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4. 21. 교토는 맑음 (이라고 한다)
맑음이라는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한시름 덜었던 우리. 간밤에 푹 잔 덕분에 어제의 피로가 싹~풀렸다. 우리는 약속한 시간에 로비쪽으로 내려가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오늘 우리의 일정을 모두 소화하려면 하루를 위한 에너지를 완충해두어야 했다. 사실... 너무 일정을 너무 타이트하게 잡은 게 아닌가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식사는 뷔페였는데, 일식과 양식 등 다양한 음식을 취사선택할 수 있어 딱히 호불호는 없었다. 일본까지 오셨으니 한상차림으로 내어드렸으면 좋았을 뻔 했지만, 호텔이라는 한계 때문에 어려웠다. 사실 숙소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고민이 많았다. 아무래도 어머니는 일본이 처음이시니 일본 느낌이 많이 나는 다다미 방을 예약하고 싶었으나, 도톤보리 한가운데에 위치하는 등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교토 일정도 넣다보니 아무래도 교통이 제일 편한 우메다역 근처를 찾아봤는데, 여기는 또 일본 전통 스타일의 숙소는 없더라...ㅠㅠ
나름 정말 깔끔했던 조식. 호텔의 뷔페형 조식은 두 번 이상이면 질리기 마련인데, 다음번에 가족여행을 갈 때에는 조금 더 다양성에 신경을 써봐야겠다.
오사카 평일 아침. 이미 다들 출근을 한 것인지 어제 저녁만치 인파가 많지는 않았다. 우메다역이 숙소 바로 앞에 위치해 있어서 육교를 건너 분주히 움직여본다.
우메다역의 한큐 교토선으로 50분 정도 거리인 교토. 한국처럼 교통카드만 띡 하면 되는 게 아닌지라 꽤 복잡한 티켓팅을 이겨내고 나서야 겨우 열차에 오를 수 있었다. 그래도 나름 젊은이들(?)이 그 복잡함을 대신하는 중.
50분 거리라 앉아서 갔음 했는데 그래도 출발지라서 자리는 널럴했다. 서울경기 생활을 하시던 분들이 아니라서 50분 열차는 조금 어색하셨던 우리 부모님 ^^; 가는 내내 일본의 생경한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시는 부모님이 마냥 재밌었다. 마을을 가로지르며 가는 전철의 풍경은 아직 낯서신 듯 하다.
가와라마치역에 내린 우리는 전철역 지하에 위치한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곧장 버스 1일권 패스를 구매했다. (1인 700엔) 사실 오늘 버스를 얼마나 탈 지는 모르겠으나 거리를 계산하고 얼마를 내야되고 잔돈이 얼마남았고를 확인하는 게 더 번거롭게 귀찮을 것 같아서 내릴 때 보여주기만 하는 요 티켓이 가심(心)비가 훨씬 좋을 것 같았다. 지하에서 계단을 타고 바로 올라와서 보이는 E.정류장에서 203번 버스를 탑승하고 오늘의 첫 여행지인 은각사(긴카쿠지)로 향했다.
교토는 오사카와는 달리 높은 건물이 딱히 없다. 그래서인지 저 멀리 보이는 산은 더 높고 하늘이 더 크게 보여서 여행하는 내내 마음의 평안을 주었다. 역시나 이런 곳은 일본 자국에서도 여행지로 인기가 많아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편이다. 오늘은 마침 금요일이었는데(주말이 아닌 것이 참 다행), 수학여행으로 온 학생들도 종종 보였고, 패키지 모임으로 놀러온 어르신들도 종종 보였다. 역시나 도로는 쓰레기 한 조각 없다.
정류장에서 내린 뒤 조금 걸어올라가야 했다. 은각사의 입구에 도착하니 벌써부터 초록초록한 기운이 우리를 반겼다. 곧 여름이 다가올 것임을 짐작케라도 하는 것처럼 무성한 나뭇잎들이 수많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거의 10년 전에 혼자 배낭여행으로 이곳에 온 적이 있었는데, 잘 정리된 정원이 인상깊었던 기억이 난다. 티켓팅을 하면 부적(?) 같은 것을 주는데 찾아본 바로는 가내평안을 주는 문구가 적혀 있다고 한다. 일본은 이런 사소한 디자인부터 세심함이 돋보인다.
