 10년전에 론다에서 하루를 묵었을 때 묵었던 호스텔 간판이 너무 생생하게 보였다.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저렇게 같은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고 감회가 새로웠다. 당시에 예산의 압박으로 선택지가 많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았던 룸 컨디션과 끝내주는 조식때문에 기억에 생생하게 남았던 호스텔이었는데... 아직도 있네. 나중에 다시 오게 됐을 때에 '우리 신혼여행 때 이 숙소에서 묵었었지~' 라고 말할날이 올까. 

 

 

엘 타호(El Tajo) 전망대의 어느 아티스트

시간에 대한 압박이 있어 타호 전망대의 노을을 못 보는 것은 조금 아쉬웠으나, 그곳에 분위기는 여전했다. 세계 여기저기에서 방문한 사람들이 여행을 추억하기 위해 그곳의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이름모를 아티스트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바람소리를 타고 멀리멀리 퍼져나간다.

 

 

바삭 츄러스 & 달콤 초코라떼

시간이 조금 더 있었더라면 투우장도 구경하고 론다시내도 돌아다니며 쇼핑도 할 법 했으나, 조금 촉박한 일정 탓에 15시 버스를 타고 돌아가기로 했다. 세비야까지는 버스로 2시간 거리인데다가 이 이후로 버스 시간이 애매해서 까딱하면 이곳에서 하루를 자고 가야 할 수도 있었다. 버스 시간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서 잠깐 들렀던 츄로스 집. 옛날에 말라가에서 먹었던 츄로스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갓 튀긴 츄로스에 쵸코라떼를 듬뿍 적셔 먹는 것은 아직은 이색적이고 신선한 조합이다. 주전부리로 간단하게 먹기 참 좋았다. 

 

 

Restaurante El 3 de Oro

오자마자 더위와 허기에 절여진 우리는 숙소에서 옷부터 갈아입고 부리나케 주변의 식당을 찾아 들어왔다. 한국은 아무래도 밥심으로 움직이는지라 밥이 너무나 고팠고, 우리는 논의할 것도 없이 빠에야를 먹기로 했다. 너무 이른시간에 온 탓인지 우리 말고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음.. ㅋㅋ;;

 

 

에피타이저로 나왔던 세비체(좌), 메인디쉬 먹물빠에야(우)

유럽에 오면 공짜로 주는 음식 없다고, 갑자기 시키지도 않은 세비체를 갖다 주길래 뭔가 싶었다. 근데 물어보니 Free라고 하길래 안심하고 한 숟가락 입에 털어넣었다. 해산물과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우리는 페루에서 처음 먹었던 세비체가 soso 였던 기억이 있다. 신선한 해산물에 적당히 신맛과 어우러져 입맛을 돋구기에는 아주 최고였고, 화이트와인 안주로 제격이었으나, 아무래도 식성도 육류파에 와인도 레드파인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 같은? 존재였다. 근데 공짜는 언제나 맛있다고... 아주 시고 상큼해서 빠에야를 들이부을 준비를 완벽하게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여태 안먹어봤던 먹물빠에야를 주문해봤는데 비주얼만 봐서는 이걸 대체 먹을 수 있을까 싶었으나, 사실 입에 털어넣고 나면 눈으로 못보는 마당에 뭐가 대수인가 싶었다. 배고픈 우리에게 아주 맛있는 냄새가 식욕을 더욱더 자극했고, 아주 즐겁게 식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세비야의 츄로스 맛집 'El Comercio'

즐거운 저녁식사를 끝낸 우리는 숙소에 들어가서 낮잠이라고 잔다는게 2시간을 넘게 자버렸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니 어느새 20시 30분 정도였고, 우리가 세비야에서 끝내지 못한 미션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세비야를 다녀온 친구마다 추천을 해 줬던 츄로스 맛집 El Comercio에 방문하는 것. 원래는 첫날과 둘째날 일정에 맞추어 방문을 하려 했으나, 뭐 때문인지 자꾸 스케쥴이 엇갈려 방문하지 못했고, 결국은 세비야의 마지막 날에 와서야 올 수 있었다. 우리가 방문했을때에는 영업종료까지 5분정도 남아있는 상태였고, 다행히도 매장식사말고 테이크아웃은 가능했다. 이렇게 세잎해서 가까스로 득한 이곳의 츄로스. 뭔가 아까 론다의 츄로스와는 다르게 츄로스 안의 공극이 더 촘촘해서 그런지 바삭함이 더 느껴졌고, 상당히 오일리해서 처음에는 쵸코라떼를 풍덩풍덩 찍어서 한입에 싹 말아넣을 만큼 맛있었다. 약간 낮잠 이후의 허기와 겹쳐서 그런지 너무 허겁지겁 입에 밀어넣는 바람에 몸속에서 토할 것 같은 반작용이 느껴졌다. 뭐든지 과유불급 인 걸로... 

 

 

나 대신 맛있게 츄로스를 드시는 이여사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스페인 광장에 다시찾은 우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광장의 초입에 들어서기 시작했을 때부터 오렌지 색의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더니 발 디딜틈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모여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관?인지 무슨 심볼같이 보이는 것들을 사람들이 들쳐메고 행진을 하고 있고, 그것이 한 걸음 한 걸음 자리를 옮겨갈 때마다 사람들은 영상을 찍고 사진을 찍어댔다. 뭐 스페인광장에 가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모여있던 사람들한테 너무 기를 빨려서 숙소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갑자기 왜 뛰시는거죠?

근데 또 옆에 자리하고 있는 과달키비르 강 쪽으로 넘어가니 사람들이 갑자기 뛰고 있네...? 도대체 왜 뛰시는거죠? 이 밤에 마라톤을? 그게 아니면 도대체 왜...? (아무도 안알려줌 구글도 모른다함) 

 

 

수많은 인파를 피해 겨우 도착한 황금탑

수많은 인파에 기를 쪽쪽 빨리며 겨우 도착한 황금의 탑. 햇빛에 반사된 누런빛의 탑을 보고싶었으나, 햇빛을 대신한 노란 조명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신대륙에서 가져온 황금을 저장하는 황금 저장소로 이용했다는 얘기가 있다네. 근데 실제로는 강의 상류로 침입하는 적을 감시/방어하기 위해 만든 탑이라고 한다. 이전에도 눈으로만 보고 슥 지나쳤던지라 한 번 올라가 보고 싶었는데, 밤이라서 관두기로 한다. 

 

 

젊음은 좋구나

과달키비르 강의 선선한 저녁을 즐기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며 숙소로 돌아오는 길. 세비야에서는 마요르카를 제외하고 가장 오래있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스페인 광장을 보지 못한 게 너무나 아쉬웠다. 뭐든 계획대로 되는 것은 없다고, 그래도 신기한 장면들 많이 보고 맛있는거 많이 먹고 재미난 사진들 많이 찍었으니 됐지 모 ㅎㅎ

 

내일은 드디어 기대하고 기대하던 마요르카로 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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