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Cashmere를 원한다면?
진짜를 원해서 수소문 끝에 찾아갔다. 어느 특정 지역에서만 살 수 있는 물건에 관심이 많아 네팔에서는 과연 무엇을 사야할까 고민을 했다. 지인으로부터 '캐시미어를 사는 것이 좋다'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런 최상급의 고급원단을 학생인 내가 구입하기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원산지이기 때문에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다는 대답을 들었다. 덕분에 어디를 가던 구입했던 엽서와 함께 내가 챙겨올 수 있었던 유일한 기념품이 이 캐시미어였다. 예전에 피렌체에서는 보욜라(Bojola)가 그랬고, 뉴질랜드에서는 와인이 그랬다. 특산물이나 특별한 기념품을 사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가 다 매한가지겠지마는.
네팔은 캐시미어나 파시미나가 유명하다고 들었다. 정말 유명하고 품질이 좋다. 캐시미어는 한국에서 워낙에 비싼 가격에 팔리는 고급 원단이기도 하고 보온성이나 질감이 뛰어난 것도 모자라 가볍기까지하다. 파시미나는 네팔의 특산품에 대해서 알아보던 중 새롭게 알게된 원단인데, 원단의 보석이라고 불리울만큼 굉장히 유니크한 원단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원단이라 비쌀 수밖에 없고 예전에는 왕족만이 쓰던 최고급 중에 최고급 원단이라고 한다. 캐시미어 보다는 자연스럽게 파시미나에 눈길이 갔다. 한 번 만져보고 촉감이 정말 좋았던 것은 사실이니까.
현지 사람들과 지인에게 물어 물어 찾은 곳은 '마하구띠'라는 곳이다. 현지 사람들도 캐시미어 제품은 흔하게 접할 수 있고 시골의 지인으로부터 직접 얻어 두르는 터라 굳이 진품과 가품의 차이를 두지 않는다고 한다. 때문에 현지 사람들도 이곳을 잘 모르는 곳이라 찾는데 한참이나 걸렸다. 이곳을 헤매면서 근방에 있는 대부분의 샵들을 들러 구경을 하고 가격을 물어보았는데, 타멜에서 파는 제품들보다 질감이 훨씬 좋고 가격도 훨씬 비쌌다(가장 비싼건 1만 루피 내외, 한화로 약 20~30만원 선). 도보쪽으로 튀어나와있는 간판이 없어 근처에 와서도 한참을 헤맸는데, 주변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꼬맹이들과 현지 아저씨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찾았다. 아, 첫날은 일요일이라 안 열었고, 두번째 날에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다고 했던 마하구띠의 제품들이 혹시나 가품이 아닐까 걱정을 했지만 마하구띠 CRAFT에서 직접 운영하는 홈페이지(주소링크)도 있고, 품질 보증으로 내어놓은 보증서도 있어 어느정도 안심할 수 있었다. 주인에게 친구의 소개로 왔다, 어제도 왔었다, 가장 인기가 많은 제품을 알려달라고 말하니 조곤조곤한 영어로 설명을 해준다. 마하구띠는 공정거래에 관한 기구에 가입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고 수입의 일부가 제조업자에게 돌아가는 식의 사업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구미가 당겼던 건 아주 합리적인 가격과 정찰제, 그리고 선택의 폭이 정말 넓었던 여러가지 색들, 종류, 그리고 품질이었다. 캐시미어 100%, 파시미나 100%를 판매하는 것은 물론 70%, 30% 등등 보풀을 우려해 혼방 제품도 살 수 있다. 뭐 캐시미어 Seventy, 파시미나 Thirty라고 말하면 척척 상품을 내어준다.
네팔에서 이정도로 분위기 있는 인테리어를 보기란 정말 힘들다. 나름 분위기도 넘치고 알록달록한 색감을 구경하고 싶다면 찾아도 좋다. 캐시미어와 파시미나로 만들어진 스카프나 숄을 구경하러 왔지만 다양한 식기도구와 약간은 단순해보이는 라이프스타일에 근거한 수공제품에도 눈이 갔다. 어찌보면 촌스러울지도 모르는 색들도 많았지만 정말 친근하게 느껴지는 소박함과 투박함이 오히려 정감이 갔다. 누군가를 위해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말이다. 1층에는 원단을 이용한 제품과 오색의 그릇들, 2층에는 잡화와 가방이 있다. 합리적인 가격에 자꾸만 손이 가는 제품들을 뿌리치기란 참 어려웠다.
쇼핑을 즐기지 않는 편이라 잘 몰랐는데, 왠지 쇼핑을 즐기는 여자들의 마음을 십 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직접 사서 내가 하고 다니는 것이 아니어서 내 것을 고를 때의 느낌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줄 선물을 고르면서 느꼈던 그 즐거움은 이상하게 좋았다. 일단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것이 좋았고, 받는 사람이 즐거워할 모습을 상상하니 좋았고, 내가 번 돈으로 여행을 하며 현지 특산품을 직접 사러 왔다는 게 좋았다. 무엇보다도 두 번째 즐거움에서 오는 행복감이란... 내가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내어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비싸지 않더라도, 그리 큰 게 아니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