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날씨는 꽤 쌀쌀했다. 어제와 같이 알찌게 조식을 챙겨먹은 우리는 호텔에서 대여해주는 우산을 빌려 이른 아침 숙소를 나섰다. 몬세라트로 가는 방법은 에스파냐 광장에서 기차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었는데, 에스콜라니아 소년 합창단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나서야 했다.
광장에 있는 기차역에 들어가면 몬세라트 행 기차를 탑승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티켓 발행도 역무원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우리는 기차+산악기차 조합으로 왕복티켓을 끊었고, 바깥이 잘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비오는 경치를 즐거이 감상하며 갔다.
타박타박 창가를 때리는 빗소리가 오늘은 더 신났고, 바람을 타고 거대한 산 봉우리를 넘나드는 구름의 움직임도 흥미로웠다.우리 티켓은 중간에 Monistrol de Montserrat역에서 환승을 해야 했다. 덕분에 더운공기와 먼지가 말끔히 씻겨 내려간 맑고 차가운 공기를 한움쿰 들이쉬고 갈 수 있었다.
몬세라트 역에 도착할 때 즈음 옆에 한국인 모녀가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여행오셨어요~ 로 시작한 대화는 어느덧 우리가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까지 연결이 됐고, 대기업에 다니면서 2주 휴가를 갈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라고 하셨다. 나는 그보다도 더 부러웠던 것이 모녀가 이렇게 같이 유럽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부러웠건만... ㅎㅎ
'시간의 흐름속에서 모든 것은 달라진다'라는 의미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나이도 10살 더 먹고,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나 가치관도 변할 때 즈음 이여사와 이곳에 다시 왔다.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을 뚫을 것처럼 위풍당당한 위용과, 삼면으로 두르고 있는 너른 공간은 우리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위의 속담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몬세라트의 기암괴석들은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다만 10년 전 나의 모습을 추억하면서, 마치 그곳에 남겨두고 온 나를 이여사에게 소개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이보다 더 값진 그리움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그리움을 마주한 기분이라는 게 이런건가 싶었다.
나중에 이여사도 혹시모를 우리네의 아이와 이 곳에 다시 왔을 때 이여사가 가지고 있던 그리움을 마주하게 되겠지? 남편과 신혼여행 때 같이 왔던 곳이라고 소개하며 말이다.
이제는 이곳의 성스러움과 마주할 시간. 몬세라트의 성모마리아 수도원(Abadia de Montserrat)은 기독교 세계 최고 4대 성지임을 단 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 순례자들이 찾는 곳이다. 순례자들이라 함은 영적인 답을 찾아 수도원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을 뜻하는데, 우리도 오늘만큼은 순례자의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약간은 어두침침한 입구를 지나 바로 앞에 자리한 중앙의 홀로 이동했다. 하늘과 그대로 맞닿아 있는 이곳은 주변의 어두운 곳을 대신하여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비를 그대로 맞는 것은 싫었으나, 이 분위기에 압도되어 우산없이 사진을 찍고 싶었나보다.
수도원 안에 자리하고 있는 성당으로 들어갔다. 비교적 심심했던 외관에 비해 내부는 갖가지 카탈루냐 화가들의 작품과 여러가지 조명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이 덕분에 화려하다는 표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성당 중심부에 있는 검은색 성모마리아 상까지 보고 올까 하다가 줄이 너무 길게 늘어선 것을 보고 그만두었다. 이전에 왔을 때에 검은 성모마리아 상의 오른손이 들고 있는 검은 구슬을 만지고 소원을 빌었던 기억이 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구슬을 만지며 묵상을 하고 소원을 빌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에스콜라니아 공연은 사전에 예약을 해서 앞에 있는 지정된 자석에 앉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남는자리에 앉을 수 있는 형태였다. 다만, 처음에 아무것도 모른척하고 앞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옆자리에 앉은 외국인 노부부가 우리가 예약을 했으니 같이 일행인 척을 하자고 해주셔서 얼떨결에 앞자리 쪽에 앉았다는... ㅎㅎ 덕분에 다시는 못 볼 수도 있는 귀중한 목소리들을 선명하게 담아왔다.
수도원과 성당의 여운을 더 길게 남기게 해 주었던 곳. 우리도 몇 유로를 내고 초를 봉헌했고, 이여사도 잠깐이지만 이곳에서 소원을 빌고 갔다.
하산까지 시간이 한참 남았던 우리는 기념품 가게에 들러 짧은 구경을 하고 옆에 딸려있던 식당에서 뷔페식(?) 점심을 해결했다. 뭐 이런 뷔페가 다 있나 싶었지마는 미쳐버린 물가를 잠시 잊을 수 있는 Calm down의 시간...
