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 여행의 한 축을 담당해 주던 이 커피. Tully's Coffee. 이 커피 덕분에 아침이 정말 산뜻했다. 날씨는 어제보다 추웠고, 커피로 아침을 견뎌내는 직장인들에게 꼭 필요한 마약인데, 심지어 맛있기까지 하면 우리더러 어쩌라는건지... 귀국하고나서도 지금까지 생각나는걸 보면 언젠가 다시 일본을 방문했을 때 다시 방문할 의사 25,000%
우리는 나고야 JR패스를 한국에서 구매하지 않고 가는 바람에 역에서 역무원을 통해 direct로 구매를 시도했다. 역무원에게 '우리는 5일권을 구매하고, 오늘 첫 개시를 할 것'이라는 코멘트를 영어로 전달했으나, 영어가 서툰 역무원에게 우리의 상황과 일정을 설명하는 것의 난이도가 급격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행인 점은 담당자가 너무너무 친절하고, 번역기를 통해 설명해 주시려는 노력이 너무나 보여서 우리가 인내할 수 있었다. 만약에 프랑스였다면 진즉에 너네 왜 프랑스어 못해?라는 한소리 들었겠지 (이것도 선입견이지만...) 무튼 여차저차 한 끝에 패스를 무사히 끊고 기차까지 잘 탈 수 있었다.
무사히 게로역 도착. 날씨는 여전히 추웠다. 한적한 시골 느낌이었고, 한국인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둘 다 한적한 분위기를 원했던 것은 맞는데, 한국인이 또 너무 없으니까 괜시리 불안 ^^;
지도만 가지고 열심히 여행하는 타입인 나는, 역을 나서고 나서도 열심히 여기가 어딘지 설명하고 있다. 웬만한 곳은 다 걸어다니는 성격이라, 역에서 1.3km 언덕길을 걸어갈 아주 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여사는 못된 나를 심판하기 시작. 나랑 하는 해외 여행이 처음이라 아직 내 거친 행보의 매운맛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일단 걷기 시작. 육교를 넘고 물을 넘고 산을 타야 하는 고된 일정이었다. 계속 걸어서 그런지 추운것은 잠시 잊었던 것 같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여사는 저 때 분명 걷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결혼하고나서는 걷는 것을 잘 안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
미국으로 건너간 제임스 고로베 라는 고양이의 후손이라는데 (믿거나 말거나) 부의 상징이라고 해서 나현이랑 사진 찍어줬다. 우린 부자가 될끄니까~
아주 널~찍한 다리 하나를 건너면 온천장들이 모여있는 마을이 나온다. 슬슬 지치기 시작...
지쳐갈 때 즈음 마침 체크인 시간도 남고 해서 이름 모를 식당에 들어왔다(지금 찾아보니 Tsutaya Sushi라고 함..). 메뉴가 뭐였는지는 모르겠는데, 사쉬미~ 사쉬미~ 나마비루 해서 가격표도 안보고 주문을 해버리고
순식간에 해치워버렸다. 도대체 한국에서 먹는 횟감들과 무슨차이인지 도무지 모르겠는데, 그냥 부드럽고 맛있다. 생맥주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예술이다. 원래 한국에서는 피곤할 때 먹는 맥주와 그렇지 않은 맥주로 나누고 마시는데, 일본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피곤해서 마시는 맥주도 맛있고, 그냥 심심할때 마셔도 맛있는게 일본 생맥주다.
언덕길을 끙끙대며 올라간 우리는 드디어 유노시마칸에 도착. 다행히 식사 후 체크인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한 우리는 바로 안내를 받았고, 숙소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깜짝깜짝 놀라며 우리의 방까지 이동했다. 생각보다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컸고,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본 전통 구조의 가옥 전체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우리가 예약한 방은 프라이빗 온천과 하프보드(조식/석식이 포함된)를 추가한 옵션이었고, 방 크기도 나름 큰 것으로 하여 제대로 힐링하려는 목적이었다.
방에 도착하니 우리를 위한 웰컴티가 준비되어 있었고, 언제쯤 저녁식사를 하길 원하는지를 질문했다. 하루 왠종일 걸은 기분이라서 피곤함을 먼저 푸는 게 우선이었고, 느즈막이 7시쯤에 저녁을 준비해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야외 노천탕. 온천 온도가 궁금해서 손을 담가봤는데 너무 뜨거워서 손이 녹는줄 알았다. 바깥날씨는 미친듯이 추웠는데 너무 대비되는 온도 때문에 깜짝놀랐다. 웰컴티를 스리슬쩍 다 마시고나서 살포시 온천에 몸을 담갔다. 머리는 차갑고 몸은 뜨겁고 이런맛에 야외 온천을 하나 싶었다... ㅎㅎ
온천을 한 시간? 정도하고 나오니 온몸이 녹아내리는 기분과 함께 둘 다 쥐도새도 모르게 요매트 위에 뻗어버렸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두 시간뒤에 일어났다. 일어났을 땐 이미 어두워져서 숙소 여기저기에 조명이 켜져있었다.
