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3박 동안 정들었던 숙소 안녕~

며칠 일정때문에 고생했으니 오늘은 좀 쉬어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침에 몸이 축 쳐지고 눅눅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흐린 아침이었다. 덕분에 간만에(?) 늦잠을 잤다. 하지만 체크아웃이 10시라는 함정이 있어서 그 전에 짐은 싸 두어야 했고 9시에 일어나서 부랴부랴 씻고 아침을 허겁지겁 챙겨먹었다. 엊그제 마트에서 사 둔 미트파이와 사과. 예전 외국인 노동자 시절의 그 아침을 생각나게 했다. 

 

 

처음으로 주유해보기

어제 장장 10시간이 넘는 운전을 한 덕분에 Full로 차 있던 기름이 거덜나 있었고, 오늘 기름을 채우지 않으면 글레노키와 와나카 일정은 말짱 도루묵이었다. 어차피 주유 해야할 거 여행 시작하기 전에 해버리자는 마음에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주유소에 들렀다. 뉴질랜드 초보자인 우리는 기름값을 비교할 여력이 안되어서 그냥 제일 가까운 곳으로 간 건데, 생각보다 이 곳 기름값이 한국보다 한참 비싸다. (리터당 거의 2.7~9NZD) 기름 게이지가 어느정도 차오를지 몰라서 60NZD 정도 주유를 했는데, 반 조금 넘게 차올랐다. (실망했음) 

뉴질랜드 대부분의 주유소는 원하는만큼 주유를 하고 바로 옆에 있는 마트에 들어가서 내가 주유한 플랫폼 번호를 말하고 결제를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첫날부터 운 없게(?) Pay at platform방식의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게 됐고, 플랫폼에서 결제를 했다. 결제가 잘 된건가? 싶어서 마트 안으로 들어가서 직원에게 확인까지 받고 주유소를 나섰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결제가 됐다가 취소됐다는 문구가 떴다. 나중에 기름 먹고 튄 사람으로 취급받아서 신고당하는거 아니야? 하고 걱정했는데, 아주 나중에서야 다시 결제가 됐다는 이력이 떴다. 왜이렇게 복잡하게 해둔건지....

 

 

100년 역사의 TSS 언슬로우 증기선

와카티푸 호수에서만 볼 수 있는 TSS 언슬로우(Earnslaw) 증기선. 타이타닉호와 같은 해에 만들어져서 110년이 넘는 해를 와카티푸 호수 위에서 보내고 있는 퀸즈타운 개척 역사의 필수라고 하는 증기선(중간에 복원됐다고 함). 호수에서 승객, 양, 소, 우편물 및 보급품을 운반했다고 한다. 타운센터에서 뿌우뿌우 하고 있는 친구가 이 친군데, 예전부터 한 번 타본다~ 타본다 하고 이번에도 못타고 가네. 다음에 우리 늙어서 오면 한 번 태워주라. 그때는 돈 많이 벌어서 올께. 

 

 

별 거 없는 것 같지만 또 별 거 있는 호수와 산, 그리고 하늘

퀸즈타운에서 글래노키까지는 차로 4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사실 마을 자체는 별 거 없지만 드라이브해서 가는 코스가 정말 괜찮고 편안한 자연을 선물해 주는 코스라서 선택했다. 크롬웰과 글래노키를 고민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잘 한 선택같다. 와카티푸 호수를 왼쪽에 끼고 구불구불 위아래로 직진하는 드라이브 코스였는데, 운전하는 재미도 있고 호수의 잔잔함이 주는 편안함을 같이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편안함 → 이여사 취침) 사실 호수와 산이라는게 정말 별 거 없는데, 다시보면 또 별 거 있는 것 같은 곳이다. 

 

중간에 베네츠 블러프 전망대 (Bennett's Bluff Lookout)에서 호수를 내려다보면서 사진을 남겨본다. 5분 짜리 짧은 트레일이었는데, 비가 살포시 내리기 시작했다. 날이 좀 흐린게 아쉬울 따름. 

