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과음을 하지는 않았으나 하루 온종일 돌아다녔던 탓에 둘 다 피곤했는지 적당한 늦잠을 잤다. 우리가 묵었던 방은 남향의 통창이 나 있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니 챠르르 커튼 밖으로 옅은 아침이 들이쳤고, 그 사이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을 잠시 즐기고 싶었고, 아침을 너무 빠르게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제 저녁에 사 두었던 메론맛 환타로 아침을 시작해본다. 예전에 오사카에 놀라갔을 적에 고등학교 동창인 흥진이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일본 와서 뭘 먹었냐는 질문에 주저리주저리 답변 했더니 아직도 메론맛 환타를 마셔보지 않았냐고 잔소리를 들었다. 곧장 마트에 가서 메론맛 환타를 사서 마셔봤는데, 이게 왠걸... 도대체 왜 한국에 없는건지...
밖을 나서니 눈은 멈추고 타카야마의 목가적인 분위기가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곳은 '후루이 마치나미'라는 곳인데, 에도시대의 가옥들이 모여 있는 전통거리로, 당시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가장 번화한 거리이기도 하다. 막 엄청 눈에 띄는 볼만한 것들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잡화/공예품(좀 비쌌음..ㅋㅋ)/먹거리 등을 팔고 있는 가게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한테 있어 어떻게보면 시라카와고를 가기 위한 경유지 역할만 했던 곳이었지만, 기대하지 않던 구경들을 하는 재미가 있었다.
기념품 샵에 들러서 이런 뱃지같은 것도 사봤다. 이런거 좀처럼 사는 성격이 아닌데, 그 때 왜 샀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ㅋㅋ 슬슬 집에 갈 때가되니 기념품은 사야겠고, 우와 예쁘다하다가 홧김에 산 것 같기도...
타카야마의 어느 기념품샵에 가던 이 사루보보를 팔고 있다.
타카야마를 가로지르는 미야강에서 한 컷 ..
미야강 옆으로 아침시장이 있다고 하는데, 거기는 못 가봤다. 아침인데도 배가 좀 고파서 타카야마에서 제일 맛있다고 하는 히다규스시를 먹으러 갔다.
타카야마에서 반드시 먹어야 한다고 해서 막상 왔는데 진짜 쪼만한 구멍가게수준의 규모였다. 근처에만 가도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고, 앞에서 쿰척쿰척 먹거나 한 손으로 들고 사진을 찍고 있으면 맞게 찾아간 것이다. 너무 조막만한 가게여서 얼마나 맛있길래 이렇게 극찬하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지? 하는 생각은 먹고나면 산산조각이 나 버린다. 그냥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이곳에서 반드시 먹어봐야 하는 스시는 '히다규스시'였는데, 해석하면 '히다 소고기 스시' 라는 의미다. 집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기후현 내에서 14개월 이상 비육된 쿠로게와종으로 육질 5등급, 4등급, 3등급의 것을 히다 소고기 라고 한단다. 우리는 소금, 간장 간이 된 스시와 군함초밥(?)의 3개의 스시로 구성된 셋트를 시켰다.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
저렇게 조막만한 뻥튀기? 같은 스낵위에 스시를 올려서 준다. 손으로 먹게끔 하는게 아주 오리지널 스시의 느낌을 준다. 맛있는 음식이 손 위에 있으니 위생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지금보니 단순히 주전부리 용도로 주문을 했던 건 아니고, 배를 아주 채울 목적으로 시켰나보다... 두 셋트나 시켰네... 맛은 정말정말 매우매우 훌륭했다. 10점 만점에 20점.
우리는 그렇게 타카야마의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점심식사(아까 껀 그냥 주전부리였다 ^^;)를 하기로 했다. 미리 찾아두었던 돈카츠 식당이 있어 지도를 굽어보며 찾아왔건만, 영업을 아예 종료를 해버렸다고 하네...
