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여행을 와서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는 것은 사치이다. 캐리어에 고이 싸들고 온 옷가지를 보며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고 오늘은 어떤 곳을 구경할까, 어떤 음식을 먹을까(중국에서 이런 기대를 첫날 다 버리긴 했지만...)라는 기대를 하면 잠에 들 틈이 없다. 자유여행이 아닌 탓에 우리는 예정된 일정을 소화해야 했지만, 그래도 처음 보는 장면들이 이러한 기대들을 충족해 줄 것이라 믿었다. 오늘은 상해 근교 항저우의 인공호수인 '서호(西湖)'에서 보트투어를 하고 오후에는 동방명주 전망대 투어가 예정되어 있었다. 날씨는 여전히 덥고 습했지만 덕분에 사진을 찍으면 얼굴이 번들번들해 보이는 효과는 있었다. 인공호수를 빙 둘러 있던 산책로는 한국의 일산 호수공원 산책로와 별반 다를 것은 없었다. 별반 다를 것이 ..
10여 년이 지난 2023년이 되어서야 기억의 퍼즐 조각들을 맞추기 위해 외장하드를 뒤적이고 사진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 참으로 새삼스럽고 어색하다. 대학생활을 함께하며 단기 연수를 목적으로 갔었던 상해였는데, 호주와 일본 이후로 나의 3번 째 해외여행(?) 이기도 했었기에 나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던 곳이다. 해외 단기연수 목적이기에 학교가 짜 놓은 스케쥴에 맞추어 이동하고 견문과 배움의 농도를 최대화 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이러한 목적에 너무 집중하다보면 해외까지 가서 다양한 경험들을 오히려 제한할 수도 있다는 학생들의 피드백을 적극 수용했는지, 총 5일의 일정에서 3일이나 자유여행 일정으로 할애를 해 주었다. 우리가 구성했던 조는 학과 동아리 내에 남2/여2의 선후배로 이루어진 조였는데, 출발..
도시의 품을 떠나 대자연의 품으로 도시도 물론 좋았지만 나는 자연이 더 좋더라~ 자연의 품으로 이동! 하코네로 도쿄의 중심부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지나왔다. 산 속에 놓인 기다란 도로를 지나면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가시나무 숲도 지나고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이는 들판도 지나서 산꼭대기까지 다다랐다. 이곳은 바다인가? No! 칼데라호! 벌써부터 느껴지는 고산의 서늘함이 으스스하다. 이곳이 바다일지도 모른다는 착각과 함께 해적선처럼 보이는 배를타고 스르르~ 물 위를 미끄러져 갔다. 오와쿠다니 계곡. 저 멀리 보이는 높기만 한 후지산(내 생에 첫 3,000m이상 되는 산). 산 중턱에 구름이 걸쳐 있는 것이 멋있었다. 살면서 한 번 쯤 구름을 내려다 보고 싶은 욕심이 갑자기 생겼다. 저기 우뚝 솟아 있는 ..
바라건데...(뭘?) 메이지 신궁에서 였을거다. 재미없고 고루할 것만 같은 사원을 소망과 미래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게 해 준 자그마한 나무팻말. 수많은 언어들 가운데 한국어로 쓰여진 이것을 걸어 놓는 것도 국위선양일까? 나는 무슨 소원을 적었을까. 그 시절 추억이 가득 담긴 사진첩을 뒤적여보니 '군대에 가기 전' 이라는 문구를 시작으로 아주 뜻깊은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써 놓았더라. 이미 그 소원을 이루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나무팻말에 적은 내용은 복선이 되어 나타났다. 아주 선명하게! 두 팔을 걷어 부치고 있는 그는 쉴 틈이 없다. 매우 바쁜것처럼 보였지만, 음식을 다루는 자세는 고요하고 차분하다. 수백개의 접시가 식당의 한쪽 끝과 한쪽 끝을 줄지어 연결하고 있었다. 기다랗게 늘어진 생선들..
가깝고도 먼 나라 나는 선택권이 없었다. 나는 첫 해외여행이라는 기회를 놓칠수 없었고, 그 기회를 단번에 잡았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말 의도치 않게 시작된 여행이었고, 도쿄 여행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학교 1학년, 호주 이후로 가는 '20대의 첫 여행'이기에 더욱 특별했고(여행에 관한 처녀성은 이곳에서 다 깨졌기 때문에), IT연수라는 부제목이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던 여행이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여권에 사증하나 찍히는 것이 그리도 즐거운 것을. 그들은 Where are you from? 이라고 물었다. Korea라고 대답을 하니 그들은 일본어를 못하는 나를 배려해서 한국어로 쓰여진 대본을 주더라. 앞에 나가서 무엇을 말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내 걱정을 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