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호수로 시작한 아침은 기분이 안좋을 수 없었다. 잔잔한 바람에 호수의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고, 어제는 볼 수 없었던 에메랄드 빛의 색깔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날씨가 완전히 맑지는 않았지만, 에메랄드와 사파이어 그 사이의 아름다운 색으로 호수가 빛나고 있었다.
간단한 토스팅과 광일로 하루를 시작한 우리. 첫날 아침식사를 위해 구매했던 토스트빵들이 아직도 남았고, 잼 역시 대용량이라 절반도 먹지 못하고 남겨야 했다. 다행히 백팩커들을 위한 기부박스가 있어서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남기고 올 수 있었다... ㅎㅎ
공용 거실에서 테카포와 한 잔 사진을 남겨본다. 테카포에서 찍을 요량으로 가지고 온 노랑이 옷은 오늘 제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인가?
오늘은 기필코 선한 목자의 교회를 가서 호수와 함께 사진을 찍노라 결심했다. 어제 밤에 별 사진을 찍을 때에 선한 목자의 교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플래쉬들이 다수 보였고, 좋은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잠~시 후회했었다. (S23도 충분히 좋은 카메라인 것을 여행에서 많이 깨달았다) 그래도 테카포까지 어렵게 왔는데(그것도 10년만에!!), 여기서 사진 한 장 찍지 못하면 절대 안될 것 같아서 부랴부랴 짐을 챙겨 밖을 나섰다. 덕분에 체크아웃 할 때 기념품으로 사 두었던 휘태커스 초콜릿을 그대로 냉장고 안에 두고 오는 참사 발생 ^^ 심지어 크라이스트처치 가는 길 한복판에서 생각이 났다.
선한 목자의 교회에 도착한 우리는 어떻게든 각을 잡아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날이 맑지 않아 분위기가 생각한 것만큼 살지 않았다. 더군다나 어제처럼 바람은 또 어찌나 세게 불던지, 사진을 찍을 때 말고는 외투를 계속 입고 있어야 할 정도였고, 바람때문에 옷이 몸에 그대로 들러붙어서 부끄러운줄 모르고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뱃살 덕분에 사진을 건지는 데 고생을 했다. (뉴질랜드에 와서 느낀 거지만 예쁜 옷을 입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죄다 한국인이다... ㅎㅎ)
갑자기 부시럭대며 나타난 야생토끼들. 덤불속에 있어 가까이 가지는 못했지만 뭔가를 찾아먹고 있었다. 유럽 사람들의 사냥 유흥거리로 들여온 토끼들이 뉴질랜드 천혜의 자연 환경 덕분에 그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현재는 토끼 사냥이 합법이라고 한다. 그래도 토끼는 귀여운걸 ...
그래도 가기 전 가장 가까이서 보았던 테카포 호수의 색깔. 10년 전 비오는 날 봤던 최악의 색깔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뭔가 상당히 아쉬운 색깔이었다. 이런 색깔은 동해에서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ㅠ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향한 곳은 타운 센터쪽에 위치한 'Greedy Cow' 라는 카페. 카페라떼가 맛있다는 평이 있어서 갔는데, 사람들이 이미 웨이팅을 하고 있었다. 기다린만큼 맛 또한 보람이 있어주길 바랐는데, 생각보다 라떼 맛은 쏘쏘했음. 이전에 회사 근처 지안커피라는 곳에서 마셨던 라떼가 스무 배는 더 맛있었다는... ㅎㅎ 역시 한국은 카페의 천국이라 맛집도 많은 것 같다.
라떼를 받아든 우리는 홀짝홀짝 마신 뒤 주변의 기념품 샵에서 부모님께 선물할 아이크림도 사고, 엽서도 사고 각종 유틸리티(컵받침 등)를 구매했다. 뉴질랜드는 대자연의 나라라 기념품샵이 심심할 법도 한데, 이들 만의 특색있는 물건들, 이를테면 마누카 꿀이나 마오리 문양을 기념품화 한 것들로 상품화를 잘 해두었다. 그래서 정신 제대로 차리지 않으면 지갑이 털리는 것이 순식간이니 조심할 것... ㅎㅎ 리쿼샵이 근처에 있었으면 찾고있었던 와인들을 샀을텐데 그러지 못한 게 조금 아쉬웠다 ㅠ
다음으로 찾은 곳은 산의 끝자락에 위치한 'Astro cafe'. 타운 센터에서 차를 타고 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는데, 입구쪽에 차단기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사전에 예약을 해야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인 줄 알고 살짝 긴장을 했었다. 다행히도 출입이 불가한 것은 아니었고, 다만 통행료(^^)를 내고 들어갈 수 있었는데, 무려 8달러를 달라고 하는 양아치들.. ㅎㅎ (양치기만 있는줄 알았는데) 그래도 테카포의 마지막 장면들을 담아낼 곳을 가는데 8달러가 무엇이 아까우랴 하면서 정신승리를 하면서 올라갔다. 올라가니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이들의 많은 차량이 주차가 되어 있었고, 바람이 드나드는 것이 느껴질만큼 시원했다.
테카포를 내려다 본 우리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어제는 도무지 볼 수 없었던 호수의 그 색깔이 나오기 시작했고, 시시각각 호수 아래의 무언가에 의해서 색깔이 계속 변하고 있었다. 호수가 신이 나서 노래를 하는건지, 춤을추는 건지 몰라도 다양한 색깔을 뽐내준 덕분에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한 중국인 커플이 사진을 찍고 있었던 돌맹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가고나서 차지한 우리.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호수의 이 장면을 너무나 값지게 담아냈다. 우리 뒤로는 이 포토스팟을 찾는이가 없어서 사진을 한참이나 찍었던 것 같다.
