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비싼 숙소에 있으니까 아침 산책을 하고 싶어진다. 어제의 늦은 오후와는 다르게 떠오르는 햇빛을 등지고 있었던 메인 풀장. 아침수영을 할까 했지만 아침부터 수영을 했다간 젖은 수영복 때문에 캐리어가 감당이 안될 것 같았다. 하루종일 수영할꺼 아니면 수영장이 딸린 호텔을 도대체 왜 가나 했더니, 그냥 마음이 즐겁고 평온해지는 마법이 있어서인가보다.
간단한 뷔페와 선택식으로 골랐던 베네딕트와 오믈렛. 어제 라 레지덴시아에서 너무 호화로운 조식을 먹었어서 그런지 아침식사는 기대했던 것에 비해 그냥저냥이었으나, 에그베네딕트의 퀄리티가 아주 좋아서 개인적으로 낭낭했던 조식이었다. 상대비교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습성이라 ^^; 특히 스페인은 어딜가도 오렌지 쥬스의 맛이 너무 좋다. 단짠단짠이 아니라 단신단신 조합이라고 해야되나...
마요르카의 운전 난이도가 예상했던 것보다 높았기에 여행 내내 내가 운전을 했는데, 그래도 팔마에 복귀하는 길은 이여사가 운전해 보기로 했다. 같이 국제면허를 취득했기도 했고, 네비게이션이며 익숙한 우측통행이라 부담스러울 것은 없었다. 발데모사 지방처럼 가파르고 좁은 산세의 도로를 올라가는 것도 아니어서 오늘 운전의 주도권은 이여사에게 양도ㅎㅎ 오른쪽은 한국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캔생수인데, 호텔에서 체크아웃 하면서 노나준 기념품이다. 뭔가 더 상쾌하고 말끔한 느낌이 들었던 NEA생수. (한국에서는 6캔에 5.4만원 ㅎㅎ...;;)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도착한 렌트카 대리점. 그저께 앞차가 후진을 하면서 들이받은 까닭에 좌측 헤드라이트가 애꾸눈이 됐는데, 괜히 이게 뭐냐 저게 뭐냐며 우리에게 책임을 물을 줄 알았다. 근데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우리가 풀보험을 들었던 덕분에 1분만에 해결. Okay You can go.
그늘 아래의 셔틀 대기장소에서 조금을 기다리니 커다란 벤이 도착했고, 우리는 무사히 팔마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부지런히 수속을 밟고 비행기를 탑승하려고 대기하고 있었는데 이게 뭐람... 바르셀로나 행 비행기가 무려 60분이나 지연이 됐다. 우리의 믿을맨 에어유로파도 딜레이 크리티컬을 이겨내지 못하고 60분 지연이라니 ㅠㅠ
처음에는 아예 탑승하는 게이트를 못찾아서 한참을 헤매다가 중간에 안내해주시는 분께 게이트가 어디냐고 물어보니 저쪽으로 가란다. Okay Thank you 하고 바로 옆에 있던 설문조사 만점(매우 도움이 됐어요) 주기... ㅎㅎ 직원도 어이가 없었는지 실소를 지었다.
지연되는 시간동안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기다려본다. 한 시간을 조금 넘기고 나서야 겨우 탑승할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로 가는 길은 그다지 멀지 않았다. 45분 정도를 비행하고, 무사히 짐까지 찾은 우리는 카탈루냐 광장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바깥구경을 했다.
나에겐 그래도 조금은 익숙한 카탈루냐 광장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사람이많았고, 광장을 시작으로 수 갈래로 뻗어 있는 여행의 시작점들이 우리의 여행을 또 설레게 했다. 우리의 숙소는 지하철을 타고 겨우 한 정거장이었지만, 뭐 얼마나 걸리겠어 했던 게 무려 여덟 블록을 걸어서 도착을 했다. 16시 30분에 카사바트요 입장 예약을 했던 우리는 그래도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어 1층에 있는 호텔 내 펍에 들렀고, 간단한 안주와 음료(?)를 챙겨먹었다. 맥주가 뛰어났던 건지, 맥주가 맛있어야 하는 상태였는지는 모르지만, 더운날씨에 입으로 콸콸 들이붓는 맥주는 원효대사의 해골물처럼 단맛이 났다.
카사바트요는 카사밀라에서 눈길만 옮기면 바로 볼 수 있는 지척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Casa'는 스페인어로 '집'이라는 뜻이고, 바트요는 사람이름인데, 말그대로 '바트요네 집' 이다. 찾아보니 바트요는 섬유업계의 거물이라고 하고, 가우디가 바트요를 위한 집을 아르누보 스타일로 준공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바트요네 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카사 밀라와 더불어 워낙에 유명한 곳이고, 더군다나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핫 한 거리에 위치해 있어 세상의 온갖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카사 바트요와 인물사진을 타겟팅해서 담을 수 있는 것은 저정도가 한계라는... ㅎㅎ
예약완료 프린트를 건네고 각자 한국어 음성이 나오는 오디오 안내 디바이스를 시작으로 바르셀로나 일정이 시작됐다. 간만에 듣는 한국어 안내에 신난 이여사.
