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에는 늘 부모님의 시간을 우리가 따라가는 것 같았다. 부모님은 늘 항상 옆에 계셨고, 우리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고, 행복한 감정을 공유했다. 그리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소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러나 부모님과의 시간은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이런 사실을 우리 스스로 알게 될 때 즈음이면, 부모님의 시간이 우리의 시간보다 너무 빨라서 시간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느낌까지 받곤 한다. 마치 산을 올라가는 사람과 정상을 찍고 내려가는 사람처럼 말이다.
이여사의 첫 가족 해외여행은 태국여행이었다. 해외여행은 남일같이 여기던 이가네 남자들(장인어른/형님)과 다르게 어디든 떠나보고 싶었던 장모님(이하 어머님으로 호칭)께서 행동을 개시하면서 이여사가 동남아 패키지를 알아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가족끼리의 첫 해외여행인지라 자유여행은 엄두가 나지 않아 적당한 비용과 거리를 고려한 상품을 찾다보니 마침 6일짜리 태국 여행 상품이 있어 냉큼 예약했다고 한다. 당시에 수하물 규정을 잘 숙지 하지 못했어서 손에 들고 있던 콜라를 대량 폐기했던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고.. ㅎㅎ
지금에와서 이여사가 말하기를 '여행'이라는 것 자체에 좀 더 익숙했다면 자유여행을 선택해서 더 유연하고 입맛에 맛는 여행을 했을텐데 ..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고 했다.
이런 아쉬움의 맥락으로 이번 싱가포르 가족여행이 성사되었다. 이여사가 말하기를 이 여행으로인해 서로가 더 가까워지는 시간이 될거라 생각하니 기대가 되기도 하고, 나와 여행하면서 느꼈던 나의 장점과 멋진 모습들을 부모님도 알아봐 주실 수 있을까? 하는 걱정아닌 걱정도 있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내가 새로운 가족 구성원으로 들어온 이후 이렇게 오랜시간 넷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반면에 나는 조금 자신이 있었다! 싱가포르는 내가 이전에 배낭여행을 하며 가 본 적이 있는 나라이기도 하고, 짧은 일정으로 훌륭한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알짜배기 나라이기도 했다. 이전에 우리 부모님과의 오사카 여행에서 아쉬운 점들이 꽤 많았었는데(부모님의 체력을 고려하지 못한 동선 등), 그런 경험들을 배움삼아 아버님, 어머님을 위한 효율적인 동선, 그리고 최적의 여행 컨디션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때문에 숙소나 음식, 그리고 날씨를 고려해서 최적의 계획을 세우는데에 집중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싱가포르는 그런 여행을 위한 최적의 나라임에 틀림이 없었고.
드디어 여행의 첫 날 오전. 비행기는 오전 이른시간이었다. 면세점은 고사하고 공항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임무였다. 비행기를 놓쳐본 상실감을 갖고 있는 우리 부부는 별다른 일이 없으면 최소 3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그래도 참 다행인 것은 처가가 공세권(?)이라는 것. 공항철도 덕분에 다행히 쌀쌀한 새벽 공기는 피할 수 있었다.
그래도 가기전에 한국음식 안먹으면 섭하다. 제육볶음 반상, 비빔밥, 육개장을 시켜 아주 야무지게 한국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짧은 일정이라 괜찮겠지라며 방심하면 안된다. 한국 음식이 이틀에 한 번 씩 생각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긴장하신 것인지 새로운 곳으로 여행가는 것이 설레는 것인지 잘 모르겠는 아버님과 어머님. 오후 일찍 출발하는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 마냥 감사했다. 애초에 일정을 길게 잡고, 오전이 아닌 오후 느즈막이 출발했으면 좋았을 뻔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피곤함 vs. 설렘의 마음속 결투에서 설렘이 더 우세하고 있는 듯 했다. (짐은 무겁지만 마음은 가벼운 ㅎㅎ)
우리가 선택한 항공사는 싱가폴항공. 2023년 기준으로 전세계 항공사 순위에서 1등을 차지한 항공사인데, 대한항공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약간은 생소한? 항공사일 듯 하다. 싱가포르라는 나라 자체가 홍콩의 뒤를 잇는 아시아의 금융허브를 지향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국제선 환승객을 중시하는 노선을 많이 취항하고 있다. Top1의 항공사답게 서비스는 물론이고 뛰어난 미식을 기반으로 한 기내식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물론 아버님 어머님께 가장 익숙하고 잘 알려진 대한항공으로 했으면 좋았겠지만, 싱가폴 항공이 세계 탑 랭크 1위라는 것을 강조 또 강조하면서 정말정말 좋은 비행기 타시는 거라고 열띤 자랑(?)을 했다는... ㅎㅎ (사실 대한항공이 많이 비쌌다...)