 

 

잠깐 쉬어가는길

편안함을 이기지못해 잠에 든 이여사에게 휴식이 필요했다. 멋진 장면을 포기하기엔 너무 아깝기도 해서 중간에 차를 세우고 잠깐 쉬다 가기로 했다. 잠시라도 쉬는시간이 아까웠던 나는 와카티푸 호수의 또 다른 장면을 구경하기 위해 짧은 산책을 해본다. 퀸즈타운이 신기하고 아름다웠던 점 중에 하나는 볼 때마다 새롭고 다른 장면들이 연출된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나무의 모양새인데, 정말 신기할 정도로 나무가 제각각의 모양을 갖추고 있다. 자연의 인테리어를 쉴새없이 감상했던 오늘이었다. 생각해보니 와카티푸 호수를 있는 그대로 만져보지는 못했던 것 같아 괜시리 물이 차가운지 만져본다. (당연히 차갑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진 스팟 중 하나

글래노키로 가는 길 중 가장 아름다운 스팟 중 하나인 이 곳. 살면서 구름이 이렇게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호수와 맞닿아있는 자연의 굴곡이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아주 오래전에 이곳을 지날때에는 날씨가 맑고 호수 색깔이 아름다웠는데, 어찌나 아름다웠는지 욕을 하면서 봤던 기억이 있다.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뒷통수

글래노키는 생각보다 더 작은 동네였다. 여기서 뭘 할까 싶어서 할 만한 액티비티를 찾다가 동물농장이 있다는 걸 알게되서 검색 좀 해봤는데, 월요일이랑 화요일은 쉰댄다. 근데 더 신기한 건 대부분의 식당이 월요일이랑 화요일에 휴무였다. 그래서 점심식사 할 곳 찾는 것도 꽤 수고스러웠다는...

 

 

카페인충전 중  ■■■■■□□□

카페인이 절실했던 우리는 근처 사람이 북적이는 Akin's라는 카페에 들어왔다. 나는 롱블랙, 이여사는 플랫화이트를 주문했는데, 여행이 끝나고서야 두 개의 메뉴가 뉴질랜드가 원조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롱블랙(Long black)은 아메리카노처럼 에스프레소와 물을 섞어 마시는 방식인데, 기존의 아메리카노와는 달리 물의 비율을 적게해서 다소 진한 아메리카노ver.라고 한다. 진한 커피를 선호하는 나에게 아주 취향저격인 커피였다. 

 

플랫화이트는 호주에서 기원하여 뉴질랜드에서 완성된 스타일의 커피라고 한다. 라떼와는 달리 에스프레소 위에 아주 얇은 거품 형태의 우유가 플랫(Flat)하게 올라간 형태라고 한다. 에스프레소와 진한 농도의 우유의 조화가 맛과 향의 원천이라고 한다. 둘 다 아무것도 모르고 마음이 가는 pick을 했던 것인데, 생각치않게 뉴질랜드에서만 맛볼 수 있는 오리지널을 선택했던 거였네. 

 

 

이곳에서 또다시 마주한 작은 노란나무
호수위로 빼꼼이 솟아오른 여섯개의 나무들

에너지를 한껏 충전한 우리는 간단하게 산책을 해보기로 했다. 주차장부터 호숫가를 따라 나 있는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고요하고 잔잔한 기분을 만끽했다. 날씨가 화창했으면 호수도 반짝반짝 빛나고 새소리마저 영롱하게 들렸을텐데, 흐린 날씨탓인지 새들도 고요하고 호수도 더 우울하게 느껴졌다. 

 

 

부둣가에서 얼마없는 투샷 ㅎㅎ

부둣가로 나와 구매한 삼각대를 적극 이용해봤다. 아무래도 둘이가면 삼각대 세워놓고 사진을 찍을 여유가 없을법도 한데, 글래노키에서는 특별히 할 것도 없고 산책하고 돌아다니기만 해서 사진을 이것저것 여유있게 찍어본 것 같다. 뭔가 대학생처럼 나온것 같다고해서 이여사가 마음에 들어했던 사진.