입구에 들어서니 정연하게 잘 정리된 흰 모래가 있고(긴샤단 이라고 한다), 가운데에는 이 모래로 만들어진 산 같은게 있는데, 후지산을 모형화 한 것이라고 한다. 그 주변으로는 수많은 나무들과 동백꽃들이 우리 가족을 맞이했다. 안쪽으로 들어와 정해진 길을 걷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저 뒤편으로는 은각사의 관음전이 보였다. 관음전은 상시 비공개로 되어있어 들어가지는 못했고, 멀리서 저런 것이 있구나~ 하고 지켜봐야 할 뿐. 역시 모든 여행지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을 때 제일 아름다운 법.
잘 정리된 은각사의 연못. 물고기가 있나 잠시 살펴봤는데, 보이지는 않았다. 물고기가 있으면 여과가 되야 하고, 먹이를 줘야되기 때문에 물이 오염되고 이러쿵 저러쿵 꿍시렁 댔을게 뻔하다.
우리가족사진. 이렇게 사진으로 담아내니 기분이 좀 묘했다. 이렇게 가족사진을 찍어본적이 언제였더라....
은각사의 정식명칭은 지쇼지(慈照寺)라고 한다. 교토의 다른 곳에 있는 금각사와는 대조되는 다소 소박한 형태로 있어 은각이라는 통칭이 생기게 되었다는데, 은박으로 둘러싸인 형태는 아니었다. 우리가 이 사진을 찍은 자리가 은각사를 가장 멋있게 찍을 수 있는 자리였다.
마치 자연이라는 포탈 안에 들어가는 듯한 사진.
은각사가 생각보다 괜찮아서 부모님도 그렇고 동생네 부부도 굉장히 만족했는데, 역시나 다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삶의 기호가 자연에 가까워져 가는 게 느껴진다. 번잡하고 시끄러운 건 힘들다...자연을 벗삼아 한참동안 사진을 찍다가 기념품 샵을 잠깐 구경하고 다음 여행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자 이쪽으로 오세요~ 다음 여행지로 모시겠습니다
은각사 구경을 마치고나서 그 바로 앞에 위치한 아이스크림가게에서 말차 아이스크림과 음료를 즐기며 잠시 휴식. 인상이 구겨져버린 내 모습은 아이스크림이 얼마나 달고 차고 맛있었는지를 말해준다. 어무니 아버지는 아이스크림은 너무 달아서 싫다며 말차 음료로 대신했다.
은각사의 초입부터 난젠지까지 약 2km정도 산책을 할 수 있는 자연의 터널이 나온다. 일본의 철학자인 니시다 기타로가 이 길을 산책하면서 사색을 즐겼다고 하는 곳이라서 '철학의 길'이라고 불리우는데, 산책로를 두르고 있는 벚꽃나무와 그 옆으로 낮게 흐르는 수로가 정말 인상적인 곳이다. 산책길을 따라 한참을 걸으며 어떻게든 초록빛에 어울려 보고 싶었던 우리 가족... ㅎㅎ
철학의 길을 한참 산책하다가 너무 많이 걸으면 안 될 것 같아서(체력이슈)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생각보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땀이나기 까지 했는데, 슬 힘들어지는 걸 보니 점심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언덕길을 얼마간 올라가면서 찾아낸 음식점에 가보기로 했다.
앞에 대기가 한팀밖에 없었는데, 왜이렇게 오래 기다리지 싶었는데(부모님 너무 오래기다리시게 한 것 같아서 죄송...) 역시나 수용가능한 인원 수 자체가 적었다. 텐동(튀김덮밥)과 오야꼬동(계란덮밥), 우동 등등 가볍게 점심 해결. 막 엄~청 맛있다 정도는 아니었고 그 가격에 그 맛 정도였다. 아마 배낭여행으로 왔다면 꽤 만족했을법한 가격과 맛? 부모님은 더 좋은 곳에 모시고 가는걸로.
