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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커피와 함께
조식을 허겁지겁 먹어본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1층의 호텔 식당으로 터덜터덜 내려오니, 나보다 먼저 아침을 시작한 사람들의 진한 커피 향기가 퍼지고 있었다. 평소같았으면 늘상 아침이면 고통받는(?) 배고픔에 못이겨 접시부터 들고 음식을 둘러보았겠지만, 오늘은 커피부터 시작했다. 아침 커피는 늘 즐겁지만, 여행와서 마시는 한 잔의 커피는 뜨겁다 못해 진하다. 

 

투어 가이드인 타냐와 로만을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았었는데, 그 시간을 온전히 커피 마시는 데 썼던 것 같다. 이전의 여행들처럼 시간이 날 때마다 글을 쓰거나 생각에 잠기거나 책을 읽는 건 아니었다. 말을 아끼고 생각을 아끼고 무언가를 채워넣을 수 있는 빈 공간들을 만들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카자흐스탄으 흔한 아침

내가 여행을 간 것은 가을이 무르익을 때 쯤 이었던 것 같다 (9월 말?). 카자흐스탄은 한국보다 위도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더 쌀쌀하고 황량할까 걱정했으나, 호텔 앞 가을 분위기는 한국못지 않았다. 한국 정도의 단풍은 아니었지만, 잘 정리된 가로수길에 흐트러짐 없이 서 있는 은행나무들이 도로의 쓸쓸한 분위기와 잘 어울려 꽤 근사했다.   

 

 인기척없는 호텔 앞 산책길을 십여 분 걷다가 들어와서, 다소 내키지 않는 와이파이를 붙들어 매고 오늘 갈 곳을 대충 찾아보았다. Aktau Mountain region인데, 워낙에 새로운 환경에 미쳐하는 나라서 사진을 보자마자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새로 만나게 될 가이드인 Tatyana(읽기도 참 어렵다)와 호텔 앞에서 현지시간으로 07:30에 만나기로 했는데, 앗차! 어영부영 하다보니 벌써 7시가 되버렸다.

 

 

카자흐스탄의 첫 숙소였던 레니온파크 호텔 (와이파이 개선좀 ..)

 

약속했던 시간이 다가와서 체크아웃 후 호텔 앞을 서성이고 있으니, 나와 다른 처지의 사람들도 줄지어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커다란 벤츠로고의 벤이 들어오길래, '오 저거 내 건가'라고 하고 생각하다가 실망하기를 두어 번, 약간은 허름해보이는 도요타 봉고차 느낌의 차가 들어오더니, 안에서 살짝 러시아 분위기가 나는 사람이 둘 내렸다. 내가 혼자 서 있어서 그랬는지, 단 번에 나를 알아보고는 손을 내밀었던 타냐.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 하냐고 물었는데, 정확히는 Tatyana(타츠야나)라고 말해주길래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해버렸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는지, 그냥 타냐라고 불러달란다. 땡큐 ㅎㅎ 그 뒤로 운전석에서 내렸던 운전기사는 남편인 Roman(로만)이라고 소개했다. 타냐에 비해 영어는 조금 서툴렀지만, 깊게 패인 눈과 날카롭게 살아있는 눈매가 묵직한 느낌을 주어서 그런지 믿음직 스러웠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행 내내 스피드/안전 운전을 해준 게 너무 고맙기도 했다.

 

 

휴게소에 들러 산 Chips

차를 타고 길게 여행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기도 하고, 가이드를 동반한 여행이 처음이기도 해서 더 설렌 것도 있었다. 이 가이드는 나에게 무엇을 설명해 줄까? 하는 궁금증 하나와, 세계면적 9위를 자랑하는 커다란 나라의 오프로드는 어떨까 하는 궁금증 둘, 생전 듣도 보도 먹어보지도 못한 카자흐스탄 음식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 셋이 나를 방방 뜨게 했던 것 같다. 중간에 쉬는 타임에 휴게소에 들러 타냐가 추천해주는 '쿠르트'라는 간식(?)을 샀는데, 생김새, 촉감, 맛이 너무나 신기해서 충동적으로 구매했던 것 같다. 어딜가나 장사하시는 아주머니의 사람다루는 실력은 나라구별이 없는가보다. 200탱게 분만 사려고 했는데, 더 넣어주면서 300 달라고 했다ㅎㅎ 위 사진은 휴게소에서 사람을 무서워 않던 고양이와 처음 시도해보았던 카자흐스탄 Chips. 맛은 좀 짰다.

 

 

가슴이 뻥 뚫리는 필드 뷰

정말 밑도 끝도없이 넓은 평원을 걸으며 달려보긴 처음이었다(내가 운전하는건 아니지만). 정말로 조금만 더 가면 될 것처럼 보이는 산은 그 끝을 모를만큼 멀리 있었고, 정말로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곳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협곡과 평원이 반복되는 수 시간의 운전이 그토록 평화로울 수 밖에 없었다.