하산하는 길. 어느덧 비는 멈추고 구름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구름 위를 뚫고 일출을 본 적도 있고,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본 적도 많았지만, 빠른 속도가 체감되는 기차로 구름 속을 비집고 들어가서 한참을 있었던 시간이 기억이 남는다.
우리가 광장에 다시 도착했을 때에는 늦은 오후였다. 비는 그친 후였고 이왕 이곳에 온 김에 한 번 둘러보기로 한 우리. 대로변을 따라 몬주익 광장 쪽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사람들이 몇 없어서 그랬는지 위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너무나 잘 들렸고, 밤처럼 형형색색은 아니어도 새하얗게 흩어지는 물의 모양새가 예뻤다. 낮에는 지나다니는 차들도 그리 많지 않아서 사진 찍기가 참 편했다.
뒤에 시끄럽게 들려오는 인공폭포 소리에 조금만 더 왼쪽으로 와서 서 봐~ 라는 소리가 잘 안들렸다. 우산을 쓰고 사진을 찍으니 틸트는 엉망이고 피사체는 따로놀고 난리 부르스였다.
이때 체력이 남아서 끝까지 올라간것도 신기하네... 비오는데 굳이 끝까지 올라가보자며 생떼를 부리는 남편의 성화에 못이겨 어찌어찌 끝까지 올라간 이여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이따보자 안녕 ~
잠시 숙소에 들어간 우리는 오늘이 바르셀로나에서 쇼핑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잠시 분주해졌다. 저녁에 있을 몬주익 분수에서의 완벽한 마무리를 위해 짧게 낮잠을 청했고, 한 시간 뒤 쯤 곧잘 일어나서 여행 전에 작성해 둔 쇼핑 리스트를 꺼냈다. 스페인에 오면 반드시 사야 한다는 올리브오일부터 해서 양 가족내외분들께 선물할 엠플, 그리고 회사에 가져갈 기념품까지, 사야할 물건들이 한가득이었다. 모두 사고나면 패킹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곰곰이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캐리어를 하나 더 샀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캐리어가 많았던 여행은 단 한번도 없었는데(대부분 배낭여행), 캐리어를 3개나 끌고 공항에 갈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지만서도, 여기에 온갖 기념품들을 가득 담을 생각을 하니 좀 설레기도 했다... ㅎㅎ
스페인 여행 쇼핑 리스트에 꼭 들어가 있는 기념품 중에 '올리브오일'이 있다. 올리브오일이 몸에 좋은 것 정도만 알고있던 우리는 뭐 이렇게 대단한 건가 싶었다. 그럴 생각을 할만도 한 게 올리브 오일 사용이 일상화 되어 있는 유럽 문화가 익숙하지 않았던 탓이고, 한국에서도 음식의 심심함을 달래줄 정도로만 사용을 해 왔기에 그닥 큰 감흥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유럽권 국가 여행을 조금만 다녀보면, 어딜가나 올리브 오일을 쉽게 접할 수 있고(샐러드, 식전빵, 메인요리 등) 그 맛 또한 일품이라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스페인은 워낙에 볕의 힘이 세고, 토양이 좋아서 나무가 자라기 좋다는 천혜의 환경이라는 말은 들었는데(와인때문에 알게됨), 그 조건들이 스페인의 품질 좋은 올리브 오일까지 전해졌나보다.
숙소 근처에 마침 올리브오일로 유명한 라 치나타(La Chinata)라는 샵이 있었다. 라 치나타는 스페인 내에서도 꽤 유명한 기업으로, 재계 순위 20위권에 들 정도로 규모가 있는 회사라고 한다. 최상급 엑스트라 버진(설명 쓰기) 오일만을 취급하는 회사라고 한다. 뭐 대단한 건 알겠고, 어떻게 올리브오일만으로 이렇게 샵을 차릴 수가 있지(어떻게 매출올리면서 굴러가지?)라는 궁금증이 들 무렵 샵 안으로 들어갔다. (정신없이 쇼핑하느라 사진을 하나도 못찍었다 ㅠㅠ)
샵 안은 내가 알고 있는 익숙한 올리브오일 향으로 가득했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이 공간 모두를 올리브와 관련있는 제품들로 가득차 있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양했다. 올리브 오일 뿐만 아니라 올리브를 이용한 클렌징, 핸드크림 등 코스메틱도 있었으나, 이것들은 패스 ㅎㅎ 형님네와 동생네에 선물로 줄 트러플 향 오일을 챙겨 나왔다.
다음 기념품은 마티덤앰플. 사실 찾아보기 전에만해도 앰플이 뭐하는거지에 대한 개념조차 없어서 좀 찾아보니, 피부 화이트닝 효과에 주근깨와 기미도 개선해 준단다. 세상이 참 좋아졌다 라는 말을 하려 했으나, 이미 얼굴에 뭐 좀 발라본 사람이라면 앰플이 뭐 정도인지 알고 있더라(그냥 내가 관심이 없었던 것)... ㅋㅋ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고 어디서 싸게 살 수 있는지 급하게 검색해보고 찾아갔다.