점심을 해결한 우리는 교토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청수사(기요미즈데라)로 향했다. 778년 창건되었다 전해지는 유서 깊은 오랜 절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역시나 교토의 대표관광지답게 오사카 도심 뺨치는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자리하고 있는 청수사의 본당은 일본에서 옛날부터 전해지고 있는 가케즈쿠리(산, 벼랑, 바닷가 등에 일부분이 돌출되게 짓는 방법)라는 건축기법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절벽에서 본당을 받치고 있는 18개의 기둥은 수령 400년 이상의 느티나무가 사용되어 일절 못을 사용하지 않고 고정이 되어 있다.
수많은 인파가 이 본당을 배경으로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역시나 청수사 최고의 포토 스팟 답게 제대로 된 사진을 찍는 게 하늘의 별따기이다. 가까스로 여섯명이 한 사진에 다 들어오게 찍느라 꽤 오랜시간을 기다렸다.
여행 출발 하기 전 교토에 가는 날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는 기우였다. 행복한 교토 여행의 절반을 채워준 날씨 덕분에 온 가족이 행복했던 오늘.
청수사에 오면 입구에 붉은 옻칠을 한 키 큰 친구가 하나 떡하니 서 있는데, 멀리서 보아도 새빨간 색으로 색을 입힌 이 삼층탑은 청수사의 상징이기도 한 산주노토다. 집에서 어항을 관리하면서 가장 훌륭한 조합이 초록색의 수초에 빨간색 물고기인데, 그 훌륭한 조합이 여기에도?
청수사를 나와 니넨자카 주변에 있는 카페에 가기로 한 우리. 세상 귀한 우리가족 여자 셋을 한 사진에 담아봤다. 남자들도 모입시다!!
니넨자카는 청수사 바로 옆으로 나 있는 약 150m의 내리막길인데, 거리를 따라서 전통 일본식 건물과 상점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요 근방에 일본 고택을 개조해 만든 2층짜리 스타벅스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얼른 발걸음을 옳겼다.
카페인 충전이 시급했던 이여사. 스타벅스에 간다는 사실에 신이 나버렸다.
언덕길을 쭉 내려가다보니 자연스럽게 마주한 스타벅스.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수많은 인파가 이미 줄을 서서 대기를 하고 있었고, 카페 내부에 자리가 있을리 만무했다.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2층까지 올라가 봤지만 도란도란 수다를 떨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뿐. 앞으로 몇 시간 동안 자리가 날 기미가 안보였다. 이여사와 둘만 왔었다면 그냥 기다릴 수도 있었겠지만, 피곤하신 부모님을 위해 과감히 패스.
근처 널찍한 공간을 찾다가 들어간 카페. 시원한 에어컨에 시원한 음료는 지독한 다리의 피로를 달래기에 충분했다. 오늘 어찌나 많이 걸었는지 다들 앉자마자 다리를 주무르는 ...
나름 깔끔하고 목가적인 분위기의 카페였다.
어머니께서 일본의 '시장'을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하여 교토 내 어디에 있을까 찾아보니 청수사에서 꽤 먼 거리에 위치해 있어 버스를 타야 했다. 기온시조 쪽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너무 한참동안 오지 않아서 결국은 도보로 이동. 이미 수 많은 곳을 걸어다녔던지라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신 부모님은 이제 좀 쉬고 싶다고 말씀을 하셨다. 준비된 일정을 소화하지 못해 조금 아쉬운 감은 있었지만 남은 여정을 생각하면 숙소에서 조금 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전철을 타고 돌아가는 길. 뭔가 아쉽긴 했지만 피곤해 하시는 부모님을 보니 괜히 마음이 씁쓸...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졌다. 정말 평소 스케쥴의 반 정도만 소화하는 것 같은데, 나 혼자만 여행하는 것이 아니다보니 신경써야 할 것들이 천지였다. (정말 이 때 패키지 여행으로 할 걸 이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음) 식당 예약해 둔 시간까지 잠깐 쉬다가 곧장 저녁 먹으러 출발. 그래도 조금 쉬시고 나니 얼굴이 좋아지신 아부지와 어머니. 오늘 일정 다 끝났으니 식사하러 가시죠~
동생이 여행오기 전에 구글로 예약을 해 둔 식당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소고기를 먹어야 힘이날 것 같아서 가격 생각안하고 스키야키 맛집으로 알려진 '키소지'라는 곳을 선택했다. 숙소에서 잠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또 걷네...?)라 부지런히 또 걷기 시작.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생각보다 인기가 좋은 곳이라 워크인으로 오면 기다리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단다.