 

 

카자흐스탄의 전통 스낵인 쿠르트

 

입이 심심해서 좀전에 샀던 쿠르트를 꺼내 햄스터처럼 갉아먹었다. 쿠르트(Курут)는 발효시킨 우유로 만들어진 중앙아시아 지역의 대표적인 간식인데, 그 맛은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시큼하다. Roman이 맥주 안주로 쿠르트를 곁들인다고 하는데, 술이 확 깨버릴 것 같은 맛이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맛인가 싶어 적당히 보관하다가 버릴 생각이었는데, 진짜 웃긴건 나중에 계속 생각나는 맛이다 ㅋㅋ

 

 

내 여행을 책임졌던 도요타 봉고

Aktau mountain은 그리 많이 찾지 않는 코스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 여행 중 오는 길이 가장 험난했던 코스인데, 순수한 오프로드와는 달리 도로는 깔려있지만, 다듬어지지 않아 자갈이 엄청나게 많았다. 타냐와 오고가는 농으로 Natural Massage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차만 타면 잠들어버리는 나를 잠은 오지만 정신이 오락가락한 몽환의 세계에 가두는 험난한 길이었다. 무튼, 그 험난한 길을 무려 2시간이나 더 가서야 초입에 들어설 수 있었다.

 

 

여행자에게 의자하나, 햇빛을 가려줄 그늘만 있으면 되옵니다

초입에 들어서면, 식사를 할 수 있는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다. 가이드 코스에 삼시세끼와 숙박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기에, 부담은 없었다. 준비된 점심식사는 Aktau mountain 입구에 들어서기 전에 오늘 숙박하게 될 게스트하우스에서 가져온 식사인데, 살짝 시큼한 소스로 버무려진 샐러드와 소고기가 들어간 볶음밥이 주 메뉴였다. 역시 빵과 홍차는 기본이다. 바람이 살짝 부는 날씨여서 그런지, 보온병에서 갓 꺼내는 따뜻한 홍차가 끝내줬다.

 

 

흡사 상상속에만 있던 화성의 모습 같다

여태 경험해 본 적 없는 역치 이상의 자극은 언제나 날 흥분하게 한다. 그게 비록 본 적 없는 동물이거나, 끝내주는 음식이 아니더라도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조금이라도 다른 특이한 뷰는 나에게 언제나 대단한 경험으로 다가온다.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주변을 둘러보지 않다가, 홍차까지 모두 비우고 나서야 주변을 좀 둘러보았다. 건조한 땅바닥에 군데군데 솟아나 있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와 뒤를 쭉~ 두르고 있는 붉은 산맥이 눈에 들어왔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화성(Mars)이 생각이 나는 곳이었다.

 

 

저 멀리 펼쳐진 다소 건조한 협곡들

 

카자흐스탄에 온 이후로 정말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 중 하나는, 구름의 경계가 다 보일 정도로 땅을 보는 시야가 넓어진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건물때문에 그늘이 진다, 안 진다 정도만 느낄 수 있는 데 반해, 이곳은 구름의 경계가 어디고 구름이 지나가는 것도 볼 수 있어서 신기하다. 타냐가 말하기로는, 멀리서 뭉게진 구름의 무리가 몰려오는 걸 보고 비가 올 지, 안 올지의 정도도 가늠할 수 있다고 했다.

 

 

저 멀리서 뒤따라오는 로만(Roman)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르는 길은 가파르지 않고 자갈이 많지 않아 편안했지만, 척박하고 건조한 환경이 낯설었다. 나와 타냐, 그리고 로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고, 지나가다가 낯선 이방인 만을 우두커니 바라보는 도마뱀들만 몇몇 보였다.

 

 

진짜 정말 신기한 색깔

내가 밟고 올라가고 있는 언덕은 가을 끝자락의 은행나뭇잎 색인데, 바로 건너에 있는 언더은 정말 붉고 생소한 색을 띄고 있다. 경계가 다소 모호한 골짜기를 두고 바로 옆에 있는 언덕일 뿐인데, 색깔이나 그 생김새가 완전히 다르다는게 너무 신기하다. 지역 전체가 붉은 산맥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딱 이 부분만 빨간 것이 되게 신기방기

 

 

저 너머는 또 뭐람?

길을 따라 언덕을 다 오르고 나면, 그동안 언덕이 막아주고 있던 세찬 바람이 나를 두들겨 패기 시작한다. 척박하고 건조한 공기에 바람까지 부니 머리가 떡이지고 얼굴이 얼망이었는데, 다행히 저 사진은 하나 건졌다. 워낙 뒷 배경이나 색깔이 예뻐 타냐한테 사진을 찍어달라고 계속 부탁을 했다. 옛날부터 외국인들에 대한 사진 실력을 정말 못마땅해 하는 편인데, 한국인들을 많이 상대해 본건지는 몰라도 사진 실력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이래서 경력은 무시 못한다고, 내가 좋아하는 구도나 패턴이 무엇인지 눈치를 챈 것 같아서 뿌듯했다.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던 척박한 언덕길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태초의 척박함을 그대로 담아낸 사진이라고 생각해서 한 컷. 자갈들이 제각각이다. 이곳은 바람이 부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정말 아무 소리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조용한데, 정말 눈에 보이는 도마뱀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노란 언덕이 뉴질랜드의 말보로 사운드를 생각나게 한다

이곳은 한참의 시간을 가지고 사진찍는 것도 좋다. 다른 여행지처럼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아니어서 그런지 아무데서 사진 찍는 게 전혀 부담이 없다.