 

 

다른쪽 배경으로도 찍어본다

이번엔 셀카봉 모드로 사진을 찍어본다. 노랗고 파고 초록색이랑 흰색 뿐이어서 그런지 사진이 그다지 복잡할 것도 없다. 호수가 마치 사막의 모래언덕처럼 단정했다. 

 

 

사연있어 보이는 이여사

먼 산을 보며 많은 생각에 잠긴 이여사. 오늘은 몇 보를 걷게 될까 걱정을 하는 걸까, 아니면 점심 메뉴를 생각하는걸까. 

 

 

글래노키의 상징인 'The Red Shed'

호수 바로 옆에 위치해 있던 글래노키의 상징이자 포토존. 글래노키에 왔으면 당연히 인증하고 가야 하는 곳이다. 이 창고는 이전에 퀸즈타운과 글래노키 사이를 오가는 증기선을 통해 운반되는 화물창고로 쓰였던 곳이라고 한다. 

 

 

아까 도착하자마자 부지런히 점심먹을 식당을 찾아봤는데, 월요일과 화요일에 쉬는 식당이 정말 많았다. 오랜만에 밥을 먹고 싶기도 해서 들어간 중국식당. 혹자가 말하길, 뉴질랜드에서 가장 맛있는 식당은 아시안 식당이라고 했는데, 간도 딱맞고 밥도 찰져서 우리 입맛에 딱 맞게 아주 맛있게 먹었던 것 같다. 퍼그버거보다 비싼 가격 때문에 살짝 망설였지만, 기름진 우리의 뱃속을 잠시 닦아낼 필요가 있었다. 오랜만의 쌀이라 더 달았던 듯 ...

 

뉴질랜드에서 가장 맛있는 밥집은 아시안 식당이다.

 

이슈가 없는 여행이 없구만

아주 심플했던 글래노키 드라이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아쉬웠던 장면을 사진으로 담고 싶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뉴질랜드는 왕복2차선 도로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가끔씩 차를 정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열심히 찍고 돌아가려는 찰나....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다. 방향을 틀어서 앞으로 나가려고 차를 조금 후진했는데, 너무 밟았는지 후진을 너무 많이 해서 뒤에 있는 가드레일을 들이받아 버렸다. 뭐...당연히 차가 찌그러졌겠거니 싶었는데, 생각보다 차의 아구가 너무 심하게 벌어져서 여행 내내 입을 벌린채로 다녀야 했다... Full coverage 보험 아니었으면 진짜 절망했을 뻔 했다. 

그리고 애초에 뉴질랜드는 도로 보수하고 있는 장면도 많이 볼 수 있는데, 자갈이 많이 깔려있어서 마주오는 차량에 의해서 자갈이 우리 차량으로 튈 우려가 정말 많았다. 그래서 우리 잘못이 아님을 입증할 수도 없거니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스크래치가 발생할 수 있어서 무조건 Full coverage로 보험 가입하는 것을 추천 또 추천... 어찌된게 여행을 갈 때마다 이슈가 한 개 이상은 발생하는데, 매번 사고는 내가치고 이여사는 날 위로하는 역할을 한다... 미안해 이여사...

 

 

그리운 크롬웰(Cromwell)

마음을 다잡고 다시 와나카로 향하는 우리. 우리는 16시 30분에 와이너리 투어를 예약해두어서 바삐 이동을 해야했다. 가는길에 보였던 반가운 표지판. 뉴질랜드에서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있는 도시인데, 하마터면 그 방향으로 가버릴 뻔 했다. 시간만 조금 더 있었어도 들러서 쭉 둘러보고 가는건데... 아쉬운 마음이 컸다. 