완전한 룸 형태로 된 것은 아니었지만 구획이 어느 정도는 나뉘어 있어 프라이빗한 느낌은 났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한창 저녁식사 시간이어서 이미 이 테이블 저 테이블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고, 곧장 우리 테이블을 담당하시게 될 나이지긋하신 스탭 할머님(?)께서 기본 셋팅과 함께 메뉴판을 가져다 주셨다. 돈 생각 안하고 배부르게 먹자! 하고 호기롭게 오긴 했는데, 일본의 식당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비용이 치솟을 수 있기 때문에 잘 살펴보고 주문을 해야 했다 ^^; 우리는 일단 인원수대로 주문을 하고 맥주도 곁들였다. (음주엔딩은 계속된다)
해파리와 라이스 페이퍼를 사용해 한입 크기로 만든 새콤달콤한 맛의 사키즈케를 시작으로 식사는 시작됐다.
스키야키는 본디 간사이 지방에서 시작된 음식으로, 기본적으로 코팅된 팬을 달구고 그 위에 소스를 넣어 따뜻하게 데워지면 얇은 소고기를 올려 익혀 먹는 간단한 음식이다. 스키야키의 백미는 요 날계란인데, 익힌 소고기를 날계란을 푼 접시에 덜어두고 다른 부재료들을 올려 익힌다. 그리고 잘 지은 쌀밥과 함께 먹으면 미식이 완성된다. 사실 날계란을 풀어 스키야키를 찍어먹는 것에 대한 유래는 여러 설이 있다고 하는데, 고기의 열을 식히고 강한 양념의 맛을 중화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설과, 고기의 비린 맛을 계란의 비린맛으로 덮어버리기 위한(응?) 시도라고도 한다. 믿거나 말거나... ㅎㅎ 근데 이런 비린맛은 술이랑 같이 먹으면 되는거 아닌가? ㅎㅎ
응 당연히 맥주랑 소주 주문했구요~ 이런 맛있는 음식에 술이 빠질 수 없죠..
양념을 먼저 주물팬에 부어 달궈주고 위에 곧장 야채를 푸~욱 담가서 향을 살짝 입힌 뒤, 거기에 때깔좋은 고기를 데쳐내듯이 익히면 요리가 완성이다. 우리 테이블을 담당하시는 스탭 할머니께서 일본어로 무어라 중얼거리시며 눈앞에서 손수 요리를(?) 해주셨다.
암튼 모르겠고, 일단 고기가 익었으니 젓가락으로 집어들어 맛을 보는 것은 당연지사. 스탭 할머니께서 잘 익은 고기를 계란 위에 살짝 얹어주시며 먹어보라는 제스처를 취했고, 곧장 맛을 보았다. 어머니는 세상에 무슨 고기가 이렇게 부드럽냐는 말씀과 함께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식사를 시작하셨다. 고기가 세팅되어 나올 때에는 펼쳐진 상태라서 많아보였으나, 얇다보니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는데, 식사를 과하게 하시지 않는 편인 어머니마저 이건 부족하지 않냐며 당신이 시원하게 쏘시겠다고 하고 20만원어치를 흔쾌히 주문해 주셨다.
말차 샤벳과 녹차까지 깔끔한 디저트를 마무리 한 우리는 짧았지만 길었던 둘째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사진 찍을 때 항상 굳은표정을 하시는 어머니가 기분이 좋으셨는지 환하게 웃으시는 사진도 건졌네. 마치 온 세상이 우리 어머니의 환갑을 축하해주는 듯한 장소였다. 아무튼 어떤게 꽃인지 모르겠네~
부모님과의 공식 일정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동생네와 돈키호테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어제 갔었던 햅파이브 근처에 돈키호테 우메다본점이 있어서 가볍게 산책 정도로 구경하고 오기. 많은 인원이 여행을 함께왔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위스키나 갖가지 술들을 잔뜩 사갈 수 있었고, 뭐 업어갈 게 있나 요리조리 구경을 하고 다녔다. 결론부터 말하면 돈키호테에서는 구매하지 않고, 그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산토리 가쿠빈을 4병이나 샀다... ㅎㅎ;; 겸사겸사 같이 구매했던 맥주로 음주엔딩2. 내일의 일정을 위해 편하게 쉽시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