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치 어딘가에서 불이 난 것처럼 구름이 폭발적으로 솟아 있었다. 날씨가 그 날 기분의 80%를 결정한다고 믿는 편인데, 오늘의 일정이 아주 수월할 거라는 예상쯤은 쉽게 할 수 있었다. 좋아, 가보자.
어제와는 조금 다른 아침식사를 위해 Toast box 근처에 위치한 GASTRONOMIA를 선택했다.
아침에 갓 구워낸 빵과 뜨끈한 블랙커피, 그리고 따뜻한 음식으로 속을 데운 우리 가족. 조금은 익숙한 맛의 음식들로 하루를 시작해봤다.
원래 오전에는 포트캐닝이라는 곳에서 멋진 사진을 찍고 리틀인디아 쪽으로 이동하여 쇼핑을 할 예정이었으나, 아쉽게도 포트캐닝도 공사중이라는 공지가 있었다...(ㅠㅠ) 그래서 아쉬워할 틈도 없이 곧장 리틀인디아 쪽으로 이동하는 우리 가족. 오늘도 에너지 충전 완전히 마친 사위가 앞장을 서 봅니다.
늘상 타보신 버스이지만 왠지 모르게 이국적이었던 저 장면.
리틀인디아에 다다를 쯤이면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주변의 분위기 때문에 이곳이 리틀인디아 구역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다채로운 지구 중 하나답게 굉장히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고풍스러운 사원과 향신료 냄새, 그리고 실크로 만든 옷들을 판매하는 가판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이곳에서 꽤나 유명한 '스리비라마칼리암만 사원'이 있었는데,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해서 따로 들어가보지는 않았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핫한 쇼핑센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곳, 무스타파. 입구는 정말 '돗대기 시장'을 방불케 했는데, 그도 그럴것이 보안관들이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가방에 케이블 타이를 묶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람이 워낙 많다보니 CCTV가 있어도 구멍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충분히 납득했다... 뭐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본다는 점은 좀 찝찝하긴 했지만, 싱가포르에 왔으니 이곳의 법을 따르는 걸로 ^^ (괜히 반항했다가 잡혀가서 매질을 당할지도 모르니까...)
마트는 생각보다 정말정말 거대했다. '머물고 싶은 공간'에 초점을 맞추어 설계한 근래의 건물들과는 달리, '오직 많은 물건을 많이 판매한다'에 초점을 맞춘 공간이었다. 정말 사람들로 가득차서 지나갈 공간 없이 빽빽했고, 물건들은 정말 어~찌나 많던지 눈이 쉴 틈이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지인들에게 선물할 다양한 초콜렛들과 칠리크랩 맛을 내는 라면 등을 구입했다. 그리고 계산대로 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딜마(Dilmah)티백 시리즈를 발견해서 쓸어담았다는 후문...(뉴질랜드에서 아주 맛있게 먹었던 티백들)
무사히 쇼핑을 마친 우리 가족은 어느덧 가까워진 점심 시간을 기꺼워하며 미리 찾아둔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딤섬은 먹어야지? 하며 찾은 딘타이펑. 딘타이펑은 대만에서 시작된 딤섬 체인인데, 그래도 중화권의 영향을 받은 나라라서 그런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고, 찾는 사람 또한 많았다. 식당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만석이었어서 아주 잠깐을 기다렸고, 넓은 매장인데 회전율 또한 높다보니 금방 자리를 안내받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샤오롱바오. 다진 고기를 밀가루로 만든 피에 감싸서 찜통에 쪄낸 딤섬이다. 다진 고기와 함께 육수가 들어가는 것이 Kick인데, 젤라틴 형태로 만든 육수 덩어리를 피에 넣고 쪄낸다고 한다. 씹는 순간 팡!하고 터져나오는 육수가 정말 매력적이었다. 원래 제대로 먹으려면 숟가락에 샤오롱바오를 올린 후 젓가락으로 만두피를 찢어서 육수를 빨아먹은 후 나머지를 먹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만두처럼 한 입에 털어넣는 방식에 익숙한 우리가족은 한입에 와앙~하고 넣었다가 뜨거운 육수에 된통 당해버렸다.