가우디는 특히나 자연의 표현방식을 많이 사용했기로 유명한데, 근래의 건축양식에서는 많이 볼 수 없는 둥글둥글하고 유 한 느낌의 곡선을 많이 살린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중앙정원에는 포르투갈에서 이미 한 번 경험한 Azure Blue가 옅은 색부터 짙은 색까지 바다의 깊이를 섬세하게 살리면서 표현이 되어 있었고, 성당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형태의 그것들이 빛을 투과하며 아름다운 색을 뽐내고 있었다. 마치 자연이 만들어 낸 공간에 들어와 있는 신기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무릇 인간은 자연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도시 한 가운데 쉼터처럼 보이는 공간의 묘사가 참 좋았다.
2층은 바트요가 주로 거주공간으로 쓰던 층이라고 했다. 손님을 접대하는 장소가 있었고, 서재와 식탁도 있었다. 중앙 갤러리 쪽 도로변으로 향하는 쪽의 창가는 마치 골격을 연상케 하는 회색 골자들이 건물을 지탱하고 있었고 그 안을 다양한 색깔로 채워둔 식이었다.
정말 신기했던 건 카사 바트요 안에서 직선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흐르는 곡선과 곡면, 다양한 패턴과 색상 등 점잖은 옛날 방식과는 달리 정말 화려하고 유(柔)한 느낌은 직선을 최대한 배제하려는 가우디의 의지가 보였다. 솔직히 당시에는 열심히 들었던 오디오 가이드가 대부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자연의 겻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이런 건축양식은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걸 훑겠다고 지붕은 찍고 내려왔던 우리. 지붕에는 테라스 카페가 위치해 있었는데, 사악한 가격은 이겨내지 못했다.
10년 전에 배낭여행을 할 적에 돈이 없어 한 끼 식사가 아닌 '떼우는' 수준으로 해결해야 했던 나에게 한 줄기 빛과도 같았던 웍투웍(WOK TO WALK). 메인소스를 선택하고, 토핑을 선택하고, 면을 선택하는 면요리 서브웨이(?) 같은건데, 아직도 그 맛과 간단한 식사가 주는 행복함은 여전했다. 그때와 다르지 않게 사람은 북적였고, 직원들도 친절했고, 면빨도 살아있었다.
북쪽의 카탈루냐 광장에서 콜럼버스 기념탑이 위치한 포트벨까지 1.2km로 이어지는 람블라스 거리는 심심할 틈이 없는 바르셀로나 대표의 번화가이다. 유동인구가 많은만큼 소매치기에 정말 주의해야 하고, 조금만 방심하면 지나가는 사람한테 치이기 때문에 눈 똑띠뜨고 정신 번쩍 차리고 지나가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람블라스 거리의 중간에는 눈이 심심할 틈이 없는 보케리아 시장이 하나 있다. 여행의 묘미중 하나는 시장구경인데, 참새들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었다.
스페인은 모든 곳에 예술을 갖다붙여놨는지, 안그래도 시장이 주는 화려한 색깔에 아트는 덤이다. 덕분에 구경하는 내내 심심할 틈이 없다. 여기서는 과일을 종류별로 짤막하게 모아둔 모둠과일을 컵 단위로 사서 먹을 수도 있고, 다른나라가 아닌 스페인의 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하몽이 뚤레뚤레 매달려 있는 모습도 쉬이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약간 짠내? 비슷한 냄새도 은은하게 나더라.
이곳에서 친구들에게 줄 기념품으로 올리브 오일과 소금을 몇 개 샀다. 스페인의 오일은 전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품질이 우수하고 향이 예술이다.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얼른 기념품 리스트에 올리브 오일을 쓰도록!
보케리아 시장을 나와 그 건너편 골목길로 아무데나 들어가보기로 했다. 날은 저물고 골목을 만들어내는 고층(?) 건물의 등빨에 힘입어 우리가 지금 몇시에 위치해 있는지도 모를 무렵, 우연히 시계를 보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는 뉘엿뉘엿 하늘색은 약간의 노을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한참을 골목길 사이를 쏘다니다가 피곤함에 절여진 우리는 일단은 숙소에서 편히 쉬고 내일 있을 일정에 대비하기로 했다.
우리 여행의 마무리는 언제나 맛있는 술이었는데, 오늘은 여행 중 가장 후회 한 순간이기도 했다. 포르투에서 와이너리 투어를 마치고 홧김에 집어들어 사왔던 20y 375ml를 정말 아무생각없이 땄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세상에 포트와인이 이렇게 깊고 달고 흥분되는 맛일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우리의 피곤함이 맛을 더 좋게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생각나는 과일을 10개는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향이 그득했고, 단맛은 어찌나 깊던지... 더 큰 용량, 더 올드한 빈티지를 잔뜩 쓸어담아 오지 못했다는 게 너무나 후회스러울 정도. 아직도 그 향과 맛을 그리워하면서 마트에 갈 때마다 비싼 가격표를 보며 그때를 회상하곤한다.
그래도 오늘은 쉬어가는 날(?) 답게 2만보 정도로 마무리. 내일 있을 가우디 투어를 위해 일찍 잠을 청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