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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대학입학 후 태백 눈꽃축제에서

어렸을 때 다함께 갔던 가족여행에서는 나와 내 동생은 뛰어놀고 아버지, 어머니는 우리가 위험하지 않은지 재미있게 노는지를 항상 주의깊게 살피시는 세이프 가드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당신들도 가고싶은 곳이 있고 드시고 싶은게 많았을 나이인데(지금의 내 나이를 생각해보면 항상 그러하니), 자식의 즐거움을 위해 그 시간을 희생하셨다고 생각하니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후엔 학창시절(중학교/고등학교)이라는 시간의 공백을 건너뛰고 대학교에 입학했고, 나는 수원으로 올라와 자취생활을 하게되어 가족들과 떨어져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2018년 제천 리솜 포레스트에서

그렇게 거의 10여년이 지났다.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아 휴양소가 당첨되어 몇 년 만에 가족과 다같이 여행을 다녀왔다. 종종 집에 내려와서 집밥도 같이 먹고 가족들이랑 회사얘기 친구얘기 직장 동료얘기 나누곤 했었기 때문에 여행이 뭐 별거 있겠어 라는 생각으로 갔었던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달랐던 것은 내가 모든 일정을 짜고 주도해야 했던 점, 그리고 부모님의 입맛과 성향을 고려해서 식사 장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많이 부담해야 한다는 점 등,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는 게 이전의 여행과 달랐다. 어렸을 적 몰랐던 다소 생소한 책임의 무게가 꽤 무겁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여행을 위해 새로 산 옷을 자랑하는 김 여사 (쌩얼 지킴방지 모자이크)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어느새 나는 결혼해서 가장이라는 타이틀이 생겼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책임져야 할 이유와 그 무게에 대해서 차근차근 배워가고 있었다. 내 책임의 울타리가 튼튼해져가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길 때 즈음, 우리는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가족여행'을 계획했다. 사실 내년부터는 아이 계획이 있어 올해가 아니면 수 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 같아 올해를 '가족 여행의 해'로 천명(?)하고 계획을 세워보기로 했다. 다행히 동생네 부부도 같이 갈 수 있다고 하여 어머니의 환갑 생신 일정에 맞추어 역할을 분담하고 숙소와 비행기를 예약했다.

 

우리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오사카와 교토를 여행지로 선정했다. 비행시간도 길지 않아 힘드실 것 같지 않았고, 편의성이나 음식 등 한국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부모님께서도 불편해하시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일본여행 경험이 많았기에 어딜가면 무얼해야 하고 저길가면 이걸 먹어야지! 하는 선택들을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생각보다 동생네 부부가 지원을 많이 해 준 덕분에 여행자금의 부담도 크게 줄었다.

 

 

늦지 않게 오세요~

여권, 티켓, 숙소, 여행자보험 이외에도 당시에는 코로나 제한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은 상태여서 VISIT JAPAN이라는 인증을 받아야 했다. 온갖 수많은 절차를 완료하고 드디어 출국하는 날. 아버지와 어머니는 당일날 세종에서 공항버스로 올라오셨다. 15시 40분 비행기였는데, 3시간 전에만 도착하시면 되는지라 특별히 문제는 없었다. 

 

 

액체류 이슈... ㅋ

면세장에 들어가기 전에 짐검사를 하는데 갑자기 떠오른 양배추즙 이슈. 챙겨먹으려고 가져온 건데 캐리어에 넣는 걸 깜빡해서 급하게 왕창 입에 콸콸 들이부었다... ㅋㅋ 

 

 

늄늄쩝쩝

잠시동안 면세점 구경 후 출국 전 마지막으로 먹는 한국음식. 한국인들은 출발하기 전 비빔밥이나 국밥같이 매운 음식을 먹는 건 거의 국룰이다. 공항 식당은 햄버거집을 제외하면 가성비가 정말 안 좋은데,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선택지가 없다. 그냥 비싸도 사 먹어야 한다.

 

 

아마도 처음이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해외여행(같이가는)

맛있게 점심까지 해결한 우리 가족은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다.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나와 입사하기 전에 후쿠오카를 다녀오신 적이 있었고, 어머니는 친구분들 계모임으로 싱가포르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으셨지만, 두 분이 같이 이렇게 해외여행을 가시는 건 처음이었다. 어떤 기분이셨을까? 

 

 

긴장되는 이륙 전(좌), 이륙 후 맑은 하늘(우)

이륙 전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 이렇게 다같이 비행기를 타는 것도 처음. 그 동안 왜 진즉에 다같이 여행을 안갔었나 모르겠네... 

 

 

착륙 후 진이 다 빠져버린 마미(좌) 우메다역으로 곧장 향하는 고속버스(우)

원래부터 귀가 약한 어머니가 비행 내내 고생을 하시긴 했지만, 오사카 간사이 공항까지 무사히 도착한 우리는 별이슈 없이 입국심사까지 마쳤다. 수하물도 잘 찾고, 클룩으로 미리 예약한 오사카 패스도 무사히 수령한 우리는 도심까지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탑승했다.  