 

 

 

곧장 마운트 록(Mt. Rock)을 넘어서 가는 길은 가파른 경사를 수 분동안 올라갔다. 몇 분 전까지만해도 저 밑에 있었는데, 순식간에 이만큼이나 올라온 우리. 드넓은 평원과 그 위로 모여있는 구름들이 한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재밌는 도로 ㅎㅎ

이전에 와나카에서 퀸즈타운으로 넘어갈 때에 구불구불하고 가파른 경사를 지나왔던 기억이 났는데, 바로 이 곳이었다. 이여사도 이 도로가 신기했는지 네비에서 캡쳐를 해두었다. 코너를 한 번 씩 돌 때마다 높이가 급격히 높아졌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는 평원이 저마다 다르게 보였다. 

 

 

또 올라간다

바깥을 쳐다볼 때마다 신기한 장면들이 너무 재밌어서 멀미가 날 틈도 없었다. 평원을 마음껏 조망하라고 중간에 전망대도 있었다. 근데 도대체 언제까지 올라가는거니? (뉴질랜드 특: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안 가까워짐) 

 

 

와 죽인다 ㅎㅎ

고개를 넘고 협곡을 가로질러 도착한 와나카. 와나카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짐을 풀고 싶었으나 숙소 체크인을 하고 와이너리로 넘어가면 예약한 투어 시간을 못맞출 것 같아서 그냥 와이너리로 향했다. 차를 가지고 와이너리 투어를 간다면 술을 못마실 것 같아서 단단히 각오(술 참을 각오)를 하고 갔다. 도착하니 메인 게이트가 굳게 닫혀있었는데, 벨을 누르고 예약을 했다고하니 바로 열어주었다. 이와 동시에 펼쳐진 지상 낙원. 와이너리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입구부터 환상적인 장면을 보여주었다. 

 

 

3월은 네팅(Neting) 시즌이었지

빈야드의 포도들은 작고 소중했다. 이제 거의 익어서 수확할 시즌을 앞두고 있었고, 동물들이 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네팅(Neting)을 해 두었다. 이런 그물때문에 쉽게 가까이 가지 못하는 새들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와...이런

입구 안쪽으로 들어가니 보였던 더 환상적인 뷰. 언덕 아래로는 수많은 포도나무들이 잘 정렬되어 있었고, 그 앞으로는 시원하게 뻗어있는 와나카 호수가 있었다. 이게 사진 한 장에 담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영광이었다. 

 

 

쯔쯔가무시 조심!!

언덕에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우리가 간 날에는 날이 흐리고 비가 왔다...ㅠㅠ) 호수를 바라보며 와인을 마시는 상상을 하니 벌써부터 두근두근. 앞 turn의 그룹이 조금 늦어져서 4시 30분 보다는 늦은 시간에 시작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주변을 돌아다니며 울타리 없는 양 마냥 주변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잔디 언덕에서 뛰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무지개도 봤다. 

 

 

이제 슬슬 와인이 고프기 시작한 34세 어른이

이제 슬슬 와인이 땡기기 시작한 나. 사진 찍는게 질릴때 쯤 시작한다는 사인을 주었다. 

 

 

우리를 위해 준비된 와인들

와인 시음은 간단하게 진행됐다. 뉴질랜드의 와이너리는 대부분 무료로 시음이 가능한데, 시음을 마음껏 하고 맘에들면 사 가라는 부담없는 정책으로 느껴졌다. 옛날에 북섬에서 홈스테이 할 때에도 일본인 친구의 홈스테이 주인이 차를 끌고 돌아다니며 와이너리 투어를 해줬던 게 생각났다. 그때는 와인의 '와' 자도 모를 때였는데, 그냥 주는대로 막 마셔서 많이 취했던 게 기억이 나네.. (오늘은 그러지말자)

 

내가 술을 마시면 운전을 못하게되서 주차를 하고 내일 찾아가도 되는지 물어보니까 정말 일말의 고민도 안하고 You can drive라고 하는지... ㅎㅎ 어이없어서 속으로 웃음만 나왔다. 아무튼 많이 마시는 것은 안되니까 진짜 '시음'만 하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안 취한 나(?)와 재밌게 즐기고 있는 이여사

우리를 위한 두 개의 와인잔이 준비되어 있었고, 다른 와인으로 넘어갈 때마다 입을 리셋할 수 있는 물, 그리고 시음 후 뱉을 수 있는 Wine Spittoon도 준비를 해 주었다. 테이스팅 전에 와이너리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함께 리폰 와이너리의 역사를 이야기 해 주었다. 