3/3/3배치의 기내 중간 즈음에 자리를 지정했고, 두 명 씩 앞뒤로 앉았다. 6시간 이상 걸리는 장시간 비행기를 타게 되면 화장실을 가거나 몸을 일으켜 스트레칭 하는 게 가끔 필요한데, 창가를 고려해서 너무 안쪽으로 앉으면 옆에 있는 사람에 따라서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곧이어 시작된 기내서비스. 점심시간을 끼고 가는 비행이라 점식식사가 준비되었다. 양식과 한식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고, 싱가포르 항공만의 특별한 주류인 싱가포르 슬링이 서비스 되었다(따로 요청드려야 함). 진 베이스의 칵테일인데, 여성들의 음주가 금지되어 있던 싱가폴에서 몰래 음주할 수 있도록 음료처럼 고안된 색상이라고 한다... ㅎㅎ 진한 핑크의 색깔이 정말 특이하고 영롱해서, 눈으로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도수가 높은 술로 첫 셋업을 하고 와인과 맥주를 연달아 마시니 술이 금방 올라왔는데, 이 때문인지 몸이 눅눅해지고 근육통이 와서 너무 힘들었다는 ^^; 젊은 사람도 장시간 비행을 하면 힘든데, 부모님은 오죽하셨을까 싶었다. 마음만큼은 언제나 비즈니스 항공으로 끊어드리고 싶은데 ㅠㅠ
스낵 뭐주지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읭? 붕어싸만코를 준다고? 하면서 정말정말 감동받았던 우리. 이러니까 세계 랭킹 1위를 하는거지.. ㅎㅎ
고생스러운 비행을 마치고 도착한 싱가포르의 창이공항. 역시나 세계 최고의 공항답게 말끔하게 정리된 공항이 인상깊었다. 이여사와 어머님, 그리고 나는 수하물도 잘 찾아서 자동입국심사를 하고 먼저 나왔는데, 아버님 인천공항에서처럼 지문인식이 잘 안되어 근처에 있던 경찰에게 붙잡히셨다(?). 사람이 직접 진행하는 매뉴얼 입국심사로 안내받았고, 다행히 큰 이슈는 없었다 ^^;
도착한 후에 알찌게 유심도 바꿔 끼웠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데이터 이용뿐만 아니라 전화까지 가능한 서비스로 SIM을 구매했다.
창이공항에서 도심으로 오는 방법은 간단했다. 도착하기 전 그랩(Grab)이라는 모빌리티 어플을 다운받아서 목적지를 입력하고, 호출버튼만 누르면 되는, 한국으로 따지만 카카오택시와 비슷한 플랫폼을 이용했다. 아무래도 외국에서 버스나 지하철이 아닌 다른 운송서비스를 이용하면 호갱을 당하기 마련인데, 목적지만 입력하면 정찰제로 이용할 수 있어 정말 편리했다. 워낙에 나라 자체가 크지 않다보니, 공항에서 호텔까지 20분 정도밖에 안 걸리는 것도 참 좋았다.
마리나베이를 가운데 두고 수많은 5성급 호텔들이 자리하고 있고, 그 중에는 우리나라의 쌍용건설이 시공한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이 있다. 세 개의 객실 건물들 위에 거대한 배 모양의 수영장이 얹혀있는 특이한 형태의 호텔인데, 싱가포르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곧바로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일종의 '상징'이 되어버린 호텔이다.
물론 상징성 있는 곳에서 숙박했다면 참 좋았겠지만, 오히려 이곳을 눈으로 담는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예약한 우리의 호텔. 아코르 그룹 산하의 5성급 스위소텔 더 스탬포드 호텔이었다. 나름 이 근방에서 가장 잘 알려진 호텔이고, 그 어떤 호텔들과 비교해도 전망이 괜찮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었다.