같이 곁들인 갈비국수와 파이구 볶음밥(다진 돼지고기를 얹은 계란볶음밥)을 같이 주문했는데, 촉촉한 샤오롱바오와 아주 잘 어울렸다.
점심식사를 마친 우리 가족은 잠시 휴식을 위해 숙소로 복귀했다. 복귀하는 길에 주전부리를 사갈까해서 들렀던 곳은 호텔 지하의 푸드코트에 있던 야쿤 카야 토스트. 이곳에서 토스트를 잔뜩 포장해서 들어갔고, 아버님 어머님께도 갖다드렸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오늘 이 카야토스트를 안먹었으면 지쳐서 쓰러질 뻔 했다는...
조금의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둘 만으 분량을 뽑아내느라 열심이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래플스 호텔 내 위치한 '싱가포르 호텔'에서의 커피 한 잔이었다. 이름만 보면은 '대한민국 커피'같은 단순한 느낌이었는데, 입구부터 풍기는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간단하게 커피 한 잔 딱~ 하고 아주 잠깐의 여유 즐겨보기. 여기도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이맘때쯤 카페인 수혈을 하지 않았다면 쓰러졌을 수도 ....
싱그러운 초록빛이 우리를 반겼다. 아무리봐도 질리지 않는 초록색들은 오늘의 모든 피로를 잊게 했다.
이제 본격적인 오후의 일정을 시작. 오후 계획은 가든즈 바이더베이와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의 전망대에서 야경을 보는 간단한 일정이었다. 숙소 건너편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헬릭스 브릿지에 내려 호텔쪽으로 건너가는 경로였다. 8시에 있을 슈퍼트리쇼를 생각한다면 4시 즈음에 가든즈 바이더베이에 도착하면 시간이 딱 맞을 것 같았다. 근데 문제는 헬릭스 브릿지에서 가든즈 바이더베이까지 정~말 먼 거리였다는 것. 가든즈 바이더베이가 호텔 바로 뒤에 위치해 있어 금방 가겠구나~ 싶었는데, 버스 정류장에서 호텔과 가까워지는 것만해도 아주 한참이 걸렸다.
평소에 흔하게 건너던 다리는 아닌지라 다리가 어쩜 이렇게 생겼니~ 호텔이 뭐 이리 크니~ 저기 저 신기하게 생긴 꽃모양 건물은 뭐니~ 하며 재미있게 사진을 찍으며 건너갔던 우리 가족.
호텔에 진입하니 펼쳐진 대형 쇼핑몰.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의 하층부는 다양한 샵들이 밀집해 있는 거대한 쇼핑몰인데, 그냥 지나가기 아쉬울 정도로 화려한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일단은 일정이 바빠 후딱 지나가서 조금은 아쉬웠던 곳...
나도 초행길이다보니 길찾기를 신경쓰느라 한참을 앞서가곤 했는데, 가족 내에서 길눈을 담당하고 있어 한 번에 못찾아가면 어쩌지하는 타당한 두려움은 보너스.
호텔 중간층을 가로질러 뒤편으로 나가는 문을 지나면, 여태 봐오던 마리나베이는 온데간데 없고, 초록의 세상이 시작된다.
거대한 다리를 건너게되면 곧장 가든즈 바이더베이와 연결이 되는데, 이 곳의 상징과도 같은 슈퍼트리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다리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쏴아아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데, 그제서야 우리가 정원에 왔음을 알게 되었다.
가든즈 바이더베이에서 가장 처음 마주한 플라워돔. 싱가포르는 원체 사시사철 더운 곳이라 이렇게 굳이 돔으로 감싸서 관리하나 싶겠지마는, 오히려 이곳에 들어오니 시원한 느낌이 들 정도로 아주 적당한 온도에서 관리가 되고 있었다. 해봤자 식물원인데 뭐 있겠어~ 하다가도 이따금씩 보였던 아주 예쁘장한 꽃들을 보면 그런 잡생각들은 잊혀져 버렸다.
