샨티스투파로 가는 길
포카라 걷기(자전거도!)
벌써 지친건가. 어제까지 부어있던 다리가 가라 앉지 않고 통증이 계속되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하루종일 걸으면서 포카라가 어떤 곳인지 속속들이 파헤치고 싶었는데 좀 걱정이 되었다. 포카라에 대한 편견이 그대로 자리 잡을까 두렵기도 했고 당장 내일부터 트래킹인데 몸을 풀어두지 않으면 다리가 고장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급한대로 혼자서 다리를 주물럭 거리며 마사지를 하고 아침 일찍부터 레몬생강차를 챙겨 마시고 붓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숙소에서 쉬었다. 아, 포카라 첫날 묵었던 숙소는 와이파이가 화가 날 정도로 터지지 않아 무척 답답했는데 그 때문에 초입보다 안쪽에 있는 숙소로 옮겼다. 무심코 찾아서 들어간 숙소였는데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숙소중 하나인 '아보카도'였다. 여긴 한국말을 할 줄 아는 해리가 있는 숙소다.
나는 숙소를 옮기자마자 짐을 풀지도 않고 밖을 나섰는데, 숙소 바로 앞에 있었던 렌탈샵에서 400NRP하는 자전거를 빌려서 무작정 페달을 밟았다. 사실 지도도 챙겨가지 않아서 길을 잃지나 않을까 걱정했지만 올드한 느낌이 나는 타운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느낌이 꽤 괜찮았고 이대로라면 어딜 가든지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젯밤 되지 않는 와이파이를 투덜거리며 포카라에는 갈만한 곳이 어디가 있는지를 찾다가 '피스 파고다(샨티 스투파)'와 '데비스 폴' 정도를 꼽았다.
히말라야를 보며 하늘을 나는 기분은 어떨까
오늘은 날씨가 참 맑다. 인도에서 만난 진희 누님과 놀부부대찌개를 먹다가 안나푸르나 트래킹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포카라에 가면 사랑곶 패러글라이딩을 꼭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상공 몇 천 미터에서 히말라야의 바람을 타고 설산을 감상하는 건 상당히 멋지고 고상한 액티비티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프라하에서 스카이다이빙 후 했던 낙하산 경험이 루즈했던 것 때문에 과감하게 포기. 언제 또 다시 이런 기회가 있겠냐마는...ㅠㅠ
뭘 봐
샨티 스투파(피스 파고다)는 딱히 시간을 투자해서 가보고 싶었다는 곳은 아니었지만 입장료도 없는데다가 내일 있을 트래킹에 대비해서 몸을 데우기 딱 좋은 곳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갔던 나는 자전거를 안전하게 보관할 곳이 필요했는데 샨티스투파의 입구(입구라고 말하기도 좀 그랬지만)에 있는 한 상점에서 물 한잔과 스낵을 사고 자전거를 맡길 수 있었다. 사실 '이 곳에 내 자전거를 맡기겠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는데 나의 고민을 눈치 챈 것인지 상점의 주인인 중년의 남성이 자전거를 맡겨 줄까? 라고 물었던 탓에 냉큼 좋다고 대답했던 까닭이다. 장사꾼은 장사꾼인지 주인은 능청스럽게 '덥고 지칠텐데 물이랑 과자좀 사서 올라가'라고 해서 속으로 어찌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물이랑 과자 샀다... ㅋㅋ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님...
산에 오르는 사진들이 뭐 특별한 것이 있겠냐마는 어휴.. 올라가다보니 저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올라가는 할머니가 보였다. 나는 올라가고 저 할머니는 내려가는 길이었는데, '나마스떼(Namaste)'라고 인사하며 그냥 지나치려는 찰나에 손가락으로 카메라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포토 포토' 이렇게 말하는 거다. 아무 생각 없이 사진을 찍었는데 갑자기 손을 내밀며 돈을 요구하는 상황...(뭐 뻔한 수법이겠지만) 불쌍한 마음에 돈 몇푼이라도 쥐어드리고 싶었지만 멀리서 온 여행객이 위세부리며 돈 많은 거 티내는 것도 아니고 돈을 주면 오히려 그 나라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거절했다. 때문에 사진만 찍은 이기적인 놈이 되어버렸지마는...
안녕, 뚜기
이제는 도시에서, 심지어 시골에 가서도 볼 수 없는 메뚜기가 반가웠다. 너무 많아도 안좋은 놈들이, 이곳에는 적당히 있으니 좋다. 이놈들 중 하나는 내가 반가웠는지 내 옷속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응큼한 놈들.
드디어 도착한 능선
한 50여분을 올라와서야 비로소 산의 능선부분에 닿을 수 있었는데, 다 왔다는 성취감보다는 기분이 좀 언짢았다. 습도가 꽉 차 있는 날씨가 한 몫 해서인지 몸은 땀으로 흥건해져 있었고 체력은 바닥나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지 않으면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정도였다. 이래서 수 천 미터나 되는 안나푸르나를 어떻게 오르나 걱정이 되었다. 희미한 안개 사이로 내비치는 포카라 시내와 페와호수의 모습이 아름답기는 했지만 내일 있을 트래킹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포카라가 내려다 보이는 샨티스투파에서
World peace pagoda라는 별칭의 샨티 스투파는 산 끝자락에 위치한 스투파라는 것 이외에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전범국가인 일본이 평화라는 명칭을 붙여가며 세웠다는 것이 우습긴 했다.다만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페와호수와 레이크 사이드의 전망은 나쁘지 않았고 설산들이 안개와 구름에 가려 뒤쪽에 숨어 있던 탓에 내일이 더 기대되긴 했다. 예전에 퀸즈타운에서도 날씨가 흐려 전망을 내려다보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호수와는 인연이 없는가보다.
밑이 안보이는 폭포...궁금해 미치겠다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발견한 곳인데, 가이드북에서 점찍어 두었던 데비스 폴(Devi's fall)이라는 곳이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라고해서 '대체 뭐야'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걸어다니는 평지에서 땅 속 깊숙한 곳으로 떨어지는 폭포란다. 폭포라서 매력적이라기 보다는 신기하다고 해야 할까. 이 곳을 자세히 구경하려다가 죽은 사람 중의 하나가 Devi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나도 떨어져 죽기는 싫었는지 저만치 떨어져서 사진을 찍느라 좋은 사진이 없는 게 좀 아쉽다. 사실 폭포의 밑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미칠것 같았지만 전례가 있기에 참아야 할 수밖에 ㅠㅠ
숙소로 돌아온 나는 내일의 트래킹이 걱정되어 지도를 뒤적거리고 어떤 루트를 선택해야 하나 고민했다. 나의 가장 큰 강점이었던 튼튼한 다리는 회복되는 기미를 보여 좀 살 것 같았지만 가이드와 포터가 없고 초행길이라는 약점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숙소 주인이었던 해리와 그곳에 묵었던 나이 지긋하신 분들과도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루트를 가야 할 것인지 이야기 했지만 뭐... 걱정 말란다. 시즌도 시즌이거니와 길이 상당히 쉬워서 걱정 안해도 된다고. 말이 쉽지. 4,300m가 어디 동네 뒷산인가 ㅋㅋ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잠이 들려니 도저히 못자겠더라. 사람이라고, 나도 모르게 잠들기 전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