이제 우리의 마지막 행선지인 크라이스트처치로 향하는 길. 사실 일정이 넉넉하고 시간만 맞았다면 아카로아에서 바다랑 등대 구경을 하고 마무리 하고 싶었으나, 네비에 찍힌 4시간이라는 운전 거리는 상당히 부담스러웠고, 중간에 점심까지 먹는다면 넉넉하게 5시간을 잡아야 했다. 더군다나 날씨가 맑았으면 모르겠지만 테카포를 나섬과 동시에 구름이 먹먹하게 끼기 시작했고, 거대한 비구름을 마주했다. 가는 길이 다소 심심했던 탓에 졸릴까봐 걱정했는데, 이어 쏟아지기 시작한 빗줄기 덕분(?)에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었다. 나름 이곳에서의 운전에 재미를 느꼈는지 몰라도, 하나같이 똑같은 빌딩숲을 달릴때하고는 달리 끝없이 변하는 들판의 모양새와 똔똔하게 차를 두드리는 빗소리 덕분에 즐겁게 운전했던 것 같다.
애쉬버튼 쪽에 위치한 식당으로 목적지를 정하고 그 곳으로 곧장 향했다. 어느순간부터 Motorway라는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진짜 끝없이 직선으로만 달리는 도로가 이어졌다. 정말 이번에 여행하며 처음보는 2차선 도로도 자주 마주치고, 옆에서는 이따금씩 화물을 실ㄹ어나르는 기차들도 지나다녔다. 후두둑 쉬지않고 떨어지는 빗줄기를 뚫고 어찌어찌 도착한 점심식사 장소였던 'The Phat Duck". 우리는 마지막으로 피쉬앤 칩스와 함께 페퍼로니 피자를 시켜먹었다.
애쉬버튼에서 1시간을 더 달려 도착한 이 곳. 내가 기억하는 크라이스트처치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노잼도시라서 아예 일정을 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일정을 정리하고 마음을 추스리고 긴 비행을 위해 체력을 비축하기로...
ㅎㅎ
우리의 마지막 숙소는 공항 바로 앞에 위치한 Sudima Hotel이라는 곳인데, 15만원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예약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시설도 괜찮고 깔끔해서 정말 놀랐던 곳이다. 호텔 규모도 대단했고, 방도 깔끔하고 넓었거니와, 무엇보다도 렌트카 반납장소와 공항이 가깝고 카운트 다운이 바로 옆에 있었던 것은 덤이었다. 오늘 저녁에 코르크타입의 리폰 와인을 비울 생각이었는데, 무엇보다도 1층의 Bar에서 와인 오프너를 빌릴 수 있는 게 제일 좋았다... ㅎㅎ (이게 뭐라고..ㅠㅠ) 뉴질랜드에서의 마지막 밤도 와인이 없었다면 정말정말 슬펐을 듯...
숙소에 간단하게 짐만 옮긴 우리는 차를 끌고 주유를 하러 갔다. Full로 채워놓지 않으면 20불의 추가 차지를 한다는 계약내용이 있어 무조건 주유소에 들러야했고, 주유소에 들른 후 6시 까지 3분을 남기고서야 렌트카 반납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하고 안내받은 창구에는 짙은 영국식 영어를 사용하는 남자 직원이 환대를 해 주었다. 뉴질랜드를 재밌게 여행했냐고 물어보는 간단한 인사와 함께 차에 어떤 문제가 있었니, 불편한 점은 없었니를 물어봐 주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오른쪽 뒷편이 쫌 뿌개졌다고 말하니 다친 곳은 없냐고 먼저 물어봐주는게 좀 감동포인트였음. Full coverage 보험을 들었던 덕분에 우리가 추가 차지 할 것은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일종의 경위서? 같은 것을 작성했다. 대충 어디서 그랬는지, 어쩌다가 사고가 났는지 등등을 기재하는 Form을 작성했고, 너의 잘못을 인정하는지?에 대해서 check하는 항목도 있었다. (이 부분은 전적으로 사고 난 상대가 있을 때 논쟁의 여지가 있을 경우를 생각해서 사전에 조사한다고 한다) 아무튼 수리 비용이 많이 청구되서 추가 차지가 있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럴 것들은 없었다.
공항쪽으로 간다고 하니 셔틀로 태워준다고 해서 또 감동... (원래 셔틀 서비스를 제공하는거겠지만.. ㅎㅎ) 가는 길에 카운트 다운에 내려달라고 요청하니 그 곳에 내려주었다.
카운트다운에서 김치면과 미고랭 면, 그리고 아까 숙소에 고스란히 놓고 온 휘태커스 초콜렛들을 대량으로 구매했다. 그리고 쇼핑하다가 만난 Talley's 하프쉘 홍합... ㅎㅎ 반갑다 친구야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부리나케 씻고 가벼운 저녁식사를 했다. 우리의 여행을 복기하다가 갑자기 내가 블로그에 써놨던 10년 전의 포스팅들을 읽다보니 시간이 너무 빨리 가버린 게 함정... Rippon 에서 구매한 피노누아와 함께 뉴질랜드에서의 마지막 밤은 기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