이게 자연의 순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꽃 사진에는 여자분들이 어울리는건 당연한건가? 싶었다. (아버님께는 죄송...) 중간중간 이여사가 꽃과 함께 찍어준 내 사진이 있긴 한데, 다람쥐 잡으러 다니는 이상한 남자처럼 나왔다는...
I know I'm pretty but, Please do not touch me. (나도 내가 예쁜걸 아니까 건들지마)
이 표지판을 가리키며 사진을 찍는데,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웃으며 쳐다봤다는... ㅎㅎ;;
바로 이어지는 클라우드 포레스트는 거대한 돔 안에서 관리되고 있는 거대폭포 정원이다. 문을 통해 들어가니 압도적인 폭포소리가 우리 가족을 반겼다. 폭포가 어찌나 높은곳에서부터 떨어지는지, 가까이가니 사방에서 물방울이 튀고 난리도 아니었다.
폭포에서 수많은 물줄기가 떨어지고 있다보니, 걷는 내내 바닥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고, 마치 숲속을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렇게 식물이 많이 배치되어 있는 것도 놀라운데, 모두 생식물이라는 점도 정적인 분위기와 자연스러운 느낌을 연출하는 데 한몫했다. 물론 관리도 잘 되어 있어 정말 실제의 숲 속 같은 느낌을 더했던 것 같다.
솔직히 이런 분위기에 이런 사진이면 정글투어라고 해도 믿을 듯...? ㅎㅎㅎ (feat. 열일하는 사위)
당시에 가든즈 바이더베이 x 아바타 콜라보를 진행하고 있었어서 중간중간 영화 아바타에 나왔던 모형들이 배치가 되어 있었는데, 조금을 더 걸어들어가니 재미있는 이벤트가 있었다. 얼굴을 스캔하면 모종의 분석(?)을 통해 아바타 형태로 변환시켜주는 시뮬레이션이었는데, 오묘하게 닮은 아바타의 모습에 가족들 모두가 깔깔댔던 기억이 난다.
자연이 주는 신비한 힘 덕분에 힘든줄도 모르고 돌아다니며 이곳 저곳에서 사진을 남긴 우리가족.
이곳이 숲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걸 아주 잠깐 깨닫게 해 준 둥근 돔. (너무 T같은 모먼트인가...)
내려가는 길에는 아바타 콜라보의 연장선으로 이렇게 아바타의 숲을 연상케 하는 곳이 있었다. 이렇게 생명의 나무와 연결을 시도해보는 이여사. 들어가서 보이는 공간이 엄청 거대했는데, 여기서 한참을 뛰놀았다.
이제 모든 여정을 마치고 나가는 길. 어둑어둑해져오는 하늘을 바라보니 이곳에 꽤 있었구나 싶었다. (무려 4시간..)
저녁이 가까워져가고 8시가 될 즈음 슈퍼트리쇼를 보러 가려 했으나(돗자리도 가져왔는걸...) 오후 4시에 이곳에 도착한 이후 무려 4시간 동안 걸어서 돌아다닌 탓에 체력 이슈가 발생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왜 이렇게 빡센 일정을 계획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과감하게 슈퍼트리쇼를 패스하고 곧장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로 이동했다. 가든즈 바이더베이의 입구에서 호텔쪽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카트가 있어 쉽게 이동했다 (역시 돈이 최고)
생각보다 속도가 빨랐던 카트. 아까도 이렇게 카트타고 왔어야 하는데... ㅎㅎ;;
도착하고 한참을 또 걸어서 호텔의 로비를 관통해야 했다. 다행히 우리가 예약한 시간에는 도착하여 전망대로 올라갈 수 있었다. 당시에 사람들이 하도 많았어서 1층에서 대기를 한 이후에 올라가야 했다.