 

 

우메다역에 무사히 도착

버스는 한 시간 정도를 달려 우메다역에 도착했다. 우리가 우메다역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아침부터 버스타고 인천 공항으로, 비행기 타고 간사이 공항으로, 그리고 간사이 공항에서 우메다 역까지 하루를 온전히 이동에만 쓰시느라 굉장히 피곤해하셨다... ㅠㅠ 

 

 

숙소로 향하는 길.

그래도 체크인은 하고 쉬어야지 하는 생각에 곧장 숙소로 향했다. 구글지도로 봤을 때에는 숙소가 우메다 역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위치에 있었는데, 피곤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멀게 느껴졌다. 오사카의 4월은 벚꽃이 지고 초록잎이 피어나기 시작했는데, 살짝은 아쉽기도 ... 

 

 

호텔의 로비에서

우리가 3박 4일 동안 머무른 Hotel Hankyu Respire Osaka점. 9층의 로비에서는 언제든지 내려 마실 수 있는 커피머신이 있고, 필요할 때 가져갈 수 있는 어메니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셀프체크인하는 동안 커피 한 잔 하고 계셨던 우리 어무니. (에너지 가불 중) 

 

 

환상적인 숙소 뷰. 오사카가 잘 내려다 보였다.

우리의 방은 29층에 위치해 있었고, 3개의 방이 연달아 배치가 되었다. 역시나 일본의 3성급 호텔답게 아담한 방의 크기에 깜짝(?) 놀랐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알짜배기 방. 잠시동안 쉬다가 8시에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빈틈없는 히츠마부시 한상차림

약간의 휴식 후 우리가족은 동생이 미리 찾아둔 장어덮밥 집으로 직행했다. 숙소 바로 앞에 위치한 그랜드프론트의 푸드코트에 '히츠마부시빈쵸'라는 곳이었는데, 클로징 시간이 거의 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낯선 이방인 가족들을 환대해주었다. 여행 첫 식사가 그 다음의 식사를 기대하게 만드는 법이라 매우 중요했는데, 식사는 매우 훌륭했다. 커다란 대접에 깔린 하얀색 밥이 거의 안보일 정도로 장어가 천장을 두르고 있었고, 밥은 고슬하고 부드러웠다. 세상 깐깐한 입맛을 가지고 계신 어머니가 맛이 괜찮다고 하실 정도였으니, 음식 맛에 대해서는 더 이상 우리가 나서서 평가하지 않기로.. ㅎㅎ 우리는 이런 만찬에 나마비루 곁들이기 ^^

 

 

에너지 충전 후

배부르게 저녁식사를 하고나니 그래도 컨디션을 회복한 우리 가족. 우메다역의 한복판으로 향해본다. 

 

 

우메다역 한복판에서

살면서 볼 수 있는 온 세상의 일본인을 여기서 다 본 것 같다. 진짜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여사나 나나 사람 많은 곳에 오면 기빨리는 스타일인데, 우리 부모님이야 오죽하셨을까 싶다. 갑자기 뭔가 일본스런 느낌이 좀 많이 나서 사진을 찍자고 했다. 우메다역의 한복판에서.

 

 

이것저것 신경쓰느라 피곤한 매제

오늘의 첫 일정인 햅파이브로 향했다. 햅파이브는 우메다 역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었는데(길만 잃지 않는다면), 너무 일정이 무리했나 싶을정도로 다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서 좀 죄송하기도.... 

 

 

두리번두리번

햅파이브는 일종의 '도시의 눈' 역할을 하고 있는 관람차이다. 우메다 도심의 야경도 볼 수 있고, 쉬면서 소화할 수 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지루할 수 있겠으나, 힘든 이동 일정을 소화했던 오늘은 정말 최적의 일정이었다. 별거 아닌 줄 알고 탔다가 끝없이 올라가기 시작해서 잠깐 당황;;

 

 

맘앤 파파 투샷. 아직 젊으신 우리 부모님

다행히 고소공포증은 없으신 부모님은 열심히 바깥구경 하시며 사진도 많이 찍고 하셨다고 한다. 

 

 

앞의 관람차에 우리 가족이 ㅎㅎ

앞에 동생네 부부와 아버지 어머니가 탄 관람차가 보였다. 막 두드리면서 여기좀 보라고 했는데 전혀 안들렸나보다. 들은척도 안함... 

 

 

햅파이브 머싯써요

생각보다 엄청컸던 햅파이브. 런던의 플라이아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거의 아파트 30층 높이 된다고 한다. 

(런던 플라이아이: 135m, 오사카 햅파이브: 75m... ㅎㅎ)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숙소로 돌아가는 길. 나같이 젊은 사람도 오늘 일정이 다소 고되었는데, 우리 부모님은 오죽하셨을까. 아마도 어린 시절의 내가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면 조금은 쉬었다 가기도 하고 어떻게든 편하게 해주려고 하셨을텐데, 나는 그렇게 해드리지 못한 것 같아 괜히 죄송스러웠다. 오늘은 푹~쉬시면서 컨디션 회복하고 내일은 꼭 멋진 여행을 할 수있길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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