식사시간까지 조금의 시간이 남았던 우리는 숙소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가 족욕탕 발견. 서로 못생긴 발 놀리면서 뜨뜻~하게 발 한번 담구고 이 곳 저 곳 쏘다니기
정해진 시간에 방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스탭이 노크를 했고, 간단한 식사세팅과 함께 메뉴가 적힌 종이(모두 일본어 ㅎㅎ)와 식전주(매실주)를 내어다 주었다. 어머니가 종종 식사 후 소화를 돕는다며 매실원액을 물에 타서 주신 적이 많았는데, 도대체 얼마나 음식이 많이 나오려고 식전에 매실주를 주는가 싶었다. ㅎㅎ
일단, 가이세키(Kaiseki)라는 것이 한자로 품을 회(懐)에 돌 석(石)자를 쓴다고 한다. 원래는 차를 마시기 전에 간단히 먹는 음식을 가이세키라고 하는데, 각 료칸이나 음식점마다 자신들만의 독특한 가이세키가 있어 일종의 '장르'가 된 경우라고 한다. 그 때문인지 료칸에서 제공하는 가이세키는 료칸을 대표하는 일종의 아이덴티티가 되어가고 있고, 료칸여행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 각 료칸의 가이세키를 맛보는 재미도 있다고 한다(물론 이것은 부자들의 취미가 될 것이다만...)
우리가 식사를 진행할 때마다 step by step으로 상차림을 내어다 주는데, 융숭한 대접에 둘 다 몸 둘바를 모르고 우물쭈물했다. 이런 대접을 처음 받아볼 뿐더러 음식을 대접하여 주시는 분들이 무릎을 꿇고 너무 극진한 대접을 해 주셔서(우리보다 나이가 더 있으신) 어쩔 줄 몰라하는 게 당연했다.... ㅎㅎ
이렇게 알만한 음식들이 반, 이게 뭐인지 전혀 모를법한 음식들이 반 나왔는데, 메뉴가 적힌 종이마저 모두 일본어로 기재가 되어 있어서 아마 스탭의 설명이 없었다면 무엇인지도 모르고 먹을뻔 했다. 서로 메뉴판을 읽을 줄 아는 척 하며 찍었는데, 지금 보니 좀 웃기네 ㅎㅎㅎ;;
가장 인상깊었던 와규 샤브샤브는 마블링부터가 훌륭했다. 잘 몰랐는데, 이 지역 특산물이 와규라서 최고급 소고기를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맛 또한 훌륭해서 기억에 남았다.
정말 대접받는 다는 느낌을 받은 것 중에 하나가 마구잡이로 자기들이 만들어서 갖다주는 게 아니고, 우리가 먹는 속도에 맞춰서 서빙을 해 주신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일본어 메뉴를 읽지 못해서 그 다음 메뉴가 무엇인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진짜 마지막인 줄 알고 먹었던 음식들 다음에 또 다른 메뉴들이 계속해서 나와서 뱃속의 캐파를 전혀 고려할 수가 없었다. 흰밥과 미소된장, 그리고 간단한 찬과 함께한 식사 후에 진짜진짜 마지막으로 제철 과일과 흑설탕 푸딩이 디저트로 나왔다. 비주얼은 시꺼매서 이게 뭔가 했는데, 말그대로 흑설탕을 한 움쿰 집어서 입에 넣었을 때 그 갈색의 달달함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앞서 말했다 시피 가격대가 있어 여러번 시도하기 어려운 경험이 되겠으나, 숙소에서 바깥에 나가지 않고 야외 온천을 할 수 있다는 점, 다다미 방, 그리고 창을 열면 보이는 일본식 건물들, 숲의 새소리 들을 들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점만 생각해도 가치있고 충분히 힐링할 수 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 극진히 대접받는 느낌의 가이세키까지 더한다면 꽤 괜찮은 저녁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식사를 다 하고나면 다른 스탭분들이 오셔서 요이불을 세팅해주신다. 두 분 정도 오셨던 것 같은데, 뭔가 정말 전문인력처럼 착!착! 츠랍차찹! 하면 요이불이 세팅이 된다. 우리는 체크인 할 때 골랐던 유카타를 입고 요래저래 사진도 찍고, 동생이 여행가기 전에 줬던 팩도 붙여가며 놀았다지... ㅎㅎ
이렇게 하루가 저물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