귀가 살짝 불편해질 때 즈음 도착한 상층부 전망대. 고층이라 그런지 바람이 살랑이고 있었고, 주말을 기해 이곳에 놀러온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중심부와는 가벽으로 분리가 되어 있어 중앙에 위치한 인피니티 풀은 볼 수도 없었던 것은 조금 아쉬웠다. (오직 투숙객만 이용할 수 있음) 그래도 이곳은 뭐니뭐니해도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싱가포르의 마천루를 감상하는 것이 핵심인데, 그냥 눈에 보이는 것 하나만으로도 돈 값은 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전 포스팅에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야경 인물사진. 사진이 잘 나오려면 조명이 끝내주게 들어가야 하는데, 마치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것처럼 카메라 뒤쪽에서 플래시를 켜서 조명을 입혀봤다. 멋진 야경 덕분에 기분이 아주 좋아 보이시는 아버님과 어머님. 10년 전에 이곳에 혼자 왔던 탓에 내 사진 하나 남기는 것도 어려웠는데, 이렇게 같이 사진 찍을 가족들이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든든했다.
정~말 귀한 아주 잘 나온 야경인물사진. 힘들고 피곤하셨을텐데 내색 한 번 안하시고 오히려 웃어주셨던 어머님.
그리고 스스로 조명을 켜서 셀카를 찍어보는 나. (결과물은 마음에 안들어서 바로 지워버린듯) 한참동안 사진을 찍고 전망대 데크를 돌아다니다 지쳐서 쓰러지기 직전의 나. 이 때 즈음에는 거의 3만보를 달성했는데, 아버님 어머님은 오죽 피곤하실까 싶었다... ㅠㅠ
전망대 클로징 시간에 가까워질 때 쯤 와서 그런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기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그 와중에 대기장소에서 내려다 보였던 아름다운 슈퍼트리의 야경뷰. 마치 미래 시대의 한 공간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니 어느덧 9시를 훌쩍 넘긴 시간. 여행을 위한 에너지는 고갈되어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갈 힘은 남아있지 않았고, 호텔 바로 앞에 있던 택시정류장에서 Grab을 불러 호텔까지 편하게 이동했다. 배고픔이 입천장을 뚫고 나올때 즈음 호텔에 도착했는데, 주변에 마땅한 식당은 모두 문을 닫은 후였다. 앞뒤 생각 안하고 이런 타이트한 계획을 잡은 결과... ㅠㅠ
우리에겐 최후의 보루였던 룸서비스를 이용할 순간이 왔다. 갓 요리된 따뜻한 음식을 내 방까지 세팅해주는 서비스를 아버님 어머님도 경험해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선택. 우리는 토마토 파스타와 햄버거 셋트를 주문했고, 아버님 어머님은 밥이 포함된 식사류를 주문했다. 아니 근데, 다른 음식들보다도 케찹이 더 맛있는건 뭐지...? 웬만하면 감자튀김은 케찹 안찍어먹고 소금 간에만 의지하는 편인데, 케찹을 이렇게 퍼먹기는 처음이었다. 찾아보니 비렌버그(Beerenberg)라는 호주 브랜드의 케찹이었는데, 오죽 맛있었으면 사진까지 찍어왔다. 워렌버핏이 케찹회사에 투자한 이유를 오늘에서야 이해를 했다는 ^^;
싱가포르의 마지막 밤. 길었던 오늘 하루의 끝을 맥주와 함께 산뜻하게 마무리 하며. 10년 전의 아주 가벼운 스스로의 약속을 지킨 나를 자랑스러워 하며 잠들어본다.
2014년 싱가포르 여행기 중
도시의 화려함과 혼자 여행을 하고 있다는 외로움이 맞물려서 집에 있는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부각시켰다. 그래서 나 스스로 다음에 이 곳에 올 때에는 혼자가 아닌 둘, 혹은 더 많은 가족들에게 최고의 밤을 선사할 거라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