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며 누릴 수 있는 축복 중 하나는 온종일 받아냈던 여행의 피곤함을 몇 시간의 단잠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주일이 피곤해도 주말의 낮잠 한 번이 그러하고, 출근하면서 셔틀 버스의 창가에 기대어 잠깐 자는 몇 분이 그러하다. 어제 그렇게 하루종일 돌아다녀 생긴 피로들이 나를 잠깐 다녀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금세 떠나가 있었다. 가족들 모두 간밤에 단잠을 주무셨는지 얼굴이 뽀송뽀송했다.
어제와 비슷한 조식을 먹고 커피까지 한 잔 했던 오늘. 오늘도 날씨의 신이 도왔다. 최소한 오늘까지 날씨가 좋길 바랐는데, 그 염원이 하늘까지 닿았던 날.
오늘은 전체적으로 오사카의 주요 명소들을 계획했다. 물론 주요 명소 간의 이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으로 짰지만, 이번에 가족들과 여행하면서 한 가지 배운 건, 일본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중에도 수없이 많이 걸어야 한다는 것. 대중교통 탑승 간 걷고, 관광지에서 걷고, 쇼핑하느라 걷고 하다보면 2만보 채우는 건 금방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아침식사 든든하게 했다는 이유로 또 걷기 시작... ㅋㅋ 숙소에서 우메다 스카이 빌딩까지 또 걸어갔다.
오늘은 첫 날 간사이 공항에서 수령한 오사카 주유패스를 개시하는 날이었다. 패스를 사용하면 주요 관광 명소나 탈 것들을 무료 혹은 할인 받을 수 있고, 이렇게 하루 내 주요 명소들을 쌈빡하게 둘러보는 우리 가족여행같은 경우에 굉장히 유용한 옵션이었다. 덕분에 우메다 스카이빌딩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고, 빌딩 내 투명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상층부까지 쭉~ 올라갔다.
어느정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바로 밑으로 아무것도 없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탑층부의 전망대로 이동해야 한다. 우리가족 모두 Say Hi~
탑층부에는 기념품샵과 작은 카페테리아, 그리고 그 아래를 훤히 조망할 수 있는 통창뷰 좌석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미 좋은자리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서 잠시 기다려야 했지만 그동안 가족들과 이곳 저곳을 구경하며 사진도 찍었다. 이렇게 가족 단위로 온 여행객들을 위해 소소한 포토 스팟도 준비되어 있었던 이곳.
사람이 슬 빠져나갈 때 즈음 가족들 모두가 앉을 수 있었던 곳에 일렬로 자리를 잡았다. 통창 밖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오사카의 전망 감상하기. 잠깐을 쉬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더 윗층으로 이동하는 게 보였다. 탑층부가 끝인 줄 알았는데, 더 올라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아예 지붕 뚜껑을 열고 올라가는 스카이빌딩의 완전한 지붕이었다.
오사카의 모든 바람과 햇살이 이곳에 모여 있는지 제대로 눈을 뜨고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역시 여행은 사진으로 봐서 좋은 곳이 있고, 직접 가서 봐야 좋은 곳이 정해져 있는 법. (대충 이곳은 굳이 안올라와도 된다는 뜻)
오사카의 대단한 햇살을 조명삼아 셀카 찍어보기. 이여사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아 적당한 구도 잡기를 어려워했다.
스카이빌딩 탐험(?)을 마치고 내려온 우리는 어딘가에서 쏟아지는 물소리에 끌려 내려갔다. 작은 연못이 있고 울창한 산책로가 있어 무심코 사진을 찍으며 걸었던 우리가족.
작은 정원의 한가운데에서 동생과 매제. 자연의 기운을 듬뿍 받아 기분이 좋아졌던 이 곳.
간이 정원처럼 보였던 이곳에서 자연의 기운을 듬뿍 받아간 우리 가족은 오늘의 두번째 여행지인 오사카 성으로 향했다. 이 때 너무 가족들의 체력을 과신한 나는 택시보다는 대중교통을 선택했고, 이동하는 과정에서만 거의 만 보 정도를 적립한 듯 싶었다...(ㅠㅠ) 오사카 성은 대중교통 접근성은 그다지 좋지 않아서 우메다역에서 다니마치욘초메역으로 간 이후에 좀(몇 천 보 정도?)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역에 내린 우리는 여기서 그냥 택시를 타자는 이여사의 제안을 고민만 했는데, (짧은 거리라 걸어가도 괜찮을 것 같아서) 이 때 택시를 탔었어야 했다. 오사카 성 자체가 워낙 넓다보니 그 안에서 수 분을 걸어야 하는 상황은 생각하지 않아서 나중에 피로 누적으로 생길 체력이슈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 가족은 일단 점심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찾아 둔 스시집은 또 한참을 걸어야 갈 수 있는 곳이었고, 어찌어찌 찾아 들어간 우리. 엄청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맛 없는 것은 아니었던 평범한 점심식사로 허기만 달랬다.