무인체크인을 마친 우리는 29층의 방으로 안내받았다. 우리가 기대하는 전망이 나오려면 최대한 높은층에 배정을 받는 게 Best겠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높지는 않아서 살짝 아쉬웠다. 체크인을 하고 방 구경부터 시작~
호텔 방 자체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대로 모던한 형식에 깔끔하게 정리된 형태의 방이었고, 중요한 것은 전망이었다. 창문을 열면 베란다 형태의 테라스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두리안을 닮은 에스플러네이드(실제로는 잠자리 눈을 모티브로 한 건축물이라고 함)가 바로 눈앞에 위치해 있고, 그 너머 멀리 대각선 방향에는 고대하던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이 쫙~ 펼쳐져 있었다. 낮은 각도 때문에 베이가 온전히 보이지 않는게 좀 아쉬웠지만, 싱가포르의 전체가 보이는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아 마치 성공했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ㅎㅎ
첫 일정을 위해 출발~ 어머님이 유난히 신기해하시던 잠자리 눈 모양의 에스플러네이드를 지나 머라이언공원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싱가포르는 10월부터 3월까지 우기에 해당하는데, 그 때문인지 공기가 꽤 무거웠다. 조금만 걸어도 쉽게 지칠 수 있는 날씨라 도보로 이동하는 것을 최소로 하려했는데(지난 오사카 여행에서의 학습), 왜이렇게 내가 계획한 여행은 걷는게 많은지... 머라이언 공원까지 오는것만해도 거의 30여 분을 걸었다. 보람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절망적이게도 머라이언상이 12월까지 보수공사가 잡혀있어 물 뿜는 모습을 구경하지 못했다... ㅠㅠ
아쉽지만 근처에서 소심하게 물을 뿜어내고 있는 꼬마 머라이언상으로 대리만족해보는 우리가족. 그래도 대충 이렇게 생겼구나~ 하고 좋게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다음에 왔을 때에는 꼭 우리를 반겨줘...
아주 조금을 더 걷다보니 보수공사중인 머라이언상 옆으로 이렇게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이 한눈에 보이는 난간이 보였다. 잠깐이지만 바닷가의 바람을 맞으며 여러 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정말 많이 찍었는데, 바람이 하도 많이 불어서 머리가 정리된 사진을 찾기가 어려웠다. 특히나 어머님 머리가 왕밤송이같이 나온 사진이 많아서 고르기가 꽤 힘들었다는.. ^^;
다시 걷기 시작. 도시의 드높은 건물들과는 약간 대비되는 낮은 건물들 사이로 잠시 걸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이동이 정말 많았던 탓에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저녁식사 이후 리버크루즈 정도만 즐겨보기로 했다. 저녁노을이 살포시 내려앉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던 곳. 개인적으로 아버님 어머님 사진 중에 이 사진이 제일 잘 나왔던 것 같다.
해가 지고나서 어두울 때 리버크루즈를 탈 예정이었는데, 그럴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미리 조사해 둔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는데, 그곳은 바로 송파 바쿠테(Bak kut teh). 동네 국밥집같은 외관에 바깥에 아무렇게나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맛도 고만고만하려나 속단할 수 있으나, 천부당 만부당한 말씀. 미쉐린 가이드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훌륭한 맛을 내는 식당에 부여하는 등급을 빕그루망(Bib Gourmand)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6년 연속 선정된 곳이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식당 안의 자리는 모두 차 있어서 바깥에 안내를 받았고, 선풍기 바람이 닿는 곳에 앉게 되었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점원이 와서 주문을 받는 형식이 아니라 QR코드로 주문을 하는 형식이었다. 바쿠테가 생각보다 양이 적다고 해서 1인 1바쿠테 + 공기밥은 기본으로 주문하고, 여기에 동파육같이 생긴 삼겹살 조림과 청경채 무침을 주문했다.
역시 가장 먼저 서빙되어 나온 음식은 바쿠테였다. 바쿠테는 쉽게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갈비탕과 비슷한 음식인데, 각종 허브와 후추로 맛을 낸 아주 간단한 음식이다. 음식의 비쥬얼만 보면 조금 심심해보일 수 있었으나, 숟가락으로 한 입 떠먹어보고는 더운 날씨임에도 '어우 시원해~'라는 말이 절로나왔다. 갈비탕과 비슷한 듯 하면서도 감칠맛이 좋아서 입안에 계속해서 맴도는 특이한 향이 아주 좋았다. 같이 서빙되어 나온 붉은고추에 간장을 섞으면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는 아주 훌륭한 소스가 만들어지는데, 갈빗살을 발라내어 찍어먹으니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더욱 더 매력적이었던 것은 국물은 리필을 계속 해준다는 것... 이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두번째로 서빙된 음식은 치커우러우(삼겹살 조림). 돼지고기 삼겹살을 간장에 조려낸 동파육 형태의 음식이라고 보면 된다. 간장으로 베이스를 한 덕분인지 단짠의 조화가 괜찮았고 정말 불호가 없는 아주 훌륭한 사이드 음식이었다. 여기에 청경채 무침은 환상적.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곧장 도착한 클락키. 저녁놀이 더 짙어지고 조명이 하나 둘 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은 싱가포르의 환상적인 조명으로 가득찬 마천루를 감상하기엔 부족했다. 클락키를 돌아다니며 얼른 시간이 우리의 편이 되어주기를 바랄 뿐. 리버크루즈를 타기까지 한 시간 정도를 더 기다렸던 것 같다.