 

 

사막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비쥬얼

비가 많이 오는 우기에는 이 길을 따라 거대한 수로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 이전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는 것인지, 최근에 비가 내렸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물기가 조금 남아있긴 했다. 로만이 하늘을 보더니, 곧 비가 내릴 것 같다 말했다. 하늘이 갑자기 어두컴컴해지고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처럼 한기가 엄습해왔다. 우리가 급하게 자리를 뜨고 5분뒤에 정확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는길이 워낙에 험악해서 좀 걱정했지만, Be careful이라는 나의 말에 'No problem'이라고 대답한 로만의 대답이 위안이 됐다.

 

 

캐쥬얼했던 저녁식사

투어 내에 숙박과 식사가 포함된 프로그램이었고, 그 안에는 카자흐스탄의 전통식사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식사를 위해 준비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을 때, 주인집 아주머니는 저녁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거창한 식사까지는 아니어도, 가짓수가 많아서 그런지 굉장히 대접받는 느낌이 들었고, 다소 촌스러울 수 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꽃무늬가 새겨진 그릇 안에 들어있는 빵은 따뜻하기까지 했다. 쿠키와 캔디, 마요네즈 소스로 버무려진 토마토와 생버터가 있었다. 음식들이 하려하고 대단한 것들은 아니었지만, 투박하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비쉬바르막

저녁에 메인 음식으로 나왔던 '비쉬바르막'. 너무 맛있는 탓에 다섯 손가락으로 허겁지겁 퍼먹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비쉬바르막의 뜻 자체가 다섯개의 손가락이라고 했다. 나는 외지인이기때문에 포크를 부여받긴 했으나, 원래대로라면 다섯 손가락을 이용해서 먹어야 한다고. 근데 이거 뜨거워서 손으로 먹다간 화상 입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ㅋㅋ;; 찐 감자와 말고기(혹은 소고기), 양파, 그리고 고기 육수에 익혀 간이 잘 된 밀가루 반죽이 잘 섞여있는 음식이다. 온통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있어 먹는것에 부담은 없었다. 저 밀가루 반죽에 고기와 양파를 싸서 손으로 먹는 것이 전통의 방법이라 하지만, 포크나 나이프로 먹는 게 큰 결례는 아니라고 했다. 내가 배고팠던 건지, 아니면 비쉬바르막이 맛있었던 건지 몰라도 엄청나게 맛이 괜찮았다. 평소에도 삼시세끼를 와구와구 퍼먹는 내가 거의 걸신이 들린 것처럼 퍼먹으니 옆에 있던 타냐가 주인집 아주머니한테 카자흐 어로 무어라 말하더니, 금세 한 그릇을 더 준비해 주셨다. 아직도 그 맛이 생각난다.

 

 

신기하게도 마음에 들었던 방

내가 이 날 묵었던 숙소는 카자흐스탄 전통 양식으로 만들어진 가정집이었다. 침대가 딸랑 있고, 분리된 화장실이라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지만, 배낭여행인데 아무렴 어떤가. 그냥 누워서 쉴 공간만 있으면 행복한 게 내 여행 스타일인데 ㅎㅎ

 

 

쥐굴리오스커예

오늘 타냐에게 카자흐스탄 맥주를 맛보고 싶다고 말했더니, 대표되는 맥주가 하나 있다고 하면서 소개시켜 준 '쥐굴리오스커예'. 탄산이 좀 부족한 감이 있어 조금 밋밋했는데, 아까 샀었던 쿠르트와 함께 먹으니 나쁘지 않았다. 로만이 오프너 없이 따는 방법을 보여주겠다면서 맥주의 병두와 병두를 맞대더니 '뻑'하는 소리와 함께 병뚜껑이 내 이마빡으로 튀어버렸다 ㅋㅋ 이렇게 깔깔깔깔을 시작으로, 카자흐스탄의 결혼문화 이야기도 하고, 요즘 문제가 되는 대기오염 이야기도 하는 등 첫날이라는 타이틀과는 다르게 어색하지 않은 밤을 보냈다. 인터넷이 그리워지고 한국에 있는 가족이 생각나고, 보고싶은 한 사람이 떠올랐지만(지금의 내 아내 이여사 ㅎㅎ), 나름대로 뿌듯하고 알찬 하루를 보낸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은 좀 덜했다.

 

내일은 어떤 흥미롭고 신나는 하루가 될지, 잠들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너무나 행복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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