거대한 빌딩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탁 트인 공간으로 걸어나오니, 저 멀리 민트색과 금색으로 빛나고있는 작은 고궁 하나가보이기 시작했다. 너른 영역에 외롭게 솟아있는 그 고궁하나가 굉장히 작게 보였는데, 달리 생각해보면 우리 가족이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먼저 도착한 곳은 오사카성의 극락교. 성의 중심부를 쭉 두르고 있는 해자와 연결된 다리인데, 다리를 벗삼아 찍는 사진이 참 잘 나오는 곳이었다. 한참을 머무르며 이쪽에 서세요 저쪽에 서세요를 주문하며 여러장의 사진을 찍었던 곳.
맘파파께 이렇게 해보세요 저기 서보세요를 계속 주문했는데, 어느순간 갑자기 어색하게 느껴지셨는지 하하호호 웃으시는... ㅋㅋ 뽀뽀를 주문한 것도 아닙니다만?
성을 두르고 있는 해자를 끼고 쭉 걷다보면 이렇게 온화한 날씨와 잔잔한 물살을 벗삼아 자연을 유람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정문쪽으로 정말 한~참을 걸어갔다. 어찌나 넓은지 한 30분 정도를 더 걸어 들어갔고, 마침내 입구 쪽에 도착했다. 해자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커다란 돌문을 통과. 뙤약볕과 나무그늘이 교차하는 입구를 지나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니 땡볕만 계속되는 너른 벌판(?)이 나왔다.
잠시 쉬었다 가시는 어머니 아부지. 익숙한 뭔가를 발견해서 아는척을 해 보신다.
오사카성에 들어가기 전 성을 배경으로 수많은 사진을 찍었다. 다같이 오면 항상 이렇게 6명 모두 모인 사진을 찍는 게 정말 어려운데, 한명이 땅바닥에 세워두고 타이머 맞추고 달려오는 식으로 찍어야 했다. 오며가며 고생한 매제 덕분에 좋은 사진을 남겼다.
예약을 하고 왔던지라 별다른 웨이팅 없이 무탈하게 입장. 엘리베이터 없는 7층 정도의 높이를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는 고난이도 명소라서 한참을 낑낑대며 올라갔고, 마침내 천수각에 닿았다.
오사카성은 '일본의 나폴레옹'이라 불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임진왜란의 주범!)가 1583년 축성을 시작했고, 1931년 마지막으로 재건이 된 곳이라고 한다. 이런곳에 축성을 했다는 건 오사카가가 일본 역사에서 얼마나 주도적인 도시를 담당했는지를 전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오사카에서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 답게 화려하고 수많은 수목과 정원들이 자리하고 있다. 봄에는 벚꽃이, 그리고 가을에는 단풍이 유명하다나.
오사카 성을 뒤로하고 잠시 도톤보리를 구경하기로 한 우리. 하지만 부모님의 걷기 체력이 한계까지 왔다. 모두가 땡볕에서 하도 오랜시간을 걸어다닌 탓에 피곤이 온 몸에 쌓인 것 같았다. 나와 이여사는 오늘 저녁에 있을 리버크루즈 투어를 예약하러 가고, 동생네와 부모님은 숙소에서 잠시 쉬시기로 했다.
미도수지선을 타고 난바역에서 내린 우리. 북쪽의 신사이바시를 향해 걷다보면 사람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대충 사람이 많은 곳을 찾아가다보면 도톤보리의 한가운데를 걷게 된다. 사람이 이렇게나 많을 수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 때 즈음이면, 어느새 이렇게 글리코상 전광판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어떻게든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보려고 했던 우리는 이곳에서 한참동안 사진을 찍었다.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제대로 된 사진을 찍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지만, 남미 여행을 했을 적에도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가 참 어려웠던 걸 생각하면 이렇게 기회가 됐을 때 연애질(?)을 해야 하니까... ㅎㅎ;;
저녁 식사 전 간식으로 때우기 좋은 오사카의 명물 551호라이 만두. 예전에 오사카에 왔을 때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 무심코 다시 찾았다. 워낙에 아버지도 만두를 좋아하시다보니 간식으로 좋을 것 같기도 했다. 탄력있는 만두피에 육즙이 살아있는 돼지고기와 양파소는 아주 훌륭한 조합일 수밖에... 웨이팅도 그닥 길지 않았고, 사람 수대로 갯수를 채워 한가득 포장했다.