 

테이스팅 가장 처음의 순서는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소비뇽 블랑. 미네소타출신의 누나가 또박또박한 영어로 소개해주는 리폰 와이너리의 역사와 다양한 와인이야기들을 청취했다. 테이스팅에 참고할만한 향과 함께 각 와인이 나오는 빈야드의 토양에 대한 설명, 햇살과 바람 등 본 와인이 최적으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는 아주 유익한 설명들. 사람들이 막 질문을 하길래 나도 오픈하고 에어링은 얼마나 해야되는지 물어봤다. 한 시간 ~ 한 시간 반 정도가 적당하댄다. 

 

로제 (좌) 피노누아 (우)

이후에 로제 / 피노누아 / 게뷔르츠트라미네르 / 리즐링 순서로 시음을 했다. 로제는 다소 콤콤한 느낌이 없잖아 있어서 우리 스타일은 아니었고, 피노는 혀를 강하게 조이는 타닌과 다소 무거운 바디감이 이게 피노가 맞나 싶을 정도로 신기했다. 그리고 '게뷔르츠트라미네르'라는 신기한 화이트와인 품종도 시음했는데, 중간의 바디감의 신선한 품종이었다. 리즐링은 그저 그랬다. (리즐링은 아이스와인이 짱..)

 

 

우리가 시음했던 와인을 친절하게 체크해줬다

우리가 맛있다고 생각했던 소비뇽 블랑과 센트럴 오타고 지역의 대표 품종인 피노누아를 겟 했다. 리폰 와인은 한국에서는 마셔볼 수 없는 와인이니까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리폰 와인의 가장 큰 함정은 스크류캡이 아니라 코르크 타입이라는 거... 이때까지 이거 때문에 고생할 지 아무도 몰랐다지...

 

 

숙소에서 바로 보이는 와나카호수

오늘은 우리 일정에서 유일하게 에어비앤비로 묵기로 한 날인데, 결제 실수로 취소를 당하는 바람에 다른 숙소를 예약하게 됐다. 그래도 나름 와나카에서 잘 알려져 있는 숙소이기도 하고 와나카 호수와의 접근성이 좋아 선택했다. 다음 날 갈 예정이었던 로이스 픽과도 가깝기도 했다. 

 

You can drive를 명심하며 정신을 다 잡고 조심에 조심을 더해서 숙소로 이동했다. 사실 5분 밖에 안 되는 거리였지만, 아까 사고난 부위가 벌어져 있어서 누가보면 사고 내고 도망간 차량으로 보일까봐 조마조마 하면서 이동했다.

 

체크인을 하며 리셉션 직원에게 내일 로이스픽 괜찮을까? 라고 물어봤다가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는 코멘트를 듣고 잠시 절망했다. 오늘 날씨가 워낙 구렸던 탓에 내일 날씨도 상당히 걱정이 됐는데, 직원이 내일 날씨를 조회하더니 비가 올거라고 했다. 로이스 픽 대신에 호수 건너편에 있는 Sticky Forest를 더 추천한다는 이야기를 해서 잠깐 고민했다. 사실 날씨가 좋아야 위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좋을 것 같아서 더 고민했던 것 같다. 일단 내일 날씨를 지속적으로 체크하며 결정하기로 했다. 

 

 

호수위의 나무로 가는 길

와나카에 왔으니 호수 위의 나무를 보러가자는 마음에 당장 출발. 아주 거대한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 있고, 그 사이를 헤집으며 산책을 시작했다. 나갈때부터 바람이 아주 거칠게 불기 시작했고, 호수에서는 파도소리가 났다. 