우리 마티덤앰플 사러 왔다고 하니까 익숙하다는 듯이 제품을 꺼내주며 어떤 라인업으로 살꺼냐고 하며 여러개를 수두룩이 꺼내서 보여줬다. 양가 어머님들과(죄송합니다 아버지, 장인어른) 동생네, 그리고 아주머님네, 그리고 이여사꺼까지 알찌게 챙겨서 거의 30만원돈을 쓰고 왔네... ㅎㅎ 이게 단순히 우리 기념품만 사면 모르겠는데, 챙겨야 할 사람들이 많으니 갑자기 재정압박이... ㅋㅋ
내일이면 귀국하는 날이다. '벌써?'라는 생각보다 '와.. 이쯤되니 얼른 한국가서 김치찌개에 밥 먹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나현이와 여행하는 게 싫었다거나 일정이 힘들었던 건 아닌데, 아무래도 긴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계획도 나름 세우고, 돈도 많이 쓰고,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이슈들도 많았다보니 뭔가 심적으로 지쳐서 해외여행을 하며 쉬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이제는 집에 얼른 돌아가서 편한 침대에 눕고 싶다, 집에 있는 물고기들 밥도 줘야겠다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장이라도 여행했을 때로 돌아가고싶다!!). 그래도 여행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싶은 생각에 우리는 몬주익 분수의 분수쇼를 보기로 했고, 그 전에 여행 내내 그립고 그리웠던 국물음식을 일본 음식점에서 겨우 해결했다. 유럽 관광지의 한가운데에서 다른 나라의 음식을 먹으면서 맛을 기대할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예상 가능하고 익숙한 국물맛이었던 덕분에 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 아름다운 밤을 마무리 할 몬주익분수 Phase 2. 오늘과 안녕을 고한 태양은 바르셀로나 도시 한가운데를 관통하기 시작하며 사라져갔고, 날은 점점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바통을 터치한 형형색색의 조명들은 이때다 싶어 밝게 빛나기 시작했고, Early bird들은 그 조명을 제일 잘 감상할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언덕의 아주 잘 보이는 자리는 이미 만석이고, 심지어 기둥의 발등까지 올라가서 높은곳에서 내려다보는 사람들도 꽤 많이 보였다 (위험하게스리... ㅋㅋ). 그 정도 깜냥은 안되서 빈자리가 나기만을 한참을 눈치싸움 하다가 겨우겨우 언덕배기 음악분수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가끔은 유명한 팝송(e.g. Imagine)같은 것들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면 무슨 콘서트장처럼 사람들이 떼창하는 경우도 있는데, 우리도 좀 알만한 노래가 있으면 흥얼대곤 했다. 공연에서 군중의 일부가 된다는 느낌으로... ㅋㅋ
뭐니뭐니해도 가장 좋았던 건 바르셀로나 여행자를 환영하는 듯한 뉘앙스가 담긴 이름 모를 노래였다. 오늘의 낯선 감정을 뒤로하고 바르셀로나의 밤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처럼 느껴졌고, 그 모습을 넋놓고 보고 있는 우리의 모습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우리의 길지만 짧았던 신혼여행을 마무리 하기 위한 최고의 공연이었다. 요 분위기에 띤또데베라노나 맥주가 있었으면 딱 좋겠다 싶었는데, 맥주 캔을 따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 분위기에 휩싸여 지나가는 보부상들한테 웃돈주고 사버릴까 했지만, 공연이 그 자체로 아름답기 위해서는 맨정신으로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요상한 신념(?) 때문에 맥주 만큼은 참았다... ㅎㅎ
마지막 뒤돌아서 나가는 순간까지 카메라에 담아내기 ㅎㅎ 우산쓰는게 이해가 되는 출수량이었다.
광장 지하철 역에는 분수쇼가 끝나고 귀가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돌아가는 길.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느끼지만, 이렇게 밤이 무섭지 않은 여행지는 흔치 않다. 파사 데 그라시아 역에 도착했을때에는 이미 11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우리는 잠깐 마트에 들러 못내 아쉬웠던 캔맥주와 함께 스페인에서만 먹을 수 있는 프링글스 하몽맛을 집어들고 숙소로 들어왔다. 근데 이 하몽맛 프링글스 왜이렇게 맛있지? 라고 생각할때쯤 드는 후회감. (우리는 작은 사이즈의 하몽맛 프링글스를 끝내 구하지 못한 채 귀국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더 커지기만 했던 아쉬움. 평생에 한 번 있을 신혼여행이 이렇게 마무리되어 가는게 갑자기 아쉬워지기 시작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