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이라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던 건지 오늘도 아주 느즈막이 일어나 하루를 준비한 우리. 여행 후에 그 날 아침은 뭐먹었지? 라고 했을 때 쉬이 기억하지 못하고 사진첩 또한 비어있는 모습을 보니 이제는 여행의 관성도 효과를 다해서 집에 돌아갈 때라고 느끼고 있었다. 오늘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의 일정은 딱 하나. 고딕지구 근처에 위치한 라떼 맛집에서 여유있는 모닝커피를 딱! 마시고 점심 딱! 먹고 공항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일단은 체크아웃까지 한 우리는 짐을 맡기고 오전 일정을 다녀오기로 했다. 샤를 드 골 공항행 비행기가 18:05에 예정되어 있어서 아직은 여유부릴 수 있었다.
천천히 아침 산책 겸 고딕지구로 산책을 나온 우리는 집이랑 회사에서 챙겨먹을 뚜론 등을 구매했고, 곧장 카페로 향했다. 산타마리아 델 마르 성당을 바라보고 있는 골목길에 위치했떤 카페는 아침이었음에도 꽤나 북적였는데, 이곳은 꼬르따도(Cortado)가 유명한 곳이었다.
현지인들도 자주 찾아 테이크아웃으로 많이 애용한다는 이 카페는 엘 마그니피코(El Magnifico). 분위기며 향기며 어느 한국의 카페와 다를 바 없었으나, 그 커피의 맛은 대단하다고 하니 기대가 잔뜩 된 상태였다.
우리는 꼬르따도를 주문했다. 뉴질랜드나 호주에서 흔히 맛볼 수 있는 플랫화이트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도대체 우리가 아는 라떼에 무슨짓을 한 것인지 이렇게 꼬숩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본 카페가 유명해 진 이유는 세계 바리스타 대회에서 덜컥 우승을 해버린 카페 주인인 까닭도 있는데, 커피 맛으로 이렇게 보여주네. 가격도 2유로 정도로 매우 합리적... (한국이었으면 만원 언저리에 팔았을듯...) 덕분에 이여사와 나는 아주 기분좋게 흥얼거리며 카페를 나섰다.
오늘은 따로 맛집을 찾아내지 못한 우리. 커피를 마시며 급하게 찾아들어간 이곳은 그래도 구글평점 4.7로 꽤 높은 편에 속했다. 고딕지구의 특성 상 골목길에 위치한 식당들이 즐비했는데, 항상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찾아 들어가곤 했다.
역시나 병나발 불 생각으로 샹그리아를 주문했고, 타파스와 감자요리, 그리고 고기로 이루어진 음식을 주문했다. 이여사는 이때 좀 과음을 했는지 취했었음 (눈이 풀림)... ㅎㅎ 우리는 무사히(?) 점심식사 계산까지 마치고 숙소에 가서 짐을 픽업했고, 카탈루냐 광장에서 곧장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탑승했다.
첫 날의 대참사를 다시 경험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비행기가 무사히 있는지와 더불어 지연되지는 않았는지, 게이트는 확실한지 두 번 세 번 체크했다. 기다리는 동안 이런 초조함 때문에 피곤할 틈이 없었다.
가방을 구매하며 작성했던 면세 서류 신청까지 완료했다. 한글이 지원되기도 했고, 그곳에서 따로 안내해주시는 분들도 많아서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면세신청 자체를 처음 해봐서 진짜 환급 받는건가? 싶은 생각이 들긴했지만서도... ㅎㅎ
이제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을 장식해본다. 더 이상 쓸말이 없다. 이제는 집에 가고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편한 의자에 앉아서 기내식 먹으면서 코하고 싶은 생각 뿐..
이제는 정말로 우리의 수많은 추억이 깃든 신혼여행지에서 떠나는 순간이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한참을 하늘 위를 뚫고 지나갈 때까지 바깥을 보고 있었다.
샤를 드 골 공항까지는 한 시간 정도 소요되어 도착했고, 우리는 무탈하게 환승까지 마무리했다. 진짜 정말 오랜만에 다른 외항사 대신 대한항공을 탑승했는데, 이렇게 한국말이 반갑고 포근하게 느껴질 줄이야. 심지어 주변에 온통 한국사람들만 탑승해 있으니 왠지 모를 심리적 안전감까지 느껴졌다. 기내는 넓고 깨끗하게 느껴졌고, 맥주나 와인만 있으면 금세 잠들 것 같았다.
탑승 후에 바로 준비된 기내식. 기내식 역시 양식과 한식 중에 선택할 수 있었는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비빔밥을 선택했다. '고추장'이라는 글자가 이렇게도 반가울 줄이야. 뚜껑을 따기 전부터 파블로프의 멍멍이처럼 침을 꼴까닥 삼켰다. 배부르게 먹고난 뒤에 곁들인(?) 버드와이저는 한국까지 단잠을 청하기에 충분했다.
인천에 도착한 우리는 곧장 처가로 향했다. 그날은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고, 지하철 역까지 마중을 나와주신 장인장모님 덕분에 편하게 도착했다. 늦은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마티덤 앰플과 와인을 포함한 기념품 증정과 어머님께 가방수여식(?)이 끝난 이후에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운전까지해서 집까지 왔다.
캐리어 정리에 앞서 기념품 먼저 꺼냈다. 정리해보니 테이블을 한가득 메우는 기념품들 덕분에 보기만 해도 배부르기도.. ㅎㅎ 결혼식 때의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감사하고 고마운 분들이 많아 모두 챙겨드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함을 죄송해하며 선물과 주인들을 매칭해두고 집에서의 휴식을 만끽했다. 여행 내내 마음에 걸리고 있었던 어항을 들여다보니, 이미 몇몇 물고기들이 사라진 상태였다. 아마도 근 2주 동안 밥을 먹지 못해 배가 많이 고파하다가 아사한 것 같은데, 그 아사한 물고기마저도 새우들이 먹어치우고 자연으로 돌아간 상태였다.(미안해...ㅠㅠ) 와서 불을 켜주고 먹이를 주니 어제 만난 똥강아지마냥 꼬리를 살랑거리며 수면 위로 향하는 물고기들을 보니 이제야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 실감이 났다.
신혼여행은 참 길었지만 그 여운은 길게 갈 것이라 믿고 내일의 출근을 준비하기로 한 우리. 아마 이렇게 긴 여행을 언제쯤 다시 갈 수 있을지 막막해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러한 이유로 신혼여행이 달콤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앞으로의 즐거운 결혼생활을 위하여! 그리고 행복한 우리의 앞날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