 

 

와나카의 명소(?) 호수 위의 나무

우리가 호수 위의 나무를 보기 위해 바로 앞에 섰을 때에는 바람이 더 거칠어져서 눈을 뜨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사람들도 역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겨우겨우 사진을 찍고 있었고, 우리도 다를 게 없었다. 와나카 호수 위에 홀로 서 있는 이 나무는 버드나무인데, That Wanaka Willow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한 80살 정도 된다고 한다... ㅎㅎ 

 

 

바람때문에 머리는 국수가닥이 되기 시작하고 눈을 뜨기 힘들어짐

나무 하나가 호수 위에 있는게 뭐 대수냐 싶겠지만 나무가 물에 계속 노출되면 뿌리가 썩기 마련인데, 이렇게 살아서 홀로 바람을 맞고 세월을 이겨내고 있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우리집 어항에 유목들도 시간이 지나면 썩어서 버려야 되는데, 80년씩이나?

 

 

아쉬움에 한 번 더 돌아본다.

쉬지않고 몰아치는 바람과 추위를 견뎌내지 못하고 짧은 만남과 동시에 이별을 고한다. 아쉬운 마음에 한 번 더 돌아봤다. 

 

 

바다라고 해도 믿을 와나카호수

호수 앞을 거닐다보니 너무 추웠다. 바깥에 더 있다간 감기걸릴 것 같아서 타운 센터에 미리 찾아둔 식당으로 들어갔다. 

 

 

Trout에서

이여사가 찾은 와나카의 맛집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너무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추위를 등지고 들어왔을 때 따뜻해진 것부터 기분이 너무 좋았는데, 호수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안내를 받아서 더 기분이 좋았다. (안내해주는 서버가 찐~득한 키위영어를 구사하시는 분이라 귀가 안들려서 좀 힘들었지만 ^^;) 입가심으로 먼저 주문한 Tuatara와 Monthei's 생맥주. 우리 둘 다 Tuatara를 마음에 들어했다. (Tuatara는 뉴질랜드에서 사는 파충류인데, 맥주 Brewery 이름이기도 하다.)

 

이어서 나온 피쉬앤칩스와 뇨끼. 맛은 정말 매우 훌륭했다. 뉴질랜드에서 먹은 음식중에 제일 괜찮았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피쉬(Blue Cod)는 약간 특이한 카레향 나는 시즈닝이 정말 신선했고, 쇠고기스튜 베이스에 쫄깃한 뉴질랜드 감자로 만든 뇨끼는 아주 풍미가 좋았다. 둘 다 바람을 하도 맞아서 그런지 배를 채운다기보다는 얼얼함을 깨우는 쪽에 가까웠다... ㅎㅎ

 

 

별빛이 아름다웠던 와나카

저녁식사를 하고나니 어느덧 저녁 8시가 넘어 있었다. 밖을 나오니 앞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캄캄했고, 바람은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거세서 눈을 뜨기가 힘들 정도였다. 8~9시에 도로에 쥐새끼 한마리 없는 게 어이없었고 좀 무서울 정도였다. 차를 가져오지 않은 탓에 왔던 길을 그대로 걸어가야 해서 정말 고되었으나 하늘에 도포된 별자리와 은하수를 보는 맛이 있었다. 이여사는 엊그저께 별자리를 보는 어플을 받았는데, 매칭시켜보는 재미가 있다며 어린아이처럼 신나했다. 

 

어찌어찌 숙소에 도착했고, 내일도 이정도의 바람불고 추운 날씨라고 가정을 해보니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긴장되는 마음을 가지고 샤워하고 바로 잠에 든 우리. 알람을 4시쯤에 맞춰두고 10시쯤에 잠에 들려니 왜 이렇게 아쉬운지. 막상 하루를 시작할 때에는 오늘 하루만큼은 조금 쉬어가는 여행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았는데, 막상 아쉬운 건 또 왜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여행이라는 게 항상 아쉬움은 남고 다음을 기약하는 일이 다반사인 것 같기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