이미 점심식사로 돈카츠를 이야기 했던 터라 무슨일이 있어도 돈카츠를 먹고싶었다. 진짜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허름해보이는 돈카츠 집에 들어갔다. 어떤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식당이었는데 영어와 한국어 소통이 1도 안되어서 그림으로만 겨우 주문했던 돈카츠. 근데 뭐 일본은 뭘 먹어도 다 맛있냐 왜... 정말 환상적이야
식사 후 역 근처로 오니 시간이 좀 남았다. 근데 눈이 오기에는 살짝 따뜻한 날씨였는지 비가 오기 시작했고, 우산을 사느니 그냥 카페에 들어가서 시간을 좀 벌며 커피 한 잔 하기.
다시 우리의 출발지였던 나고야로 향한다. 일본에서 맥주는 그냥 간식이다.
나고야 역에 도착하고 메이테쓰나고야 역에서 곧장 나고야 성으로 이동.
우리의 마지막 여행코스였던 나고야 성. 오사카에 있는 오사카 성 만큼은 아니어도 일본양식의 성이 어떤지 감상할 수 있는 건축물이다. 혼란한 일본의 대전국 시대에 도요토미를 견제하기 위한 도쿠가와의 성 이기도 하다.
다른 커플들 다 해본다는 짤인데 내가 왜 이여사 끌고가는거 같지?
나고야 성이 한눈에 보이는 너른 마당같은 곳?에 도착. 하늘도 맑고 성도 파릇파릇 푸르다.
일본에오면 맨홀을 찾아서 찍어야 한다. 우리 발꼬락이 나오게끔 해서 찰칵. 그리고 산책하는 길바닥에 저런 타일공예예술? 같은 나고야 성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군데군데 있다. 일본은 뭐 어딜가던 심심하지 않아서 좋다.
그래도 나고야에 온 것 티 좀 내고 싶어서 저렇게 방방 뛰며 사진도 찍었다. 아마도 이 사진을 찍을 때 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우리의 마지막 여행코스였던 오아시스21 전망대로 바쁘게 이동했다. 공항으로 향하는 기차 시간에 살짝 쫓겨서 모든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거의 뛰어다녔던 것 같다.
사카에 역에 도착해서 바로 보이는 오아시스21은 나름 나고야에서 규모있는 쇼핑몰인데, 위에 유리 천장이 있고 가운데 물길을 중심으로 짧은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구조 상으로는 지상 14m(지하로부터는 22m)의 공중에 설치되어 있는 '물의 우주선'이라는 컨셉의 정원인데, 우리는 역전 지하에서부터 온 지라 22m의 계단을 무작정 올라가야 했다... ㅎㅎ 바람에 흩어지는 물결들이 정말 인상적이었고, 어둑어둑해지면 옆에있는 나고야TV타워와 함께 반짝이는 조명이 인상적이라고 하는데, 밤에 오지 못한 것이 조금...아쉬웠다. 아무튼 사진 미션을 완료하는 우리는 곧장 나고야 역으로 Move Move!
그래도 나름 마진을 두고 역에 도착한 우리. 역 안에 있었던 이름모를 식당에 무작정 들어갔고, 돈부리와 뭔가를 시켰고, 그래도 나름 마지막 식사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맛있게 냠냠거리며 먹었던 것 같다. (지금 사진을 두고 봐도 도무지 뭔지 모르겠다...)
우리의 해외여행지였던 나고야. 전적으로 이여사의 배려로 탄생한 여행지 선정이었고, 그 배려에 보답하기 위해 나름의 해외 여행 경력을 살려 열심히 계획하고 가이드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이왕 여행 온 거 좀 더 특별하고 소중한 추억만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에 욕심을 부리다가 못 갔었던 여행지도 있었고 (타카야마는 거의 관광을 못했던 것 같다... ) 어줍잖은 일본여 실력 때문에 식당에서 그림만 보고 주문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둘 다 '처음'이라는 순결한 무언가 때문에 힘들어도 재밌고, 재밌으면 더 행복한 여행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시간과 에고가 다르게 살아온 우리의 시간이 이 여행에서 조금이라도 같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