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쉬어가기, 더 천천히 Osaka -> Kyoto 아침이 우중충했던 기억이 난다. 덥고 습했던 어제와는 달리 금방이라도 쏟아낼 것처럼 우중충한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마음만 앞서있었는지 몸이 좀 으슬으슬한 것 같기도 하고, 어제 잠들기전에 마셨던 맥주와 편의점 도시락이 소화가 안되었는지 속도 구리구리했다. 평소같았으면 아주일찍 일어나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며 계획한 대로 교통편을 살피고 있었어야 했지만, 오늘은 그냥 쉬어가기로 했다. '일본에 왔으면 일본다움을 좀 즐겨야겠지?' 하면서 지하에 있는 온천에 몸부터 담갔다. 어릴적부터 동물을 보고 만지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지 바닷속에 있는 생물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호기심이 많았다. 대학생이 되고서 처음 갔었던 코엑스의 아쿠아리움에서 어린아이들의..
스스로를 깨우는 책 Hermann Hesse, 1919 헤르만 헤세(1877-1962)는 독일계 스위스인이다. 헤르만 헤세가 독일계 작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화가로서 활동했다는 것은 '헤세와 그림들'이라는 전시회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알았고, 시인으로서 활동했다는 것은 오늘 이 포스팅을 준비하면서 알게된 사실이다. 사진 하나만으로 그를 판단한다는 건 굉장히 주제넘는 일이지만, 유난히 반짝이는 그의 두 눈동자가 작가, 아니 예술가로서 그의 인생을 모두 말해주는 듯 하다. 구글링을 통해서 구할 수 있는 건 오직 흑백사진들 뿐이었지만, 생기있고 에너지 넘치는 그의 통찰력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다. 헤르만 헤세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혼돈의 시대를 탐구하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자기 실현의 길을 걸었..
"내가 그린 것이 아니라 당신이 그렸다." 지루한 사만다 공식 블로그 유럽을 여행하며 많은 작품을 보아 왔지만 가슴으로 동감하고 느낄 수 있는 작품은 적었다. 나는 그들과 같은 시대에 살지 않았고, 역사적인 이야기들 또한 글로써 전해지는 것들이기 때문에 크게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은 없었다. 모두가 칭송하는 다빈치의 작품이나 고흐의 작품을 보고서도 그저 그렇다 혹은 아직은 잘 이해할 수가 없다 식의 반응 뿐이었다. 물론 내가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어쩌면 걸작이라 함은 모두가 처음 보고도 놀랍게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이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는데 첫째로 그 작품의 규모가 굉장했고, 둘째로 익살스럽게 표현된 그림에서 억압받고 있는 시대적인 상황이나 작품을 통해..
'코를 제외한 나의 모든 감각을 자극했던 영화' 엠마스톤이 여주인공(그웬 스테이시 역)으로 나오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의 결말 장면을 보던 나의 대사가 생각이 난다. "죽지마... 제발...아... 안돼ㅠㅠ" SF영화에서 그토록 내 감정을 싣고 결말의 혹독함에 못이겨 한동안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엠마스톤이 날 그렇게 만들었다. 영화가 시작하고 나서야 엠마 스톤이 여주인공인 걸 알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행복이 넘치는 미소와 반짝이는 금발, 그리고 여자치곤 약간 저음에 속하는 목소리이다. 영화 킬 빌에서 빌이 금발에 미쳐있었던 이유도 어느 정도 납득은 간다. 하얀 피부라서 그런지 금발이 유난히 돋보인다. 거기에 녹색 홍채라니. 사람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다. 어메이징 ..
'눈이 번쩍 뜨이는 프랑스 가정식의 담박함을 느낄 수 있는 곳' 루블랑 홈페이지 바로가기 루블랑 가는길 주말 저녁을 맞아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프랑스 가정식을 한다는 곳을 찾았다. 길을 나름 잘 찾는다고 자부해왔는데, 찾기가 좀 힘든 곳에 있다. 홍대에 놀러간 것도 오랜만이거니와 파리에 놀러갔을 적 너무나 맛있게 먹었던 스테이크 타르타르(Steak tartare)와 같은 맛을 기대해서였다.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내부가 인상적이다. 많은 종류의 프랑스 음식은 무언가 고르기 두렵고 격식을 차려야만 할 것 같아서 망설여 지는데, 분위기가 생각만큼 무겁지 않아서 부담스럽지는 않다.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의 간격도 꽤 있기 때문에 시끄럽지 않다는 게 나에게는 최고의 장점이었다. 조용하다. 식당 내부는 어두운 조..
새로운 도전 어찌나 깊은 잠을 잤는지 머리맡이 차가워지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트래킹을 하며 며칠 내내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깨곤 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알람소리를 듣고서야 잠기운을 씻어낼 수 있었다. 어제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트래커들과 따뜻한 난로 앞에 모여앉아 즐거운 아침 식사를 하고 마차푸차레(Machapuchare)가 보이는 벤치에 걸터앉아 아침 일출을 지켜보았다. 따다빠니(Tadapani)에서 내려다보는 일출은 무엇보다도 운해(雲海)가 인상적이었는데, 쌓인 피로가 싹 가실만큼 멋지더라. 이것을 배경으로 안나푸르나에서의 의미있는 첫 단체사진을 찍었다. 이것은 바로! 나의 일정을 파괴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나의 원래 일정은 이랬다. 따다빠니(Tadapani)에서 데우랄리(Deurali), 고레..
다시 시작하기 어제 도반(Dobhan, Dovan)의 숙소에 도착한 이후로 비가 오다 말다를 반복했다. 숙소의 침대 한 켠에 누워 한참을 그대로 누워있다가 밖을 나와보니 구름이 잔뜩 껴 있었는데, 숙소의 주인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고산의 공기에 익숙해져 나름대로 빗소리가 주는 여유로운 리듬도 감상할 수 있었고 정상을 정복해 냈기에 혼자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많았다. 다만 이때부터 무릎이 좀쑤시긴 했지만 이 날은 버틸만 했다. 하룻밤 자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숙소 앞에 있었던 수국은 아침부터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3,000m가 넘어가면서 메말라버린 산의 모습에 조금은 실망했었는데, 산중의 온도가 조금씩 미지근해지고 마침내 꽃을 볼 수 있는 숙소에 왔던..
드디어 그곳에 닿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었던 순간을 지금 말하려 한다. 고등학교 시절 한라산 등반에 실패한 이후로 수 년 동안 계획했던 안나푸르나 트래킹의 가장 절정이었던 순간은 바로 오늘이었다. 아직 밟아보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땅을 머릿속에 그리며 가슴이 뛰고, 사진속의 장면들을 미래의 청사진으로 삼아 끊임없이 달려왔다. 내가 그 곳에 닿았을 때 이 순간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이 곳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를 생각하니 머리의 뒤끝에서부터 시작되는 전율이 멈추지를 않았다. 그 당시에는 '보인다'였던 것들이 '보았다'로 바뀌면서 기억의 뒤편으로 밀리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아직은 그 생생한 기억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너무 많이 잤나?" 그래, 너무 많이 잤다. 어제 오..