숙소로 가는 길. 이여사가 이따가 음주엔딩에 적합한 주전부리를 하나 집어들었다. 생각보다 주전부리를 꽤 좋아하시는 이여사님. 이여사도 오늘 많이 걸어서 피곤하다고 했다. ㅠㅠ
숙소에 돌아오니 동생네가 이미 식사거리를 구매해 두었고, 방으로 초대를 했다. 사실 저녁식사를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부모님께서 어제 스키야키에 돈을 너무 많이 쓴 것 같다고 간단하게 해결하자고 하셨고, 동생네가 숙소 바로 근처에 있는 한큐 백화점 푸드코트를 돌며 도시락과 간식 이것저것 들을 잔뜩 사들고 왔다고 한다. (동생은 길 찾는게 어려워서 고생했다고 함 ㅋㅋ) 꽤 간단한 식사였지만 일본 도시락과 식품퀄리티에 따봉을 외쳤던 한 끼였다. 아, 그리고 돈키호테 도톤보리 점에서 구매한 한국산 소주와 함께 ^^
아 그리고 .. 오늘 종일 걷는 동안 어머니가 걷는 폼이 좀 이상하셔서 의아했는데, 신발에 좀 문제가 있었고, 오늘 내내 통증이 있는 걸 참으면서 걸어다니신 걸 뒤늦게 알게되었다. 고맙게도 동생과 매제가 이 부분을 잘 캐치해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신발가게를 들러서 편한 신발을 사 드렸는데, 내가 진즉에 인지하고 조치를 했어야 하는데,,, 라는 후회가 몰려왔다. 어련히 잘 걸으시니까 괜찮으시겠지 싶었던 게 아니라는 걸 늦게 알게되니, 너무 내 욕심만 부려 많은(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려고 했던 던 아닐까... 생각하게 된 하루.
아까 사전답사를 다녀온 우리와는 달리 부모님과 동생네는 도톤보리의 사람 지옥을 처음 경험하셨는데, 오자마다 있던 기운은 다빨리고 또다시 걷기 지옥 시작. 그래도 아까 사전답사를 하며 리버크루즈 대기장소까지 가는 길은 제대로 숙지해뒀던 터라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가 예약한 시간은 19:30이라는 아주아주 황금시간대여서 그런지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리버크루즈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앞쪽 방향으로 한참을 전진했다. 당연한 거지만 리버크루즈의 가이드는 메인 설명들은 모두 일본어로 설명하고 아주 기본적인 내용들(이건 ~~입니다. 사진 찍어주세요) 정도만 영어를 사용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내용들이 이해가 되는건 왜인지...?
낮의 땡볕 오사카와는 달리, 크루즈의 속도가 붙으면서 꽤 추웠는데, 그래도 모두가 마지막 일정을 위해 꿋꿋하게 싫은티 피곤한티 안내면서 마지막 밤을 즐겼다. 안 피곤하신 거 맞죠 어무니 아부지????? 웃으세요 스마일~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 영상도 하나 남겨봤다. 글리코상 간판만 지나도 조금은 한적해지는 도톤보리. 강남 한복판에서 벗어난 기분이었다.
리버크루즈 투어를 마치고 도톤보리에 잠깐 들러 한국에 돌아갈 때 사람들에게 선물할 주전부리 등을 쇼핑한 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 출발 전에 안그래도 사람들 덕분에(?) 온몸의 기가 다 빨린 기분이었는데, 사람들이 왜 더 늘어난 것 같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아버지랑 어머니는 사람들이 많은 환경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으시는 분들인데, 그제서야 여행지 선택에 착오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무튼 하루종일 걷고 쉬고를 반복했던 오늘의 공식 일정은 여기서 종료.
오늘의 아쉬움은 우리의 체력에서 왔다. 숙소에 돌아왔을 때 아직 더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다는 체력의 확신이 있었고, 이여사와 함께 다시 밖으로 나와 주변의 주류 샵들을 찾아 배회하다가 결국 아무 소득 없이 숙소로 복귀. 원래 이여사와 나의 여행은 항상 대단한일정(하루 약 3만보)을 소화하고 숙소에 들어와 음주엔딩으로 끝나는 것이었는데, 오늘은 음주엔딩할 힘도 없이 침대에서 그대로 곯아 떨어졌다. 내일 귀국까지 무사히 하면 우리 가족 해외여행 미션은 무사히 마무리 되겠지.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