드디어 출발. 아마도 내 기억이 맞다면 19:30 출발로 티켓팅을 했었는데, 이때도 어두워지지 않았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근데 다행히 모두가 부러워하는 시간대에 잘 맞춰서 크루즈에 입장 완료 ㅎㅎ
리버크루즈는 클락키를 출발해서 싱가포르 강을 타고 베이까지 도달한 후 마리나베이를 한바퀴 돌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40여분 정도로 싱가포르의 여행의 핵심인 야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코스였다.
이여사가 처음 나를 데리고 아버님 어머님께 소개를 시켜드릴 때 어머님이 가장 좋아하셨던 게 키가 큰거라고 하셨는데, 역시나 키 큰 건물을 보고 좋아라 하셨던 어머님. 사실 크루즈투어에서 작은 건물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긴 하다.
이런 장관은 눈으로만 담기 아까우니 쉴새없이 카메라를 누르시는 어머님. 크루즈의 속도가 꽤나 빨라서 춥지 않을까 싶었는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사진작가로서의 열정을 불태우고 계신듯 했다.
오늘 리버크루즈의 하이라이트였던 이 곳. 마리나베이로 들어서서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은 당연히! 싱가포르의 상징이기도 한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 그 어떤곳에서도 볼 수 없는 아주 발칙한 디자인은 이 곳을 찾은 여행자로 하여금 신선함을 제공했다. 왼쪽의 특이한 모양의 건물은 아트사이언스 뮤지엄인데, 요놈도 한 몫 했던 듯?
층고는 대단히 낮지만 마리나베이의 무게감을 담당하고 있는 플러튼 호텔도 보였다. 플러튼 호텔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로서 높은 빌딩숲 사이의 수많은 건물들 사이에서 묵묵하게 형님 역할을 하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싱가포르를 다시 찾게 된다면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보다 먼저 묵어보고 싶은 호텔이다.
이제 전환점을 돌아 다시 클락키로 돌아가는 길. 조금 더 먼 곳에서 싱가포르의 웅장한 마천루를 담아내니 이보다 더 진득하고 멋진 도시가 있을까 싶었다. 잘 정리되고 잘 디자인된 도시를 보고 있으면 누가봐도 이곳은 괜찮은 나라구나, 잘 사는나라구나 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이 정도는 되어야 도시 자체가 나라가 되는건가?
야경사진을 찍으면 가장 힘든 것중에 하나가 야경과 인물을 같이 담아내는 것. 이여사와 남미에 놀러갔을 때 스타라이트라는 한밤 투어를 간 적이 있는데, 가이드가 사진을 잘나오게 하는 방법은 30초동안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 하면서 매번 Don't move, 30seconds라고 외치곤 했었다. 오늘 이곳에서 야경인물사진을 찍으려면 그 주문이 필요했었는데, 선상에서는 거의 불가능한지라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포커스는 어쩔수가 없었다. 빛 번짐과 흔들림은 애교다. 나름 우리가 이 곳에 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름다운 사진 뿐인데 말이다. 좋은 사진을 남기려면 나중에 다시 와야 한다는 시그널을 주는걸까.
짧지만 즐거웠던 크루즈 투어를 마치고 나니 더욱더 짙어진 어둠. 이제서야 흥을 돋구는 클락키의 음악을 뒤로하고 얼른 숙소로... ㅎㅎ숙소까지 걸어갈 체력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고, 버스를 타고 숙소로 복귀하기로 했다.
이대로 하루를 마무리하기 아쉬워 한 방에 모인 우리 가족. 모이기 전에 숙소와 바로 연결되어 있던 지하의 편의점에서 싱가포르의 맥주인 Tiger와 스낵을 몇 개 구매해왔다. 첫날부터 열심히 걸어다닌 서로를 다독이며 싱가포르의 첫인상은 어땠는지 후기를 나누었다. 사실 이여사와 나는 하루 온종일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녔는지, 숙소 복귀 후 긴장이 풀려 피로감이 몰려왔다. 여기에 맥주를 더했으니... 잠이 쏟아지기 시작해서 길게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다. (혹시 어떤얘기들을 나누셨나요?)
방에 돌아와 금방이라도 잠들것 같았으나, 오늘의 피곤함을 물리치고서라도 봐야했던 호텔의 야경. 한 번 더 눈에 담고 이렇게 싱가포르에서의 첫 날을 마무리해본다. 내일이 더 즐거울 것이라는 상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